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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전장포새우젓 1.jpg
 
 
옛 그림에서 보는 임속문화 선비들의 차(茶) 마시기
15-07-07 17:43

 
 
옛 그림 인물산수화를 보면 선비 옆에 어린아이, 동자(童子)가 자주 등장한다. 가장 익숙한 것은 봇짐을 지거나 나귀를 끌고 가는 아이의 모습이다. 물론 술을 내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경윤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16세기 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내아이나 신윤복 <사시장춘(四時長春)>(18세기~19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계집종처럼 말이다. 소당 이재관(小塘 李在寬, 1783~1838)의 <오수도(午睡圖)>를 보자. 깊은 산속 초옥에서 한 선비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책을 베고 누운 것을 보니 책을 읽다 잠이 든 모양이다.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에 올려놓은 채 누워 있는 모습이 그저 편안하기만 하다. 분명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일 게다. 그 초옥 옆에 한 아이가 단정하게 앉아 차를 달이고 있다. 질화로에 다관(茶罐)을 올려놓고 차를 끓이는 모습이다. 부채질을 하다 뒤를 돌아본다. 학 두 마리를 바라보는 것일까. 이렇게 차 달이는 아이를 다동(茶童)이라 불렀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945~1806년경)의 <초원시명(蕉園試茗)>도 재미있는 그림이다. ‘초원시명’은 파초나무 정원에서 차를 맛본다는 뜻. 직선으로 뻗어 올라 좌우로 쫙 펼쳐진 파초 한 그루가 화면 한가운데를 딱 차지했다.
 
김홍도답게 화면 구도가 과감하고 시원하다. 파초 아래를 보니 나무 판 아래에 적당히 돌을 괴어 서탁을 만들었다. 책 두 권과 작은 벼루, 몽당 먹. 두루마리 그림 3축, 그리고 찻잔과 거문고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서탁의 주인은 어디 갔을까. 분명 깊은 곳에 들어와 은거하는 선비일 텐데, 더 깊은 곳에 들어가 쉬고 있는 모양이다. 그 선비 대신 사슴이 앉아 있다. 흥미롭다. 서탁 또 한쪽엔 아이가 쪼그려 앉아 차를 달이고 있다. 질화로에 다관을 올려놓고 부채질하며 숯불을 피우고 있다. 잠시 후 돌아올 선비를 위해 차를 달이고 있는 것이다. 선비가 얼마나 차를 좋아하기에 이렇게도 열심히 차를 달이는 것일까. 김홍도는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은 채 주인공의 내면과 성격을 기막히게 보여준다. 파격적인 구도에 감춤의 미학까지, 과연 단원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옛사람들은 정말로 차 마시기를 즐겼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차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2011년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냈던 편지 모음집 두 권이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서간첩의 이름은 『벽해타운(碧海朶雲)』과 『주상운타(注箱雲朶)』. ‘벽해타운’ 은 ‘푸른 바다 건너 온 편지’라는 뜻. 대부분 제주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여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주상운타’는 ‘상자 속에서 꺼낸 편지’라는 뜻이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를 상자 속에 담아 두었다가 추사 사후인 1862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추사는 초의가 만든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들 서간첩은 초의 차에 대한 추사의 애정과 욕심, 질투에 이르기까지 추사의 내면을 보여주어 매우 흥미롭다. 그 내용을 보면 이런 식이다. ‘차 시절은 아직 이른가요. 아니면 이미 따기 시작하였소. 몹시 기다리고 있다오. 일로향실(一爐香室)의 편액은 마땅히 적절한 인편을 찾아서 보내겠소. 금년에는 차를 만들면 무더울 때 보내지 말고 반드시 가을을 기다려 서늘해지면 보내주는 것이 좋겠소. 항아리에 넣을 때는 단단히 싸서 보내도록 하시구려.’ ‘차 봉지는 절대로 습기가 많을 때 갑작스레 부치지 않는 것이 어떻겠소.’ 초의 차에 빠져 안달하는 김정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또 다른 서간첩인 『나가묵연(那伽墨緣)』을 보면 “거친 추아차(麤芽茶)는 부처님 앞에 올리고 내게는 좋은 것만 골라 달라”고 다소 얄미운 부탁을 하기도 했다. 사사롭고 적나라해서 오히려 더 정겹다. 추사라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차의 매력이 이런 것일까.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 만덕산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 산은 차밭이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렀다. 그 곳의 차가 좋아 정약용은 자신의 호를 다산으로 정했을 정도였다.
 
정약용은 다산초당과 근처 백련사를 오가며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유배객의 마음을 달랬고 차를 마시며 학문에 정진했다. 이렇게 보니, 유배객에게 차는 더욱 각별했던 것 같다. 차 마시는 분위기를 표현한 옛 그림 가운데 독특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다. 한 선비가 큼지막한 바위에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다. 달이 낮게 떠 있다. 분위기가 그만이다. 그 옆에서 더벅머리 아이가 열심히 차를 달이고 있다. 저 바위 아래엔 아마도 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이 각별한 것은 달빛 아래 거문고를 타면서 차를 마신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이다. 그래서인지 달밤과 더 잘 어울리고, 여운은 더욱 깊다. 김홍도의 <초원시명>에도 거문고가 나오지만 여기엔 둥근달이 없다. 하지만 이경윤의 그림은 단순 간일하지만 차가 있고 거문고와 둥근달이 있다. 차를 마시는 데 이보다 더한 운치가 어디 있을까. 요즘은 밤이 너무 밝고 휘황찬란하다. 깊은 사색과 여유를 방해한다. 밤이 밤답지 않은 것이다. <월하탄금도>를 감상하다 보니 ‘창덕궁 달빛기행’이 그리워진다. 돈화문 지나 진선문, 인정전, 낙선재, 부용지, 연경당, 후원의 숲길까지. 다가오는 보름밤에는 창덕궁을 바라보며 차를 마셔야겠다.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글˚이광표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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