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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잦아지면 뇌 영양실조 '알코올성 치매'
20-11-03 09:36
‘술로 겨뤄서 져 본 적이 없다’는 애주가 김중배(가명·37)씨는 요즘 불안하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할 줄 모르던 그였지만 언제부턴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전날 일이 파편처럼 흩어져 도무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어제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함께 김씨는 전에 없던 이런 일이 반복되자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술 때문에 기억력 감퇴나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구나 하나둘씩 걸려오는 연말 송년, 동창모임 예약전화가 이들의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술과 기억력, 어떤 관련이 있을까. 

◇ “나 어제 어떻게 집에 왔지?”
과한 술은 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억. 뇌에서 기억을 만드는 해마, 기억 저장소 측두엽, 기억을 불러내는 전두전야가 술 때문에 기능이 약해지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하고 필름이 끊긴다. 이런 단기기억상실을 의학용어로 ‘블랙아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한 과거의 기억을 쓸 수는 있다. 또 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단기기억, 즉 일시적인 기억을 만드는 기능도 살아 있다. 만취한 상태에서도 옛날 일을 떠올리고, 상대방이 방금 한 말을 기억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전날 기억이 안나는 상태에서도 어떻게 음주자들은 집을 찾아오는 것일까.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고도 어떻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의 저자 가와시다 류타·다이라 마사토는 바로 ‘뇌 내비게이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뇌 내비게이션은 뉴런(neuron)이라는 신경세포로 알코올 때문에 뇌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그 동안의 경험을 근거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불러내 무사히 집으로 안내한다. 뉴런은 집으로 가는 길의 익숙한 풍경 등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 같은 명령을 내린다. 
다만 이 신경세포는 기억을 만들거나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도 우리는 어떻게 집으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 어제 어떻게 집에 왔지?”라고 묻는 애주가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나 마셔야 필름이 끊길까.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필름이 가장 많이 끊기는 시점은 보통 혈중 알코올 농도 0.2% 정도라고 한다. 이는 체중 70㎏의 남자가 25도인 소주를 한 병 반 조금 못 되게 마신 정도. 물론 사람에 따라, 그리고 몸 상태나 술 마시는 속도 등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몸은 뇌가 많은 혈액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면 뇌에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난다. 알코올을 신경흥분제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알코올은 신경억제제로 뇌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 블랙아웃 반복, 알코올치매 지름길
문제는 이렇게 계속 필름이 끊기는 술자리가 잦아지면 바이타민 B중 하나인 치아민이 부족하게 돼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필름이 끊기는 ‘베르니케-코르사코프 뇌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환자는 날짜를 잊어버리고 지금 막 지나온 길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등도 잊어버리고 생각해내지 못한다. 
날짜, 시간, 장소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지남력 장애’, 새로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건망증’, 오래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역행성 건망증’ 등이 있다. 때로는 망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최인근 교수는 “필름이 계속 끊기는 이유는 폭음하는 음주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라면서 “과거에 파편적인 블랙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비교적 낮은 혈중 알코올 농도에서도 기억 장애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뇌가 영양실조에 빠지는 알코올성 치매는 알코올 의존증 말기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알코올 전문 다사랑병원 김석산 원장은 “술을 많이 마시면 혈관을 침범한 알코올은 특히 혈액의 공급량이 많은 뇌세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며 “손상된 뇌세포는 초기에는 다시 원상 회복이 되지만 필름이 끊기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며 뇌에도 영구적인 손상을 줘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건망증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바로 기억이 회복되지만 알코올성 치매는 시간이 지나도 자기가 하려던 행위를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전체 치매 환자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알코올성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더 심각하다. 일반적인 노인성 치매가 기억력 감퇴로부터 시작되는 것과 달리 알코올성 치매는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 쪽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에 화를 잘 내고 폭력적이 되는 등 충동조절이 되지 않는다. 신체의 마비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애주가들의 경우 티아민이 포함된 비타민 B가 결핍돼 뇌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술을 끊는 것과 함께 예방차원에서 영양제로 보충해줘야 한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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