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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은 왜 여자들을 꽁꽁 숨겨 놓았을까?
15-09-12 15:35
조선조에서는 여자들은 항상 모든 것에 규약을 받아야만 했다. 고려 때의 여자들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말을 달리는 것에 비해, 유교적 풍습에 의한 규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소재한 사적 제257호 운현궁은 대원군이 살던 곳이다. 이곳에는 경비업무를 맡은 병사들이 기거하는 수직당, 대원군이 집무를 보던 노안당,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노락당 등이 있다.

노락당 뒤편에는 노락당과 복도로 연결이 된 또 하나의 부녀자들의 공간인 이로당이 있다. 이로당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입구(口)자의 형태로 지어졌으며, 외부에서 남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을 지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구실을 한 이로당은 여자들만이 살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철저한 금남구역이다.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현궁 안살림의 최고책임자

이로당은 노락당과 연결이 되어있다. 노락당 뒤편과 이로당의 건물의 동편이 서로 복도로 연결이 되어있어, 여자들이 이 복도를 통해 움직일 수 있다. 결국 노락당과 연결이 된 이로당은 남자들의 출입이 제한 될 수 밖에 없도록 꾸며져 있다. 이로당을 돌아보면 어느 곳이나 출입을 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없다.

ㅁ 형의 공간 가운데는 중정을 만들고 사방이 모두 막혀있다. 이로당의 현판이 걸린 정면을 빼고는 복도를 모두 안으로 둘러, 그 안에서만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밖으로의 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노락당과 연결이 된 복도 한편은 높게 올려 그 밑으로 문을 내었다. 그 문으로 노락당과 이로당의 뒤편으로 출입을 할 수가 있고, 그 곳에는 우물이 두었다. 살림을 하기 위해서는 물을 길어야 하는데, 우물조차 안으로 숨겨놓아 밖으로의 출입을 제한 한 듯하다. 대원군이 기거하던 노안당과 안채인 노락당 사이에는 중문을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 한 것을 보아도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곳을 철저하게 보호를 했다는 곳을 쉽게 알 수 있다.  

철저하게 제한 된 이로당의 동선

왜 이토록 여인들의 공간인 이로당은 외부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한 것일까? 이로당 주변을 돌아보아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락당과 연결이 된 복도 밑으로 난 문을 통해 이로당의 주위를 돌아본다. 정면의 마루를 제외하고는 출입문이 없다. 



 노락당과 연결이 된 복도의 문과 뒤편에 있는 우물, 그리고 후원 

이토록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 시킨 것은 어쩌면 명성황후와 끊임없이 다툼을 벌였던 대원군이기에 여인네들의 외부출입으로 인해 세상사에 참여하기를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뒤편을 한 바퀴 돌아보아도 출입을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철저하게 출입이 제한이 된 철옹성 같은 곳이다.




이로당의 동선은 집 안에서만 이루어지게 구조가 되어있다.

이로당에 묵는 여인들은 다만 외부로 난 방문을 통해서만 비깥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운현궁 안의 안담장이 가로 막고 있어, 결국은 노락당과 이로당의 앞마당이 공간일 뿐이다.  이로당에 묵는 여인 중에는 운현궁 안살림의 최고책임자가 기거를 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대원군은 여인들이 세상사에 참여 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시켰던 것만 같다. 

며느리와의 서로 엇갈린 사고때문에 평생을 보내야만 햇던 대원군. 어찌보면 이로당은 그런 대원군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운현궁은 명성황후와 끊임없이 반복을 하기 이전에 지어진 별궁이지긴 하지만, 이로당을 돌아보면서 대원군의 마음이 이곳에 있는 듯하다. 여인네의 세상 참여를 원치 않는 대원군의 마음을.  
                                                                                                                          출처 : http://rja4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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