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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마음의 여유와 배려를 느낄 수 있는 집
15-09-12 17:35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미촌마을에 소재하고 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44호인 성위제 가옥. 안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초가로 되어있는 성위제 가옥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일각대문, 광채, 사당 등으로 배치되어 있다.

성위제 가옥은 대부분 20세기 초 이후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다만 광채만이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택을 답사하면서 만난 광채 중 가장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위제 가옥. 정면 네 칸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이 광은, 좌측 세 칸은 판자벽을 막고 문을 달았다. 바닥은 나무로 깔아 이곳이 곡간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나머지 우측의 한 칸은 개방을 하여 헛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광의 특별함이라는 것이 바로 판자벽이다.


재활용한 판자로 지은 광채

널따란 판자를 세로로 끼워 놓은 이러한 판자벽은 오래된 기법이다. 판자벽을 둘러보다 보니 조금은 이상한 것이 있다. 벽을 막은 판자에 구멍들이 뚫린 것도 있고, 가지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무를 보니 어딘가에 사용했던 나무들로 벽을 둘렀다. 나무를 재활용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이렇게 작지 않은 곳간을 갖고 있는 집에서 꼭 사용했던 목재를 이용해야만 했을까? 벽을 찬찬히 살펴보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주인의 알뜰한 습관 때문이다. 집주인의 물건 하나 함부로 하지 않는 마음이 배어있다. 막아놓은 벽은 듬성듬성 틈이 생겨 자연스럽게 통풍을 유도한다. 집주인의 여유로움이 배어있는 아름다움이다.



막힘과 자유스러움이 공존하는 외벽

안채 앞에 놓은 사랑채는 담 안과 담 밖에 걸쳐있다. 밖에서 사랑채를 출입할 때는 우측 담장에 난 작은 대문을 거치지 않고, 사랑채의 마루로 바로 연결이 된다. 사랑채의 뒤편에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채의 뒤편에 난 문을 열면 담으로 막혀있다. 왜 이렇게 외벽을 쌓은 것일까?

안채는 집안의 안주인이 주로 기거하는 생활공간이다 보니, 사랑채를 찾아 온 외부의 손님들이 안채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을 들어서면 사랑채를 길게 막아버린 또 하나의 벽이다.



사랑채는 바로 안채를 볼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 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사랑채와 안채의 거리는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주로 기거하는 공간이기에 집을 찾은 외부인들이 이곳에서 하루 묵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안채의 소리까지도 들릴 수 있는 거리인 사랑채가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차단하기 위한 외벽을 하나 막아놓았다.

그것 하나만으로 생활에 자유스러움을 얻을 수가 있다. 막힘과 자유스러움. 이것이 사랑채 외벽의 멋이다. 또한 사람들의 동선을 최대한 줄여놓아 이동을 편리하도록 하였다. 곳곳에 주인의 따듯함이 배어있는 집이다.



행랑채에 아랫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보인다. 그리고 우측에는 광채, 그 뒤에는 측간이 있다. 광채와 안채의 모서리에는 뒤주와 우물이 오롯이 자리한다. 좌측에는 담에 붙은 작은 문과 사랑채가 담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안채의 뒤편에는 담장으로 두른 사당이 자리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곳이 바로 행랑채다. 행랑채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은 집이, 바로 성위제 가옥이다. 비록 내가 부리는 사람이지만, 최선을 다해 인격을 존중했음을 행랑채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대문을 낀 행랑채를 보면 성위제 가옥의 집주인이 얼마나 아랫사람을 배려했는가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고택의 경우 대개는 대문 양 편이나 한 편에 방을 두게 된다. 그러나 성위제 가옥의 행랑채는 대문과 방 사이에 헛간을 두고 있다. 이것은 대문에서 방을 바로 연결하지 않아, 문을 열고 닫을 때 소음을 조금은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간에 광을 두어 문을 여닫는 소리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얻어낸 것이다.



안채와 광채의 모서리에서 만나게 되는 뒤주와 우물. 전통기법을 그대로 살려 만든 뒤주는 이 집의 모든 아름다움을 정리하고 있다. 사방 한 칸으로 지어진 뒤주는 땅에서 한 자 정도를 높였다. 습기를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물과 가까이 두어 살림을 하는 부녀자들의 동선을 최대한 짧게 만들었다. 쌀광에서 바로 우물로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집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만나는 여유로움과 배려. 아랫사람도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성위제 가옥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출처 : http://rja4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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