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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시대의 그릇에 담다 "경기전"
15-07-08 13:38

전주는 한옥마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한옥마을은 문화도시 전주의 상징이 됐다. 전주에 한옥마을이 조성된 데에는 역사가 남긴 옛 건물의 흔적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한옥마을을 천천히, 느린 미학으로 바라본다면 한옥마을 중심부에는 경기전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품안에 안고 위용을 자랑하며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 경기전의 위용은 옛 건물 자체가 주는 장대함도 있지만 그 안에서 켜켜이 세월을 이기며 이 땅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한 어진, 태실, 전주사고의 역사적 존재감에서 나온다. 진전의 위치는 『태종실록』 권 17에 따르며 성안의 남문 부근인데, 처음에는 별도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고 어용전으로 불렸다. 이후 1412년에 태조진전이라 칭하였고, 1442년에 경기전이란 이름을 붙였다.

진전의 어진, 시대정신으로 꽃피워
경기전은 사적39호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317호)을 봉안한 곳이다. 원래는 매우 넓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서쪽 대지 절반 이상이 현재의 중앙초등학교 부지로 잘려 나가고 그 부속 건물 일체가 허물어졌다. 어진이란 한 조종과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특히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창업자의 영정이라는 점에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이런 이유로 태조어진은 한양을 비롯해 왕실의 본향인 전주,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의 구택이자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 남북지방을 대표하고 각각 고구려와 신라의 수도였던 평양과 경주 등 총6곳에 모셔졌다.
경기전에는 정자각 형태의 정전 내부에 감실이 있고 이곳에 태조어진이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봉안되어 있다. 이 어진은 1872년에 한성의 진전인 영희전에 있던 어진을 이모한 것이다. 이 어진 역시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경기전에 남아 있는 어진은1999년에 새로 모사한 것이다.


경기전


외형보다 중요한 그 안의 역사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경기전에 관한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조선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서거정(1420~1488)은 경기전에 대해 ‘손수 금척을 쥐고 등한을 평정하셨기에 / 깊고 그윽한 전각에 진용을 봉안하였네 / 훌륭하다 여기가 바로 용이 일어난 근거지이니 / 노란 파초 열매와 붉은 여지를 영원토록 올리리다’라고 노래했다. 또한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순(1441~1517)은 ‘시기에 호응하여 예언대로 동한을 평정하여 / 도탄에 빠진 백성을 평안하게 하였다 / 임금의 덕을 마땅히 백세에 제사할 것이니 / 오래도록 사당에는 단청이 빛나리라’고 예찬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문인과 학자들은 조선의 본향으로 경기전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찬연했던 조선 문화를 상징하는 경기전은 전라도 관찰사가 헌관이 되어 정조제, 한식제, 단오제, 추석제, 동지제, 납향제 등 매년 6차례의 제사를 지냈던 유고의 산실이다. 경기전 경내의 예종대왕 태실과 태실비는 원래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부락 뒷산에 세워졌던 것으로, 일제 때 파괴되어 구치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옮겨온 것이다.

전북인의 피나는 노력은 역사로 살아나
경기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는 전주사고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대부터 철종대까지 총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그 분량이 1,893권에 888책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당대 사회의 제반 사항이 총망라되어 있는,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문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처음 실록이 보관된 곳은 한양의 춘추관과 충주사고였다. 그러다 충주사고가 민가와 밀집한 시내에 위치해 화재의 염려가 있어 1439년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새로 설치하고 1445년 세종 27년,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네 곳의 사고에 실록을 각각 1부씩 나누어 봉안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고의 『조선왕조실록』처럼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도 임진왜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손흥록, 안의 등을 비롯한 전북인들의 죽음을 불사한 노고가 있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게 됐다. 만약 전주사고본마저 불타버렸다면 조선전기의 방대한 역사는 과거 속으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전북인들은 전란 속에서도 실록을 보존해 영화로 사라질 뻔 했던 조선의 역사를 지켰던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신성함으로 오늘에 남아
경기전은 한 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최고의 상징건축물이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위해 어진을 보관한 곳으로, 조선왕조는 경기전을 통해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변 경관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친화적으로 건축된 경기전의 매력은 빼어난 장인들의 솜씨가 빛나는 외형뿐 아니라 그 안에서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살아온 어진과 각종 문화유산에도 있다.
현재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태조어진 등 여섯 왕의 어진이 보관돼 있다. 또 경기전 정전, 조경묘, 예종대왕 태실비, 전주사고, 경기전 하마비 등 130여 점이 넘는 다양한 문화재, 자료가 분포돼 있다. 2014년 경기전을 방문한 유료 관람객은 129만 명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 이제는 명실상부한 문화재 관람의 필수 코스가 됐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본향이다. 경기전에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의 전주정신이 담겨 있다. 역사를 넘어 이제는 현대인과 호흡을 맞추며 경기전은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는 상징이 되고 있다. 지금도 경기전은 역사의 도도한 물결과 함께 전주를 걸어가고 있다.
 
-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 이상덕 (전라일보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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