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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병도 만든다’…제약회사·의사가 질병 창조?
20-06-23 10:56


대머리는 질병인가? 폐경과 골다공증은? 만성피로와 속쓰림,대인 공포증,쇼핑 거식증,월경전 증후군은?
불과 몇년 전만해도 대중 앞에서 가슴이 뛰는 것을 병으로 여긴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무대 공포증은 약으로 다스려야 할 ‘사회 불안 장애’가 됐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이는 ‘적응 장애’,반항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적대적 반항 장애’를 가진 ‘환자’로 분류된다. 늘어나는 질병의 목록은 끝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뼈가 가벼워지는 현상은 골다공증,중년 이후 찾아오는 발기력 저하는 발기 부전이라는 이름으로 치료 대상이 됐다. 폐경기의 여성은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이 하락하는 ‘갱년기 증후군’을 겪는다.
자,이제 주위를 둘러보자. 골다공증에,갱년기 증후군,발기 부전,복부 비만,과체중,콜레스테롤 과다,소화 불량까지 거느린 ‘질병 백화점’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건강은 희귀한 것,질병은 되레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의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온 세상이 환자 투성이가 되는 역설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환자로 가득찬 세상=생물학과 생화학을 전공하고 ‘슈테른’ ‘슈피겔’ 등의 의학 및 자연과학 편집자로 일해온 외르크 블레흐는 질병이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 “정상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기복을 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때 의사들은 내전족(초승달 모양으로 굽은 발)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발을 깁스와 외과 수술로 교정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미국 의료진은 내전족을 가진 100명 중 96명의 발이 4세가 되기 전에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머지 4%도 발에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골다공증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뼈는 30세쯤 밀도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피부의 주름처럼 노화의 증거. 저자는 “뼈의 감소는 탐탁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뼈 양의 감소가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의사들이 경미한 골밀도 저하를 ‘초기 골다공증’이라고 부르는 순간 70∼79세 여성의 31%,80세 이상 여성의 36%는 골다공증 환자가 돼버린다.
현대인의 적으로 불리는 콜레스테롤 수치만 해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 수많은 이들을 병자로 전락시켰다. 독일 바이에른주 사람 10만명을 조사한 결과,혈중 콜레스테롤의 평균 농도가 혈액 1㎗당 260㎎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990년 의과대학 교수 13명으로 구성된 국민 콜레스테롤 운동연합은 이 수치를 200으로 하향 조정했고 이후 30∼39세 남성의 68%,50∼59세 여성의 93%가 환자가 됐다. 어쨌든 의사들의 호들갑 덕에 4400만명의 ‘예비 뇌질환자’들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스타틴 성분의 약을 먹어치우고 있다.
피곤함,의기소침,자기 회의 등에 ‘정서 이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알약을 삼키는 현대인들. 저자는 묻는다. 도대체 생의 어느 순간,회의와 좌절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질병을 창조하는 제약회사=‘건강한 환자’가 양산되는 배후에는 제약 회사와 의사 집단의 결탁이라는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의사들의 논문과 보고서,세미나 등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수많은 질병을 ‘발명’해내고 있다고 폭로한다. 병이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약이 병을 만든다는 것.
발작성 수면증에 사용되는 각성제 프로비길을 만든 제약회사 세팔론은 교대 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건강을 연구한 끝에 ‘야간 작업 교대 수면 장애’라는 질병을 만들어냈다. 이 질병의 치료제는 물론 프로비길이었다. 또 최근 전세계적으로 남성의 갱년기 장애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호르몬 제품의 출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와 메틸페니데이트의 상관 관계도 충격적이다. 독일에서는 매일 5만명의 아이들이,미국에선 500만명의 학생들이 ADHD라는 진단을 받고 메틸페니데이트를 함유한 알약을 먹는다. 이 물질은 뇌에 직접 작용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일종의 각성제. 한데 ADHD 아동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다. 의사들은 ‘어린이가 이 약을 복용한 뒤 행동에 변화를 보이면 ADHD에 걸린 것이고 아니면 건강한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운다. ADHD는 약에 의해 규정된 질병인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비사회적인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얌전하게 구는 약’을 주는 것은 사회적 통제”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나 역시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암 조기 발견 검진을 받으러 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주장을 의학의 효용에 대한 부정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 문제는 ‘기능성 장애’ 같은 의미 없는 수식어에 넘어가 한 움큼의 알약을 처방받고는 뿌듯해하는 ‘가짜 환자’가 넘쳐나는 현실. 그 사이 제약 회사와 병원은 살찌고,의료 체계를 세금으로 지탱해나가는 시민들의 호주머니는 가벼워만진다(외르크 블레흐·배진아 옮김·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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