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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를 겸비한 고려명장 인헌공 강감찬설화
15-05-28 20:00

이미지출처 : 삼삶스토리
강감찬설화
인헌공 강감찬은 대평 7년 임오에 갑과에 장원 급제하고 현종 통화 27년 기유에 한림학사가되었다
이해 11월에 거란의 성종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침략해 왔다. 임금은 금성으로 피난하고 하공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돌아가도록 강화하게 하였다. 성종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는데 이 모든 책략이 강감찬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임금은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그를 위로하고 치하하였다.
 
"경술년에 오랑캐의 소란이 있어, 병기가 깊숙이 한강가에까지 이르렀도다. 그 때에 강군의 책략을 쓰지 않았더면, 나라 사람이 모두 야만인의 옷을 입을 뻔하였도다."
 
오늘날 그의 출생에 대하여 세상에 전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 한 사신이 밤에 시흥군으로 들어서는데 큰 별이 인가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신은 관리를 보내어 그 집을 잘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 집에서는 마침 부인이 사내 아이를 낳았다. 사신은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아이를 데려다가 기르게 되었으니, 그 아이가 곧 강감찬이며 후일에 정승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송나라 사신 가운데 학식이 깊은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강감찬을 보러 와서는
"문곡성이 사라진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 별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가 없더니 오늘 공을 뵈오니 공께서 바로 문곡성이시군요." 
하고 말하면서 곧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예를 베풀었다.
 
( 이 이야기는 실로 황당하기는 하지만 고금의 벼슬아치들에 의해서 전해 왔고, 또한 임 상국댁에 그러한 기록이 있기로 여기 싣는 것이다.)
 
고려의 명장이었던 강감찬은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인물로서 역사적인 인물이며, 구전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글의 내용은 최자의 보한집에 실려 있는 것으로서 역사의 사실적인 내용과 설화적인 내용이 종합된 '역사의 설화화'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이 설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흥미적, 교훈적 요소가 가미된 역사 설화이다.
 
고려 전기의 명신 강감찬에 관한 설화. 문헌설화는 고려사열전을 비롯하여 세종실록지리지·용재총화·신증동국여지승람·해동이적 海東異蹟·기문총화 記聞叢話등에 전한다. 구전설화는 전국 각지에서 널리 전승된다.
그의 출생에 관한 단편적 일화, 즉 어느 날 밤 한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집을 찾아갔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아기를 낳았으므로 그 아기를 데리고 와 길렀는데 그가 곧 강감찬이다.
 
뒤에 송나라 사신이 와서 그를 만나 보고는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고, 부적으로써 호랑이를 물리친 일화는 용재총화·신증동국여지승람·기문총화에 실려 있으며, 해동이적에는 출생담과 함께 호랑이퇴치이야기가 실려 있다.
구전설화는 문헌설화에서 나타나는 강감찬의 그와 같은 이인적(異人的) 면모를 더 확대해서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출생담 성장시 일화 벼슬한 이후 일화로 분류할 수 있다.
 
출생담에 관하여 문헌설화에서는 강감찬이 문곡성의 화신이라고만 기록한 반면에, 대부분의 구전설화에서는 강감찬이 여우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구전 설화에 의하면, 강감찬의 아버지가 훌륭한 태몽을 꾸었고, 또는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본부인에게로 돌아오던 길에 여우 여인과 만나서 관계를 맺어 낳게 된 아이가 강감찬이라는 것이다. 그의 출생담은 흔히 시조(始祖)나 위인 등에서 나타나는 출생설화와 일치한다.
 
성장시 일화에 관하여는 대표적인 것이 강감찬이 곰보가 된 일과 귀신을 퇴치한 일이다. 강감찬은 스스로 얼굴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다 하여, 마마신을 불러 얼굴을 얽게 하여 추남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친구 딸의 혼인식에 가면서 강감찬은 얼굴이 못생겼다고 데리고 가지 않았는데, 강감찬은 몰래 혼인식에 참석하여, 사람으로 둔갑해서 신랑 행세를 하는 짐승(귀신)을 퇴치함으로써 그의 비범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벼슬한 이후의 일화는 더욱 다양하다. 강감찬이 소년 원님으로 부임하였을 때 그는 자신을 너무 어리다고 얕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 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다 집어넣어 보라고 하였다.
그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는 겨우 일 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라고 호통을 쳐서 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밖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퇴치한 이야기들도 많이 전해진다. 그가 어느 고을에 부임하여 업무를 보는데, 여름날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관속에게 부적을 써 주고 못에 던지게 했더니, 그곳의 개구리가 다시는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지역에서 전승된다.
 
한편, 호랑이를 쫓은 설화는 그가 한성판윤으로 부임했을 때, 남산(또는 삼각산)에 사는 수백 년 된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고 길을 지나는 사람을 수없이 해친다는 민원(民怨)을 듣고,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와 크게 꾸짖어 앞으로 새끼도 평생에 한 번만 낳고, 몇몇 산에만 살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밖에 모기를 없앴다는 이야기, 개미퇴치이야기,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손으로 꺾었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그의 이인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강감찬설화에는 정사(正史)에 나타나는 명장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으나, 이 설화들은 기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도가적 인물의 맥락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 말기 활자본으로 인쇄된 작자 미상의 강시은 그에 관한 일화를 집대성하여 작품화한 고전소설이다.
 
참고문헌高麗史, 世宗實錄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弁齋叢話, 記聞叢話, 강시, 朝鮮民族說話硏究(孫晉泰, 乙酉文化社, 1947),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강감찬 금와훤(姜邯贊 禁蛙喧) 전설
 
고려 때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이 경주 도호사로 있을 때, 경주성 내의 개구리가 너무 소란스럽게 울어 강감찬이 돌에다 명령서(命令書)를 써 개구리 왕에게 보냈더니, 그 이후부터는 경주성 내의 개구리가 울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과 같다.
 
어느날 밤 어떤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그 집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곧 강감찬이었으며, 후에 중국 송()나라 사신이 와서 만나보고는 강감찬이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낙성대(落星臺) 설화로서 세종실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대부분의 구전설화는 좋은 태몽을 꾼 강감찬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한 끝에 여우 여인과 관계를 맺고 낳은 것이 강감찬이라고 한다. 성장시 일화 중 대표적인 것은 곰보가 된 것과 귀신을 물리친 일이다. 강감찬은 원래 얼굴이 잘생겼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마마신을 불러 얼굴을 얽게 하여 추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혼인식에 참석하여, 사람으로 둔갑해서 신랑행세를 하는 귀신을 물리침으로써 그의 비범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감찬이 한성판윤으로 부임했을 때, 삼각산에 사는 늙은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많은 사람을 해친다는 말을 듣고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 크게 꾸짖고는 다른 산에 가서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이인적인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런 설화들은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도가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려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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