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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호동과 낙랑 공주
15-09-15 18:51
 
왕자 호동이 낙랑 왕 최리의 딸과 인연을 맺고,
공주로 하여금 신기(神器)인 고각을 부수게 하여 낙랑을 쉽게 정복하였으나,
마침내는 왕비의 모함으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어기고
 부왕의 정복이 성취되도록 한 호동이나 연인을 위해 고각을 부순 낙랑 공주,
호동을 죽게 한 대무신왕의 처사 등이 비극적으로 얽혀 있다.
고구려의 주몽 신화에도
 북이 등장하는데, 이 설화에서도 북이 신기로 나타나고 있어 북이
국가의 유지에 중요한 물건임을 짐작케 한다.
 
여름 사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에서 유람을 하고 있는데, 낙랑 왕 최라가 길을
나섰다가 보고서 말하였다.
 
“그대의
얼굴빛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닙니다.
 북국(北國)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닌가요?
 
그리고 함께 가서,
자기 딸로 호동이 아내를 삼게 했다.
 
뒤에 호동이
귀국을 하고서 사람을 몰래 보내, 최씨녀에게 말을 전하였다.
 
“만약 그대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고각(鼓角)을 부숴 버리면 내가 예의로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그보다
먼저 낙랑에는 고각이 있어 적병이 오면
스스로 울었다.
그래서
그것을 부수게 한 것이다.
이에 최씨녀가
예리한 깔을 가지고 창고 안에 몰래 들어가
고각을 찢어 버렸다.
이것을 호동에에 알리니,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기습하게 했다.
최라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니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병이 성 아래까지
엄습해 온 다음에야 고각이 찢긴 것을 알고,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했다
(또는 이렇게도 전해진다.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청혼을 해서 그 딸을 취해 아내로 삼고, 본국에
돌아갔다가 나중에 그 무기를 부수게 했다.)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살했다.
 호동은
왕의 차비(次妃)인 감사왕 손녀의 소생이다.
얼굴이 아름다워
왕이 아주 사랑하고, 그 때문에 이름을
호동이라 했다.
원비(元妃)는
왕이 적통을 빼았아 호동으로 태자를 삼을까 염려해
왕에게 참소했다.
 
“호동이 저를 예의로 대하지 않고, 난잡하게 구는 것 같습니다.”
 
왕이 말했다.
“당신은 남의 자식이라해서 미워합니까?”
왕비는
왕이 믿어주지 않는 줄 알고, 화가 장차 미칠까 염려하여
울면서 고했다.
“대왕은
은밀하게 징조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제가 죄를 받겠습니다.”
 
그러자 대왕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장차 죄를 주려고 하니, 호동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대는
어찌 스스로 해명하지 않는가?”
 
호동이 대답하여 말했다.
“내가 만약 그 일을
해명하면 어머니의 악행을 드러내고, 왕에게 근심을 끼치니,
효도라 하겠는가?”
 
그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한국문학 총서 3 구비문학(해냄)>에서
(이 자료의 원본은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 14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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