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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궁중연향에서 사용되는 각종 왕실 채화
15-07-06 14:37

궁중연향에서 사용되는 각종 왕실 채화는 상당량에 달했다. 고종39년(1901)의 『신축진연의궤』에 의하면 외진연에 2만 7천여 개, 내진연에 1만 8천여 개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채화를 공급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있었지만, 조선왕조에서도 봉상시와 예빈시, 내자시에 모두 18명의 경공장인 화장(花匠)을 둔다고 『경국대전』과『대전회통』에 기록되어 있다. 수요가 많아 관에서의 공급 외에도 민간으로부터 조달하기도 했다.

왕실 채화의 제작과정과 기법은 중요무형문화재 궁중채화장인 홍수로 박사를 통해 전승 또는 복원되고 있다. 채화는 잠자리 날개
처럼 가벼운 최고급 비단을 사용하는데, 정련으로 깁바탕을 고르고 자연염색을 한 생동감 나는 재료를 통해 만든다. 염색된 비단에 풀을 먹여 그늘에 말린 후 다듬이질하여 은은한 윤기와 화사한 빛을 발하게 한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조각도와 가위, 인두와 붓 등을 사용하여 형상화하게 된다. 가장 정교한 꽃술의 경우, 세모시 올 40~50개를 풀어 비단실에 묶고 그 끝에 송홧가루를 꿀에 개어 한 올 한올 붓질하여 올린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만들어진 조선의 왕실 채화는 현재 실물로 전하는 것은 없고 궁중연향의 행사장면을 그린 기록화 등을 통해 엿 볼 수 있다.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준화의 경우, 조선 후기의 시각자료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한다.

1795년 『화성능행도병』의 「봉수당진찬도」에서부터 용무늬 있는 백자에 장식 꽃나무 ‘채화주(綵花株)’를 꽂은 준화로 묘사되고 조선전기 기록화보다 규모도 커졌다. 당시 의궤에 높이 60cm 가까운 ‘용준(龍樽)’에 한 섬의 백미를 담고 3m 가까운 9척 5촌 길이의 준화를 진설한다고 기록한 것에 비해서는 다소 작게 보인다. 실제로는 2천여 개의 꽃과 20여 마리 새와 곤충 등으로 장식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기록과 일치되는 규모로 그려진 연향행사도는 1848년 『무신진찬도병』의 「통진전진찬도」와 1887년 『정해진찬도병』의 「만경전진찬도」, 1901년경 『신축진연도병』과 1902년 『임인진연도병』의 함녕전 여러 진연도 등으로, 궁전 건물 기둥의 반 정도까지로 크게 묘사되었다. 화준은 쌍 희(囍)자에 꽃무늬를 그린 60cm 조금 넘는 자기에 붉은 띠를 어깨부분에 리본 모양으로 묶은 청나라 제품 ‘당화준(唐畵樽)’으로 바뀌었다. 이들 준화는 중국의 전통적인 주렴처럼 문에 치는 발(門簾)의 병화(甁花) 무늬 양태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이들 기록화보다 1795년에 편찬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삽도인 ‘도식(圖式)’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조형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용준에 절지가 아닌 벽도(碧桃)로 추정되는 전수식(全株式) 나무에 꽃과 열매 그리고 22마리의 새들과 1마리의 잠자리가 묘사 되었다. 새는 봉황과 공작, 꿩, 제비, 금조, 참새 등의 상서로운 서조(瑞鳥)와 진금(珍禽)류로, 전체가 화조도와 영모도, 화충도, 화훼도, 수목도의 혼성적 양식을 지닌다. 이 밖에 1829년의 『기축진찬의궤』에 ‘별가화(別假花)’로 기재된 준화를 비롯하여 다른 의궤에는 학과 나비가 깃든 다양한 유형이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자연에서의 정경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길상벽사(吉祥辟邪)의 상징물로 만든 것이다. 분재화가 ‘여자식(女字式)’ 등화보풍 감상화의 조형성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면, 궁중 준화는 중국한대의 화상석 등에 보이는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연리지(連理枝)모양의 건목(建木)과 부상수(扶桑樹)와 같은 신수(神樹) 또는 우주목에 영모(翎毛)류가 깃들어 있는 도상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재생과 풍요를 상징하는 ‘백화요란’의 우주축 장엄물인 이들 도상이 생명의 나무인 장청수(長靑樹)에 꽃과 영모가 결합된 명·청대의 전지화(剪紙花)로 계승되었으며, 이를 조선식으로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괴석과 함께 그려진 중앙 전주식 화충도의 구도와도 연관성이 추측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채화는 그림에서 자연물의 창생(創生)을 재현한 진경(眞境)을 높게 평가했듯이 생화와 방불한 ‘핍진’이 강조되었다. 조수삼(1762~1849)은 비단을 오려서 만든 ‘전채화(剪綵花)’에 대해 “참된 장인이 빼어나게 오묘한 솜씨로 계절 없이 피는 꽃을 능숙하게 만든 꽃(眞工多妙手 能作不時花)”으로 “(이파리의)성글고 빽빽함을 모두 자연에 이치에 맞게 하고, (꽃의)짙고 옅음을 각각 빛남으로 분배하여(密踈皆適理 深淺各分華)”(『추재집』) 만들었다고 평했다.

기정진(1798~1879)도 “사시사철 언제나 봄 같이 느끼게 하여 또한 살아있는 꽃이다(胸中長有四時春...亦活花也)”며 감탄한 바 있다. 이덕무(1741~1793)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채화를 보고“진짜 꽃을 초라하게 할(眞花倒索然)”(『청장관전서』) 정도로 신묘하다고 했는가 하면, 박윤묵(1771~1849)은 “귀신의 솜씨를 탈취한(假花...奪神工)”(『존재집』) 즉 ‘하늘의 솜씨(天工)’라고도 했다. 조선 명화(名畵)의 세계를 ‘탈천기(奪天機)’로 칭송했듯이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하늘이 자연을 생성화육(生成化育)한 것과 같은 창생의 신묘한 경지로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주로 감상용 채화를 대상으로 언술한 것이지만, 왕실의 연향용 채화도 동질의 차원에서 조형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궁중 준화를 비롯한 조선의 채화는 자연과 같은 창생의 경지에서 만든 상서롭고 화려한 우리 문화유산의 정수로, 공예예술뿐 아니라, 회화사적으로도 각별하며 새로운 조명과 관심이 긴요하다.
 
1. 준화 - 신축진연도병 부분 2. 준화 -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황수로 보유자 제작 (2013) 3. 준화 - 원행을묘정리의궤 4.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 황수로 보유자 제작 준화 세부

                              - 출처: 한묵문화재재단 글˚홍선표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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