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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이야기
15-09-1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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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뀌거나 세상의 모든 일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말이다. 벽해를 앞에 넣어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는 말도 쓰인다.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되었다는 뜻이다.
원래는 아주 방대하고 오랜 세월이라는 뜻
또한 인생의 허무를 한탄할 때 쓰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는 참으로 빠르고 덧없어서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던 것이 잠깐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어제까지 분명히 뽕밭이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다로 변해 있더라는 것이다.
현실이라면 전설 속의 대륙 애틀란트(Atlanta)의 침몰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엄청난 지각변동 때문이든, 커다란 화산폭발이든 간에 그저 잘 있는 뽕나무 밭인 땅이 바다로 변하는 세월이니 얼마나 긴 시간이겠는가? 중국 문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과장된 비유, 그리고 신선이나 선도(仙道)에 대한 강한 믿음 등으로 인해 나온 성어로 짐작된다.
원래 이 말은 진(晉)나라 시대의 갈홍(葛洪 283~343)이 쓴 ‘신선전(神仙傳)’의 마고(麻姑)라는 선녀 이야기에서 나온다. 이 책은 신선의 행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장생불사를 중심 주제로 한 신선설화집으로 의학서적이다.
이 속에는 84명의 인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오랜 수명을 누린 사람들이다. 기괴하고 황당한 내용이 있지만 일부 내용은 고대의 장생(長生)과 양생(養生)을 연구하는 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선들의 대화 내용에서 나온 말
‘신선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채경(蔡經)이란 귀족이 있었다. 선도에 몹시 심취한 그 역시 반신선(半神仙)이나 다름없었다. 채경은 어느 날 왕방평(王方平)이란 선인(仙人)을 자기 집에 초대했다.
저택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약속 시간이 되자 하늘에서 북, 피리, 퉁소 같은 악기 소리와 함께 천마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황급히 밖에 나가 보았더니 머리에 원유관(遠遊冠)을 쓴 왕방평이 시종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몸에는 붉은 옷을 입었으며 호랑이 머리 장식을 단 화살통을 어깨에 걸쳐 늘어뜨리고 오색 깃발이 무수히 나부끼는 속에 용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오는데 실로 장관이었다. 수레가 땅에 닿자마자 시종들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왕방평만이 의젓하게 수레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주인과 손님은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 인사를 나누었다. 왕방평은 채경의 부모도 만나서 인사를 드렸다. 뒤이어 화려한 누각에서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려고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왕방평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며 외쳤다.
“너 거기 있느냐?” 그러자, 금방 어디선가 선계(仙界)의 사자(使者)가 나타났다. 그 시종에게 “마고에게 당장 가서 내가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이곳으로 오라고 한다고 전해라” 사자는 대답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었다.
마고라면 여자임이 분명한데,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채경을 비롯한 그의 집안 사람들이 하나같이 궁금히 여기고 있었다. 잠시 후 사자가 되돌아오더니 왕방평에게 보고했다. ““마고 선녀님은 마침 봉래산(蓬萊山)에 볼일이 있어서 가신다고 하는데 도중에 잠시 들러서 뵙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채경과 집안 사람들은 마음이 설렜다. 왜냐하면 봉래란 동해 바다 아득한 곳에 있다고 알려지기만 한 신령스러운 섬으로 신선들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비로운 음악 소리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시녀 네 사람에게 옹위를 받으며 마고가 도착했다.
나이는 열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머리를 두 가닥으로 나누어 둥글게 상투를 틀어 올리고 나머지는 허리까지 늘어뜨린 데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비단옷을 걸친 선녀의 모습이었다. 그 미모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갈 지경이었다.
마고는 왕방평과 인사를 나눈 다음 채경하고도 인사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옥을 굴리는 것 같았고, 움직일 적마다 신비로운 향기가 살짝살짝 풍겨 나왔다. 이윽고 좌석이 정해지자 왕방평이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았다. 커다란 금 접시에 담긴 음식은 대부분 선계의 과일이었고 옥으로 만든 술병과 술잔도 있었다.
마고 선녀가 왕방평에게 말했다. “소녀는 신선을 섬기고부터 동해 푸른 바다가 세 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봉래 앞바다도 얕아져서 육지가 되려 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 변화가 참 빠른 것 같군요” 바다가 육지가 되는 것을 세 번이나 목격했다니 얼마나 긴 시간인가!
중국 송(宋)나라 때 이방(李昉)이 편찬한 ‘태평어람(太平御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어느 곳에서 노인 셋이 만나 서로 자기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두 번째 노인이 허풍을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바뀔 때마다 산(算)가지 한 개씩을 놓아 그것을 세어왔는데 이제 그 가지가 열 채의 집에 가득 찰 정도로 쌓여 있다네.”
왜 육지의 상징으로 뽕나무가 등장했을까?
옛날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이 정도로 그만 접자.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왜 상전벽해라는 고사에서 육지, 그러니 땅을 상징하는 말로 왜 뽕나무 밭이 등장한 걸까? 아니 (우리나라 같으면) 아주 흔한 소나무를 써서 송전(松田)이라는 말도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다.
상(桑)자의 생김새를 보면 나무 목(木)에 또 우(又)가 여러 개 얹혀 있다. 어느 한 한자 전문가는 “명주실을 뽑아 내는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뽕나무는 손이 많이 간다. 누에가 밤낮으로 뽕잎을 먹어 치우므로 쉴새 없이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상(桑)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 주는 글자이다.”
 
이 전문가는 우(又)가 손을 뜻하는 (手)와 기원을 같이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필자는 한자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좀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우(又)가 세 개가 있는 뽕나무 하나가 있다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해서 번식력이 대단히 강한 나무라는 것.
뽕나무는 나무들 가운데 생존능력과 번식력이 대단한 식물
중국인들은 누에를 치기 위해서 일부러 뽕나무를 많이 심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번식력이 강했기 때문에 산이나 들에도 많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그래서 산과 들을 뒤덮은 뽕나무는 자연적으로 육지를 상징하는 의미가 된 것이 아닐까?
누에고치에서 비단을 만드는 양잠의 발원지가 중국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 양잠역사는 기원전 3천여 년 보다 훨씬 앞선 5천년 전쯤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양잠이 중국의 황허(黃河))문명의 시작보다 더 앞선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쌀의 경우는 다르지만, 그 외의 작물에 대해서는 재배나 경작의 개념이 별로 없었던 시기다. 중국인들은 사방을 덮고 있는 뽕나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뽕나무의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짜면 좋은 옷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뽕나무에 관한 설화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중국 고대의 신화를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동쪽 바다 해가 뜨는 곳에 신령스런 나무가 있는데 그 이름이 부상(扶桑)이라고 하였다. 이 나무는 높이가 무려 3백 리나 되고 둘레는 자그마치 2백 아름이 넘는다는 상상 속의 신성한 나무이다.
‘심청전’에 심청이가 남경 상인에게 끌려가기 전날 밤에 하늘에 기도하면서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扶桑)에 매었으면 하늘 같은 우리 부친 더 한 번 보련마는”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옛 사람들은 부상 나무가 해를 잡아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놓아 주기 때문에 새벽이 오고 날이 밝는다고 믿었다.
상전벽해 대신 양괴벽해(洋槐碧海)라는 성어도?
필자가 사는 명륜동자락 바로 뒷산 북한산을 산책하다 보면 크고 작은 많은 뽕나무들을 본다. 번식력이 강하다. 때로 맛있는 오디를 선물하지만 작은 나무들은 일종의 잡초처럼 거의 제거대상이 되어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그 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아까시나무다. 크고 길쭉한 나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나무들도 성장속도가 아주 빠르다. 아카시아는 일본식 이름이다. 아까시나무라는 표현이 맞다. 1891년 일본인 사카키란 사람이 우리나라에 가지고 와서 심어 퍼졌다. 원산지는 미국의 동부로 알려져 있다.
아까시나무는 씨앗과 뿌리 번식을 모두 할 수 있다. 뿌리가 땅속 깊이 자라기 보다는 지표면과 가깝게 자라면서 거미줄처럼 넓게 퍼진다. 베어도, 베어도 악착같이 뿌리를 옆으로 뻗으며 번성하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 산림녹화 사업에 숨은 일꾼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란다. 기름진 땅이라면 1년에 2~3미터도 자라는 속성수다. 그러한 왕성한 생존능력과 번식력 때문에 주위의 토종 나무들에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소나무는 아까시나무와의 경쟁에서 잽도 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커다란 아까시나무를 베어 없애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무의 생존능력도 국력과 비례하는 걸까? 식물이든 황소개구리와 같은 동물이든 간에 외래종한테 국내 토종이 맥을 못 추는 것 같다.
만약 뽕나무와 아까시나무를 서로 경쟁시키면 누구 이길까? 뽕나무가 아니라 아까시나무가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성어도 나올 것 같다. 아까시나무는 한자로 양괴(洋槐, 양후에이)다. 그러면 상전벽해가 아니라 양괴벽해(洋槐碧海)라는 나올 법도 하다. 과히 기분은 좋지 않지만 말이다.
[출처] 뽕나무 이야기|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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