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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없는 病'도 만들어 재미를 보는가>
20-06-23 10:56


임산부가 출산하러 병원을 찾았다. 그녀는 환자일까, 아닐까. 출산은 질병이 아님에도 임산부는 병원에서 환자로 취급된다. 멀쩡한 정상인이 엉뚱하게 병자로 둔갑하는 것이다. 이에 임산부는 보통 별다른 저항감을 갖지 않는다. 병원에 왔으니 그러려니 생각한다.
외르크 블레흐의 저서 「없는 병(病)도 만든다」(생각의나무刊)는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끊임없이 조장해 억지 환자를 만들어내는 현대 의약학의 치밀한 음모를 폭로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거짓 질병을 양산해 주머닛돈을 두둑히 챙겨가는 제약산업이 있다며 고약한 술책을 고발한다.
이른바 건강산업은 최근 비약적 성장세를 보여왔다. 2002년의 경우 전세계적 경기침체에도 세계 10대 제약기업의 이익은 13%에 달했다. 의학은 건강한 사람을 끈질지게 걸고 넘어져 환자로 만든 뒤 안정적으로 약을 팔아치운다. 이런 점에서 "건강한 인간이라고는 더 이상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을 수 없을 만큼 의학이 진보했다"는 올더스 헉슬리의 단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제약회사와 의약관련 단체는 갖가지 방법으로 `희생자'를 양산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과정을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상품화하는 것이다. 한때 대머리는 큰 흠이 되지 않았으나 미국의 한 제약회사는 발모제를 생산한 뒤 탈모가 `정신적 공황상태'나 `각종 정서 장애'를 초래할 수 있고, 사회생활에도 불리하다고 광고하며 이른바 탈모증 환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앞에서 예를 든 임산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성격과 사회적인 문제를 의학적 대상으로 끌어들여 상품화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특히 신경정신의학분야에서 흔한데, 의사가 거의 모든 인간을 병자로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수줍음 정도로 간주되던 상태를 제약회사가 나서서 사회불안장애로 규정지은 뒤 항우울제를 투여하려 들었다.
단순한 위험요소를 질병으로 간주한 뒤 상품화하기도 한다. 골다공증의 경우 제약회사는 나이가 들어 뼈가 위축되는 현상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모임에 재정지원을 해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등과 같은 항목의 정상 수치를 하향 조정함으로써 질병의 범위를 넓히기도 한다.
희귀 증상을 고질병으로 둔갑시켜 약을 팔기도 한다. 비아그라 제조업체는 "발기장애는 흔히 나타나는 건강상의 장애로 40-70세 남성 두 명 중 한 명이 발기장애를 겪고 있다"고 홍보한다. 유사한 방법으로 여성도 43%가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덮어 씌워 재미를 본다. 저자는 비아그라 도입 후 남성세계에서 임포텐스 환자가 놀라울 만큼 늘었다며 여기에는 다분히 악의적인 계략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가벼운 증상을 중병의 전조라며 겁을 줘 상품화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민성 대장 증상처럼 종전에는 정상적인 대장의 상태로 여겨졌던 설사, 더부룩함 등이 신경성 장애라는 의심스러운 질병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신빙성 있는 진짜 질병'으로 `발전'한 것은 제약회사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다.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의 머릿속에 과민성 대장 증상은 중요 질병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약회사들은 자사의 제품을 의사들이 처방하도록 해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려댄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의사의 경우 해마다 8천-1만3천 유로의 돈을 지급받는다고 주장한다. 개업의와 종합병원 의사는 그야말로 제약회사 영업직원에게 완전히 정복당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미나, 심포지엄 등을 후원하는 등의 수법으로 언론을 홍보도구로 활용하는 공략법도 구사한다는 것.
제약회사 타깃은 어른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머리 좋아지는 약' `공부 잘 하게 하는 약'으로 한국 부유층을 중심으로도 유통 중인 메틸페니데이트가 그 예이다. 제약사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해 세계적으로 큰 시장을 창출했다. 식욕부진, 체중감소, 불면증, 우울증, 두통, 복통 등 부작용으로 진짜 환자가 된 아이가 이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사실은 물론 알리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씨는 이런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아이들은 아무리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곤경이 닥쳐와도 이것을 향정신성 약품의 도움없이 해결하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같은 의학의 `승리'는 국민보건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건강상의 부가가치는 얻지 못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는 의사들대로 질병 고안자들이 만들어낸 증명할 길 없는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부담과 절망감을 안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국민건강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 저자는 결국 스스로 병자 취급을 당하도록 허용하는 사람들만이 병자로 전락한다며 허튼 술책에 넘어가지 마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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