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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박의 염원, 놀부박의 탄식
15-07-05 23:04


중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흥부 놀부 이야기는 민간에 널리 유포되던 설화(說話)를 근간으로 사설이 형성되어 판소리로 구연(口演)되었고 판소리 소설로 정착되기도 했다. 오늘날 내용 전체가 전해지는 판소리 사설로는 19세기 후반 신재효(申在孝) 사설 집에 실린 것이 그 최초이다. 그리고 소설로 판각(板刻)된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서울에서 판각된 경판본(京板本) 흥부전이 있을 뿐이고, 전주에서 판각된 완판본(完板本) 흥부전은 보이지 않으니 완판은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판소리 사설에 중점을 두게 되는데, 민간 일화와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 세태를 풍자하는 재담등이 핵심내용으로 되어 있다.

흥부전의 인물 설정은 선인과 악인을 대비시켜, 선행에는 보상이 이루어지고 악행에는 징벌이 따른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 교훈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한편 도덕 강조 사회인 조선시대에 선인과 악인을 형제로 설정하여, 형은 아우를 돌보아야 한다는 윤리에 어긋나게 구성했다는 점이 주목을 요한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경제적인 이익 앞에 무너져 내린 윤리의식을 다시금 고취시켜 도덕사회 건설에 도움을 주겠다는 교화정신이 크게 반영되었다.


사실 조선후기 작가들은 사회지도자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소설 작가로 판소리 4개 작품 사설을 신소설로 재구성한 이해조(李海朝)는 그의 소설 화의 혈에서, “기자 왈……소설이라 하는 것은 매양 빙공착영(憑空捉影)으로 인정에 맞게 편집하여 풍속을 교정(矯正)하고 사회를 경성(警醒)하는 것이 제일목적(第一目的)인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가 아닌 허구사실을 구성하여 나쁜 풍속을 바로잡고 문란한 사회를 깨우쳐 각성시키는 것이 소설의 최고 목적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 작가의식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해 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흥부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되는 설화는 몽고 지방 설화인 ‘박타는 처녀’와 중국 전적에 실린 ‘방이(旁㐌)’ 설화이다. ‘박타는 처녀’ 이야기는 제비가 물어온 박 씨에 의해 착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이를 모방하여 꾸민 이웃 처녀가 징벌을 받는 내용이어서 우리 흥부 놀부 이야기에 내용상 가장 근접되어 있지만 선인과 악인 사이는 남남 관계이다. ‘방이’ 설화는 중국 당(唐)나라 때 이루어진 전적에 실려 있는데 신라 부호(富豪) 김씨의 조상 이야기라고 언급해 놓아서 우리 이야기인 셈이다. 여기 작중 인물은 선인인 형과 악인인 아우로 설정되었고, 형이 선행의 응보로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자, 아우가 시기하여 모방했다가 마침내 죽는 것으로 나타냈다. 그런데 형제이지만 서로 사이에 돕지 않아 형제우애는 반영되지 않았고 선악 갈등만 부각되어 있다.

현재의 흥부 놀부 얘기에서는 선인을 아우로 악인을 형으로 구성하여, 악행에는 재앙으로 보답된다는 원리에 따라 형이 멸망한 다음, 구박하던 아우의 도움을 받는 결말로 되어서 좀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경판 흥부전에서 형 놀부는 마지막 박에서 똥이 계속 나와 온 집안을 가득메우니, 뛰쳐나와 대문을 닫아걸고 아우 집으로 찾아가는데, “뻔뻔한 놈이 처자를 이끌고 흥부를 찾아 가니라.” 하고 전체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렇게 악인 형에 대한 증오만 표현했을 뿐, 형제간의 우애정신은 전혀 나타내놓지 않았다.


이처럼 형이 멸시하던 아우의 도움을 받아 의지해 살게 되면, 그 가문은 융성해질 수가 없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가문체제를 존중하던 사회여서 장남이 권위를 잃고 자존(自尊)을 지키지 못하면 세상에서 당당한 행세(行勢)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재효 사설 집에서는 이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놀부가 잘못을 뉘우치고 흥부 집에 찾아가니 흥부가 크게 놀라면서 극진히 위로하고 자기 재산의 반을 형에게 나누어주어 형제우애가 두터워져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는 말로 끝맺었다. 후대의 판소
리 사설에서도 여러 명창들이 조금씩 다르게 각기 바디를 만들어 구연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두 결말에, 아우가 달려가 형을 모시고 와서 재산을 나누어 주는 등, 형제우애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 형제우애 미담은 도덕률의 붕괴현상을 보는 조선후기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이제 박 속을 보고자 한다. 먼저 놀부 박을 보면 놀부의 악행을 징계하기 위해 사람들이 나오는데 모두 조선후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그 중에 주목할 것은 옛날 상전이라면서 나온 몰락양반 후손이다. 조선시대는 후기로 오면서 전란과 당쟁으로 당당하던 양반 가문이 일시에 몰락하여, 그 집안 노비들이 도망해 숨어 정착하여 재산을 일으키고 양반행세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얼마간의 세월이 경과한 뒤에 그 상전 양반 집안 후손이 그들 노비 가문을 방문하여 노비문서를 제시하고 재물을 받아
가거나, 돈을 받고 노비신분에서 해방시켜 속량(贖良)해 주는 추노(推奴)행위가 실제로 많았다.
놀부 같은 중간 부자들 중에는 이런 경우가 특히 많아 고통을 겪었다. 또한 이 양반들의 행패는 계속하여 나온 상여(喪輿)행렬과 연관되어 있다. 조선 후기 양반들은 관장의 보호 아래 지방 곳곳을 다니며 선조 묘 자리를 찾아 헤맸고, 좋은 자리가 있으면 부잣집 선산을 뺏기도 하고 큰 마을 뒷산을 강제로 차지하여 묘를 쓰면서 서민들의 분노를 사 비난을 받았다.

그 다음 여러 놀이패들의 등장이다. 조선 후기 남사당패나 초란이패, 걸인무리인 각설이 떼는 놀부처럼 재산을 모아 베풀 줄을 모르고 지키기만 하는 부잣집이 그들 행패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인원이 들이닥쳐 주인의 요청과 상관없이 교대로 오랜 시간 각종 놀이를 하고는 음식 대접과 놀이 값으로 돈을 요구했고, 돈이 적으면 행패를 부리고 피해를 입혔다.

조선후기 놀부처럼 악행과 패륜으로 재물만 애써 지키려는 졸부에게는 ‘박’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그 재물을 뺏어가는 무리에 의하여 탄식하며 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놀부가 재산을 지키는 길은 친척과 주위 어려운 사람들을 계속 돌보아 주어 칭찬하는 여론을 일으켜서 존경의 대상이 되어, 칭송여론의 보호막을 형성해야만 했는데 이를 역행한 놀부의 멸망은 당연한 탄식이었다. 끝으로 박속에서 대장이 나와 꾸짖는 것은 패륜행위가 관아에 고발되어 관장으로부터 훈계를 받고 볼기를 맞는 것에 대치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흥부의 경우, 우리 생활에서 먹는 쌀과 쓰는 돈, 몸을 치장하여 과시하는 비단, 그리고 고대광실과 으리으리한 가정기물 등이 모두 박속에서 바로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었다. 그 하나는 흥부 정도의 선행에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 숨어 있고, 다음은 잠시 꿈같은 환상 속에서 무한한 행운을 맛보게 한 다음, 그 행운을 현실로 이루어보겠다는 염원을 깊이 간직하게 하는 의미가 담겼다. 명창들의 뛰어난 기량으로 이 대목을 구연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명창의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오게 하고는,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환호하며 현실처럼 실컷 누리게 하여 열광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현실로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그 감동이 잊히지 않고 마음속 염원으로 깊이 박혀,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다는 원동력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염원과 희망을 가지고 좌절을 모르고 전진하면 무한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을 이용했다. 이 염원을 깊이 간직하게 하는 데는 명창들의 해학과 재담, 특유의 득음과 발림이 큰 몫을 차지한다.    
   - 글 김현룡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출처: 한국문화재재단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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