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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인은 익명의 예술가가 아니다
15-07-07 17:32




장인(匠人), 그들은 누구인가? 그동안 장인은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무명의 존재로 여겨져왔다. 게다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집단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들을 ‘익명의 예술가’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장인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맡은 바 작업에만 묵묵히 몰두하기에, 그들의 모습을 ‘장인 정신’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동안 조선시대의 장인을 이름 모를 무명의 존재로 치부한 것은, 그들이 비천하고 학식이 없으며 비루한 신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기록의 왕국답게 그들 장인의 이름을 당당히 기록했다. 곧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같은 궁궐을 세우거나, 선조의 목릉을 비롯한 왕릉이나 고종황제의 홍릉과 같은 황릉을 짓거나, 왕권을 상징하는 어보와 같은 다양한 왕실의 공예품을 만든 장인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해둔 것이다.

『의궤』가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의궤』는 ‘의례의 규범’으로서 조선 왕실의 오례[가례·흉례·길례·군례·빈례]의 전말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왕실을 왕실답게 해준다. 왕실 행사 때 사용한 못 하나, 동전 한 닢은 물론 장인 한 명의 이름까지 올라 있다. 특히 『의궤』 내 「장인질」에는 17세기 이후 조선후기 300여 년 동안 조선 왕실을 위해 활동한 500여 종류의 10만 여 장인의 명단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언제라도 그들의 이름을 꺼내어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의궤 속 조선후기의 장인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장인들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장인의 종류나 명칭은 조선의 법적 제도를 정비하면서 편찬한 『경국대전』에서 비롯하여, 조선후기 『의궤』를 거쳐 현재 정부나 시도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 장인들과 잇닿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작업 현장에서 만난 장인들의 몸은 비록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와 도구 및 제작기술은 전근대의 것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장인을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본인이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수행한 사업이 중요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이었다. 당시 1년에 10종목의 기록영화와 기록책자를 제작하였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한 종목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筬匠]이다. 바디는 일반인에게 낯선 용어이지만, 옷감을 짜는 베틀의 부속도구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예전에는 식구들의 옷감을 어머니가 만들어내던 시절이 있었기에 집집마다 베틀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바디를 만드는 장인의 명칭은 『경국대전』에 화석화된 채 기록되어 있을 뿐, 더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18〜19세기의 11개 『의궤』에서 ‘성장(筬匠)’이란 명칭으로 57명의 바디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각자는 개인마다 자기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짧게는 한 번만 등장하지만, 19세기 초 동수명(董守明)은 두 번 동원되었다. 게다가 19세기 바디장들은 모두 상의원 소속 관장(官匠)이 었는데, 당시 나머지 대부분의 장인들이 관청에 소속되지 않고 사적(私的)인 생산에 종사하던 사장(私匠)이었던 것과 비교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19세기 말 기산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 중에 ‘바디장이’라는 그림이 있다. 부부가 마주 앉아 남편은 바디틀을 앞에 두고 댓살을 끼우는 작업을 하고, 부인은 완성된 바디를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바디장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재료와 도구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기 이후 베틀의 사용이 줄어들면서 바디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어,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8호 바디장을 지정하고, 구진갑을 보유자로 인정한 바 있다. 풍속화 속 장인을 현실에서 만난 듯 언제나 깔끔한 성격에 작품에 정성을 쏟던 그분도 2006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인의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분이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립다. 이렇듯 의궤는 장인 연구를 위한 화수분과도 같다.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의 건축을 지은 목수, 왕실의 잔치를 비롯한 각종 행사 때 그림을 그리거나 왕의 어진을 그린 화원, 가구나 그릇을 만든 소목장과 유기장 및 옥장, 왕릉을 조영한 목수와 문무석인이나 석양석호석마 및 비석 등을 세운 석수와 조각장 및 정자각에 단청을 그린 화승 등을 의궤에서 찾아내어, 오늘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가 감히 장인을 익명의 예술가라고 했던가?

이제 그들은 결코 익명이 아니다. 그들은 왕실의 의례행사 때 궁궐을 짓고, 석재를 다듬고, 가구를 짜 넣고, 그릇을 빚고, 꽃을 만들고, 옷감을 짜고, 옷을 꿰매고, 매듭을 엮고, 수를 놓아 장식하였음을 우리는 안다. 바디를 만드는 장인의 아주 소소한 기술도 조선후기 『의궤』에서 찾아지듯, 한말 김준근의 풍속화에서 발견되는 장인의 기술은 광복 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경국대전』에 기록된 280여 종류의 전통공예기술은 조선후기 『의궤』에서 430여 종류로 전문화, 세분화되었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장인들의 미천한 신분을 숨기거나 기술을 감추면서 사라져, 1960년 이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공예기술은 고작 60여 종류만 남아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본고를 통해 조선후기에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었던 장인들의 전통기술 중 사라진 것은 되살리고, 변질된 것은 원형대로 회복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장인에 관심을 갖고, 장인 정신으로 대변되는 한국 공예문화의 지평이 넓혀지길 희망한다.
                                          글˚장경희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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