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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우리문화의 원천
15-07-05 17:54

굿은 기층 민중의 신앙체계이자 문화적 표현의 원천이다. 우리 민족은 일상 생활과는 다른 위험하거나 절박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국면을 순조롭게 극복해달라는 염원을 흔히 굿이라는 행위로 표출시켰다. 우리의 삶에서 문득 닥치는 억울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적절한 해소 절차 없이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응어리로 남아 있게 되면 우리 마음은 깊이 병들게 된다. 이 마음의 병을 제대로 풀어내어 해소하지 못하면 집단적 우울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특히 한(恨)이라고 불렀는데,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크게 펼쳐온 것이 이른바 나라굿(國中大會)이다.
굿은 궁극적으로 한국인의 깊은 한을 예술 형태로 풀어주고 달래주는 의례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유교식·불교식 의례가 전통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불교적 제의로 영산재(50호), 연등회(122호), 삼화사 수륙재(125호), 진관사 수륙재(126호), 아랫녘 수륙재(127호) 등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유교식 제의로는 종묘제례(56호), 석전대제(85호), 직대제(111호) 등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향유되고 있다.

이들 의례는 대체로 엄숙한 법식과 형식적 의례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그러나 서민의 가슴속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은 민간의례인 굿이었다. 굿은 서민들의 정서에 녹아들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굿은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굿의 형태와, 죽은 이를 저승으로 편안하게 보내는 의식인 사령제로 크게 나뉜다. 마을굿으로는 강릉단오제(13호), 경산자인단오제(44호), 법성포단오제(123호), 은산별신제(9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71호), 동해안별신굿(82-1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82-2호), 위도띠뱃놀이(제82-3호), 남해안별신굿(82-4호), 경기도도당굿(98호)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맥을 이어온다. 그리고 죽은 이를 위로하는 사령제로는 진도씻김굿(72호)과 서울새남굿(104호)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박병천 명인진도씻김굿은 박병천이라는 탁월한 세습무의 강인한 리더십에 기인하여, 1980년 11월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실 민속적인 굿이 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의외인 측면도 있었으나, 우리의 무형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굿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김석출의 동해안별신굿, 김금화의 서해안배연신굿, 정영만의 남해안별신굿 등이 의미있는 굿거리로 지정되었고, 이들이 나라를 대표하는 만신으로 비로소 자리를 잡아갔다.
박병천 명인은 대금의 명인 박종기의 종손자이다. 박병천은 진도의 전통무속을 온전하게 전승하면서도, 그것을 무대화하여 하나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내었다. 진도씻김굿은 망자의 넋을 말 그대로 씻겨 그 넋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천도의례다. 전라도 굿은 음악성이 뛰어나다. 흔히 굿판에서 사용되는 징이나 꽹과리 같은 타악기 이외에 관현악을 반주음악으로 삼아 무가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한다. 박병천의 음악성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가무악의 대가다운 면모로 전승력과 창작력에서 추종을 불허하는 기량으로 진도씻김굿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우석대강당 공연모습1992년, 필자가 재직 중이던 전주우석대 강당에서 박병천 일행이 진도씻김굿을 공연하였다. 이 굿의 명분은 갑오농민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박병천 선생은 대학에서의 굿 공연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개런티 없이 무대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는 김대례·이완순·김귀봉·박병원 등 최고 기량을 갖춘 문화재와, 이태백·이종대·홍옥미·박환영 등 최고의 악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그야말로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이날 500명 정도를 수용하는 강당에는 2,000명 정도의 관객이 모여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우석대뿐 아니라 전북대·원광대 등 주변 학교에서 버스로 몰려와서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굿 구경을 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씻김굿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요소는 음악적 완성도이다. 굿 노래와 반주음악에 있어서 장단이라 불리는 박자구조는 일정한 양이 반복되는 구조이다. 무가의 여러 부분에서 자주 등장하는 “넋이로구나, 신이로구나. 가련하다 인생 육은 처량하고나 넋이로세. 한 번 아차 죽어가니 인간세상 가지가나, 다시 못 올 길 가시는구나”라는 대목으로 보면 이승에서의 삶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듯이 저승에서의 삶도 그다지 풍요로울 것 같지 않다. 김대례가 부르는 혼맞이 노래의 그늘 짙은 성음이 특히 돋보였다. 김대례의 목소리는 그늘이 짙은 소리로서, 사람의 목소리로 표출되는 세계의 무게를 처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목구성이 빼어난 무당이자 뛰어난 반주자이기도 한 박병천은 징과 장고로 반주하며 무녀의 뒤에서 바라지를 통하여 작품성을 확장시켜주었다. 씻김굿은 죽은 이를 제대로 씻겨 원한에 찬 삶을 녹녹하게 풀어서 저승으로 잘 보내려는 의도가 담긴 제의이다. 그래서 이 의식은 죽은 이를 위로하고 쓰다듬어주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씻김굿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 치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오히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더 애달파하며, 자기 설움에 쌓인다. 자신이 원래부터 가진 서러움에 죽은 이의 원한까지 가슴에 품고 있다. 이와 같은 정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굿이 마련된다.

죽은 이를 위로하는 씻김굿에서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이 위로받는 경향이 생겨났다. 시로 표현되는 문학과 슬프면서도 화려한 음악 그리고 신과 닿으려는 춤 등 예술적 차원이 정신적으로 고통에 빠진 이들의 정신적 치유에 일정하게 기능한다. 그래서 진도씻김굿은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 된다. 이 굿의 기본 명제는 ‘사람이 즐거워야 귀신도 즐겁다’는 것이다. 남은 이들이 굿 마당에서 실컷 신명을 내고, 제사상에 놓인 떡도 먹으며 억울하게 죽은 이를 이제는 잘 보냈노라고 마음에 한 가닥 남은 안쓰러움까지 모두 씻어내야만 귀신이 된 친구도 충분히 흠향하고 편안히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를 노래와 음악과 춤으로 위로해주던 박병천·김대례·이완순 명인이 이제 그 자리를 비우고 돌아갔고, 그들의 다음 세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들이 이루었던 경지에 언제쯤 닿을 수 있을까.

* <다시 부르는 그 이름> 연재물은 기능(홀수달), 예능(짝수달) 분야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 글. 유영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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