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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한 여사(女師)
15-07-06 13:19

조선 시대 왕실여성들은 과연 어떠한 교육을 받았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본인이 조선 시대 왕실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과연 조선 시대 왕실의 여성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역사의 기록이란 게 기실 남성 위주의 기록이다 보니 여성들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왕실 구성원의 반을 차지하는 왕실여성들은 어떻게 살았고 어떠한 교육을 받았을까? 왕실의 여성은 크게 비빈과 같이 간택을 통해 입궁한 경우와 공주나 옹주같이 왕실에서 태어난 경우 그리고 후궁의 직첩을 받아 왕실 구성원이 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비빈들의 경우 최종 간택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별궁에서 가례가 치러질 때까지 왕실의 법도를 익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간 동안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대한 기록이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다만 『조선왕조실록』에 1743년(영조 19) 사도세자의 빈이자 정조의 어머니가 되는 혜경궁 홍씨가 9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자, 영조가 그 부친이 되는 홍봉한(洪鳳漢, 1713~1778)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 등을 내려 별궁에서 가르치게 하였다는 기록(『순조실록』권19, 16년 21일 辛丑條)이 있다. 이로 보아 별궁에서 왕실의 법도뿐만 아니라, 여훈서(女訓書)를 읽으며 교양을 쌓았음을 알수 있다. 당시 혜경궁 홍씨의 경우 영조가 특별히 그 부친에게 별도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제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왕실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사건은 1436년(세종 18) 세종이 당시 세자빈이었던 순빈 봉씨를 폐위시키게 된 연유에 대해 대신들에게 내린 교지(敎旨)의 일부다. 세종은 이전에 휘빈 김씨를 세자빈에서 폐위시킨 일이 있었는데, 또다시 며느리를 폐위시키게 된 것이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여사의 가르침을 거부했다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로 기인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바로 여자 스승 곧 여사(女師)라는 직책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는 여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이전에도 왕실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별도의 여자 스승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승정원일기』에도 여사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는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이기는 하지만, 왕실의 여성이 아닌 왕세자의 어린 시절 예법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사라는 직책이 반드시 왕실여성들의 교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왕실여성은 물론 왕실의 어린 자녀들의 예법과 같은 교육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우리 역사상 여사제도에 대한 기록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남북국시대의 발해다. 발해는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고, 2대왕인 무왕(武王) 대무예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까지 그 강역을 확대했으며, 3대왕인 문왕(文王) 대흠무에 이르러서는 당나라와 화친을 맺어 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당나라의 국자감(國子監)을 모방한 주자감(冑子監)을 설립하여 왕족과 귀족 남성들을 가르쳤고, 여사를 두어 왕족과 귀족 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는 문왕의 둘째딸인 정혜공주(貞惠公主, 738~777)와 넷째 딸인 정효공주(貞孝公主, 757~792)의 묘비명에 “일찍이 女師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능히 그와 같아지려고 했고, 매번 漢나라 반소(班昭,45~117?)를 사모하여 詩書를 좋아하고 禮樂을 즐겼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경우 삼국시대에는 선덕여왕(善德女王, ?~647)과 진덕여왕(眞德女王, ?~654)이라는 두 여왕이 존재하였고, 남북국시대에도 진성여왕(眞聖女王, ?~897)이 있었다. 때문에 신라 시대는 왕실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고려 시대 또한 왕실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로 보아 남북국시대 이후에도 왕실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여자 스승이 있어왔고, 그 전통이 조선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발해의 전통이 계승되었다기보다 역대 중국에서 황족과 귀족 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한 별도의 스승이 있었으므로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글˚육수화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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