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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발견한 선조들의 지혜_ 借景 창과 풍경작용
15-07-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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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특징은 매우 다양하다. 집 자체부터 무궁무진하게 변한다. 가변성의 극치다. 상대적 가변성이 21세기 문명의 대표적인 특성임을 감안하면 한옥은 매우 미래적인 주택임에 틀림없다. 가변성은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나는데 모두 창을 매개로 삼는다. 한옥에서는 매우 다양한 창 조작이 일어난다. 밖에서는 집이 한시도 한 상태로 머물지 못하고 수시로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에서도 비슷한 가변 작용이 일어나는데 풍경작용이 으뜸이다. 풍경작용이란 말 그대로 마당의 경치를 감상의 대상으로 삼아 창을 낸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마당’, ‘경치’, ‘창’, 세 가지다. 모두 한옥의 특징을 대표하는 주제들이며 이것들에서 한옥의 건축적 결정조건들이 따라 나온다. 마당은 한옥의 성립을 결정하는 첫째 조건으로 그 쓰임새가 여럿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내에 앉아서 그림을 즐기듯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바탕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한옥의 공간적 특징에 해당된다. 경치는 자연이니 우리가 흔히 한옥, 나아가 한국의 전통건축이나 전통문화의 가장 대표적 특징으로 얘기하는 ‘자연 친화’를 구체화하는 건축 형식이다.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자연을 즐거운 감상의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창은 이 두 조건을 하나로 합해서 작동시키는 건축 부재다. 한옥에는 복도가 없어서 창만 열면 바로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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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방은 앞뒤로 마당을 면하며 모서리에 있는 방은 세 면까지 그러하다. 창은 그만큼 외기, 즉 자연과의 소통을 극대화한다. 그 자연은 때로는 손에 넣을 듯한 소담한 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고 때로는 담 너머의 미려한, 또는 웅장한 산하경치일 수도 있다. 창은 이것을 담아내는 구체적 통로이자 매개다. 창은 이것을 담아 풍경작용을 지어내는 미세형식이다. 이처럼 한옥에서는 창을 통해 공간과 자연을 하나로 합해 풍경을 짓고 즐긴다. 그 목적은 변화 무쌍한 다양성을 즐기기 위한 데 있다. 이는 원래 한국인의 전통적인 국민정서이기도 했다. 한옥은 이를 위해 수시로 변한다. 이런 가변성은 곧 항변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변한다는 의미다. 집에 가변성을 극대화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정신적, 물리적, 심리적 배경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자연현상과 세상만물의 작동 원리를 ‘변화무쌍함’으로 파악한 동양사상의 기본 입장이 있다. 이것은 정신적 배경이다. 또,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잘 받아들이고 겨울에는 따뜻한 햇빛을 집 안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한 실용적 목적이 있다. 이것은 물리적 배경이다. 마지막으로 집을 하나의 풍경요소로 파악하여 생활을 즐기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도록 하는 심리적 배경이 있다. 
 
사상적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은 ‘지(知)’에 해당된다. 바람과 햇빛의 이로움을 취하는 것은 이로움에 해당되는데 이것은 ‘호(好)’의 가치다. 마지막으로 생활을 즐기는 ‘락(樂)’의 가치가 있다. 공자는 사람들이 사물을 대하고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에는 ‘지-호-락’의 세 가지가 있다고 했으며 이 가운데 ‘락’을 최고로 꼽았다. 한옥을 이해하고 접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즐기는 것이 최고의 경지인데 창의 가변성을 통한 풍경작용이 그 핵심을 이룬다. 한옥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한옥의 항변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인데 풍경작용은 다시 이것의 핵심을 이룬다. 한옥의 풍경작용은 주변을 관조(觀照)의 입장에서 파악한 결과다. 이것은 결국 주체인 내가 대상인 주변을 대하는 입장, 즉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의 문제다. 매우 철학적인 주제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매일 부닥치는 대인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옥의 풍경작용에는 한국인이 주변을 대하는 다층적 구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드러난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라는 인간사의 근원적인 문제를 보는 한국적 민족성이 건축물을 통해 조형적으로 전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옥에서의 풍경작용 역시 다층적으로 일어난다. 한옥 자체가 다양하게 변하는 만큼 한옥과 한 몸으로 일어나는 풍경작용 역시 다층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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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는 다층적 풍경작용을 모두 아우르는 핵심적 입장이다. 관조는 대상을 대할 때에 이성적 시비판단이나 공리적 이해타산 없이 그저 내 마음을 텅 비워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분석해서 우열의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좋고 싫음의 차별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있는 그대로 직관으로 받아들여 감상하고 즐기겠다는 입장이다. 흥이 나면 감정이입을 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대상과 최소한 동등한 입장에서 대상의 존재론적 특질과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풍경작용의 배경은 여러 가지다. 가장 먼저 물리적 골격을 들 수 있다. 각 방의 공간 골격에서 집의 전체 구성에 이르는 스케일 변화에 따라 물리적 골격 자체가 다양하게 변한다. 이것은 액자가 다양하게 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액자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와 시선 등도 다양해진다는 의미다. 풍경요소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물리적 골격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나누면 크게 셋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방과 집의 기본 속성을 채움이 아닌 비움의 개념으로 정의함으로써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준비된다. 둘째, 액자에 해당되는 창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만큼 다양하게 변한다. 셋째, 건물에 꺾임이 많아서 다양한 시선작용과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는 평면 구성이 분할-증식으로 이루어지면서 팔다리가 뻗어나가듯 각 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서 물리적 골격을 적절히 조작할 수 있을 때에 풍경요소는 집과 일체가 되면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방의 본질을 벽의 고형성에서 찾기보다 공간의 비움 상태로 받아들이는 일은 풍경을 즐기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창이 열리고 닫히며 작동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며, 집이 꺾이고 분할하며 증식하는 원리를 파악하여 풍경요소를 대입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행위마저도 사실은 인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제일 좋다. 풍경작용은 주거생활, 즉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여럿이다. 풍경작용은 집을 살기에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준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집에서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즐거운 놀이기능을 갖는다. 풍경작용은 집과 사람 사이에 접촉을 증가시킨다. 풍경을 만들기 위해 집을 다양하게 조작하고 만지게 되는데 이런 일을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면 집이 내 몸처럼 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집에 정이 붙게 된다. 풍경작용을 즐기며 창문을 이리저리 만지다 보면 창문은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다. 집에서 놀이를 즐기면서 집을 내 몸의 일부로 느끼며 정까지 붙이게 되니 모두 집이 갖는 기능들이다. 동시에 현재 우리가 사는 집이 철저하게 부족하게 갖고 있는 기능들이다. 따라서 이는 한옥이 뛰어난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임석재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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