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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맹무상(群盲撫象)
15-09-15 16:41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군맹무상이란
 여러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이 어구는 식견(識見)이 좁아 자기 주관대로만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를 비유한 고사이다.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은
 어느 날 장님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의 생김새를 가르쳐주기
위해 궁궐로 모이게 했다.
 그들이 모두 모이자,
신하에게 코끼리를 끌고 오게 하고는 그들로
하여금 만져 보게 했다.
그리고 왕은 물었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느냐?”
그들 중 상아(象牙)를 만져 본 장님은 “무와 같습니다.”라고 답했고
귀를 만져 본 자는 “키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머리를 만져 본 자는
 “돌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코를 만져 본 자는
“절굿공이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장님들은 각자 자신들이 만져 본 부위가 코끼리의
 전부인양 착각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빗대는 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라는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이 경우와 같이
수도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하는데, 도를 닦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부분적인 깨달음을
 전부인양 착각하여
 내 경위(經緯)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여
다투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의견대립이 있을 때 자신의
 견해가 완전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시각(視覺)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보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상대방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실천을 통해 점차 전체를 볼 수
있는 큰 시각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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