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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화살
15-09-15 20:08

천석꾼 부자 고첨지는 성질이 포악하고
 재물엔 인색한 수전노라 고을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 원통함을 풀어달라는 민원이 수없이 관가에 올라갔지만 그의 악행은 날이 갈수록 더했다. 고첨지는 산삼이다, 우황이다, 온갖 진귀한 것들을 구해다 사또에게 바쳐서 사또를 한통속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고첨지네 말 한마리가 없어져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집사와 하인들이 온 고을을 뒤지며 수소문 끝에 용천다리 아래 거지떼들이
 간밤에 잡아먹어 버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날 밤, 뚜껑이 열린 고첨지가
손수 횃불을 들고 용천다리 아래로 가서 거지들의 움막집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하늘로 치솟고 뛰쳐나오는 거지들을 고첨지네 하인들은 몽둥이찜질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직도 화가 덜 풀려 약주를 마시고 있는 고첨지 앞에 안방마님이 들어와 앉아 “저는 한평생 영감이 하는 일에 한마디도 간여하지 않았습니다. 영감이 몇번이나 첩살림을 차릴 때도!”
“어흠, 어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고첨지가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번엔 제 말 한마디만 들어주십시오.”
“뭣이오?”
“그들이 오죽 배가 고팠으면 말을 잡아먹었겠습니까?
그리고 이 엄동설한 밤중에 그들의 움막집을 태우면 그들은 모두 얼어 죽습니다.
제 소원 한번만 들어주십시오.”
천하의 인간 망종 고첨지도
 가슴속에 한가닥 양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움막집을 날려버리고 강둑에서 모닥불가에 모여 달달 떨고 있는
거지들을 집으로 데려오게 했다.
 
 여자와 아이들은 찬모 방에 들여보내고
 남정네 거지들은 행랑에 넣었다. 고첨지가 행랑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앉은 거지들이 또 무슨 낭패를 당할까 모두 고개를 처박는데
“말고기 먹고 술 안 마시면 체하는 법이여.” 거지들이 어리둥절 머리를
 들자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아녀자들이 모여 있는
찬모 방엔 밥과 고깃국이 들어갔다.
 그날 밤 고첨지는 거지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자신도 몇잔 받아 마시며
 거지가 된 사연들을 물어봤더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집에 방이 많이 있으니 겨울을 여기서 나거라.
봄이 오면 양지바른 곳에 집들을 지어줄 터이니.” 행랑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소식을 전해들은 찬모 방에서도 감격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안방에서는 마님의 울음이 터졌다.
“영감, 정말 대인이십니다!”
눈이 펄펄 오던 날 마실 가던 고첨지가 노스님을 만났다.
노스님이 눈을 크게 뜨고 고첨지를 자세히 보더니 “관상이 변했소이다.
화살이 날아와 아슬아슬하게 목을 스치고 지나가리다.” 고첨지는
빙긋이 웃으며 “안 죽겠네.”
어느 날 밤,
고첨지네 행랑에서 떠들썩하게 거지들이 새끼 꼬고 짚신 만들고
가마니를 짜는데 행색이 초라한 선비 하나가 들어오더니 “고첨지라는 못돼
먹은 인간이 온갖 악행을 다한다는데 여기는 당한 사람이 없소이까?”
이튿날 새벽, 사또가 헐레벌떡 고첨지를 찾아왔다.
 “고첨지 큰일 났소. 어젯밤 암행어사가 당신 집 행랑방에서 거지떼들에게
몰매를 맞고 주막에 누워 있소. 의원이 그러는데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오.
의원이 진맥을 하다가 마패를 보고 내게 알려준 거요.”
얼마 후
고첨지는 임금이 하사한 큰 상을 받았다.
 “부인, 이 상은 부인의 것이오. 소인의 절을 받으시오.”
“영감, 왜 이러십니까.” 고첨지네 집에서는
3일 동안 잔치가 벌어졌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50)빗나간 화살|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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