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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음순댁이 살판났네
15-09-15 20:27

개울 건너 음순골엔 초가삼간 딱 한집이 산다
. 권진사 내외와 다 큰 딸아이, 이렇게 세식구가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식구가 새벽부터 매달려 화전 밭뙈기 네댓마지기에 조 심고 메밀 심어 굶어 죽지 않고 목숨을 이어 갔다.
 권진사란 인물은 과거에 줄미역국을 먹고 할 수 없이 농사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백면서생에 좁은 어깻죽지는 축 늘어지고 가느다란 팔다리는 도대체 힘을 못 쓰는데다, 꼴에 양반이랍시고 똥지게·거름지게를 지지 않아 조와 메밀의 작황은 볼품이 없었다.
비실비실하던 권진사가
앓아눕더니 약 한첩 다 못 먹고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졸지에 과부가 된 권진사 부인, 음순댁은 삼년상을 치른 후 외동딸을 오십리 밖 먼 곳으로 시집보내고 혼자 살게 되었다. 딸과 사위가 제 동네로 이사 가자고 졸라도 음순댁은 막무가내다.
화전 밭뙈기 농사를 짓느라 얼굴은 새까맣고
 손마디는 나무뿌리처럼 거칠었지만, 음순댁은 아직도 마흔이 되지 않았다.
음순댁은 병아리를 스무마리나 사 와서 곳간의 좁쌀을 뿌릴 뿐 더 이상 밭에 가서 호미질을 하지 않았다. 외상으로 쌀을 사 와 쌀밥을 해 먹고, 얼굴엔 박가분을 바르고 손에는 피마자기름을 발랐다. 그해 겨울을 나고 나자 음순댁은 딴사람이 되었다. 얼굴은 백옥 같고 손은 섬섬옥수 같고, 말랐던 팔다리는 오동통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 자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으니 화사한 중년 부인이 따로 없었다.
 어느 날 새우젓 장수가 왔기에
“새우젓 한사발만 주세요” 했더니, 새우젓 장수 왈.
“새우젓 팔러 온 게 아니라 그동안 밀려 있는 외상값 받으러 왔소이다.
 외상값 나올 때까지 안방에 드러누울 것이여.”
 “호호호, 마음대로 하시구랴.
 없는 돈을 만들어 내랴!”“이 아줌씨는 배 째라네.
어디 한번 해 보자구.”
 험상궂은 새우젓 장수가 새우젓 지게를 내려놓고 팔을 걷어붙이더니
 “흥” 콧방귀를 뀌면서 마루에 걸터앉았다. 음순댁이 부엌에서 나오며 “싸울 때 싸우더라도 우선 탁배기 한잔 하시오” 하니, 술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면 독한 싸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새우젓 장수는 그만 단숨에 받아 마셔 버렸다.
 “술값은 쳐드리리다.”
 북향 음순골에 어둠살이 내려앉았다. 안방에 퍼질러 앉아 닭 한마리를 뜯고 술을 세병이나 비운 새우젓 장수가 음순댁 허리를 껴안자 음순댁은 ‘후~’ 호롱불을 껐다. 음순댁이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초가삼간이 무너질 듯 괴성을 지르며 음과 양이 불똥을 튀겼다.
 며칠 후 방물 장수가 왔다가 하룻밤 자고 가고,
 옹기 장수도 왔다 가고, 옷감 장수, 그릇 장수, 수정 장수, 고무신 장수,
강엿 장수, 실 장수, 농기구 장수, 쌀 장수 … 두루 다녀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음순댁네 창고는
 만물상점이 돼 값이 싸다고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얼마 후 새우젓 장수가 찾아와 짜증을 내며 “음순댁이 새우젓을 싸게 팔아서 나는 장사를 할 수 없어” 하며 자신이 주었던 새우젓을 돈을 내고 몽땅 사 갔다. 옹기 장수는 옹기를 사 가고, 그릇 장수는 그릇을 사 가고,
방물 장수는 방물을 사 갔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71)음순댁이 살판났네|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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