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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박복한 과부 심실이
15-09-15 20:35

마흔다섯살 먹은 과부 ‘심실이’는 못 볼 걸 봤다.
 마실 가서 밤늦도록 길쌈을 삼다가 이경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갓집
덕주네 봉창 앞에서 발걸음이 멎었다.
동갑인 덕주 어미의 자지러지는 소리와
 덕주 아비의 가쁜 숨소리가 봉창으로 터져 나왔다. 처마 밑 발디딤 위에 올라 봉창 구멍에 눈을 댄 심실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롱불을 밝혀 놓은 채 시커먼 양물을 곧추세운 덕주 아비는 덕주 어미를 엎었다 뒤집었다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쉼없이 절구질을 해댔다.
몸이 불덩어리가 된 심실이는
 집으로 돌아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열이 식지 않았다. 끊임없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과부 심실이의 한숨은 깊어 갔다.
돌이켜 보면 자기 신세가 한스럽기만 하다.
 열여섯에 시집와 보니, 세살 아래 신랑이란 게 툭하면 베개를 들고 시어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2년쯤 지나자 손자 보겠다고 보채는 시부모 성화에 열다섯 신랑은 치마를 들추고 번데기만 한 고추를 깝죽거리다가 심실이의 몸만 달궈 놓고 픽 고꾸라졌다.
 
나이를 먹어 가며 겨우 신랑 행세를 한다 싶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시름시름 앓던 신랑이 이승을 하직해 버렸다.
 청상과부가 된 심실이는 시부모 모시고 살다가 작년에야 시부모 상을 탈상하고
혼자가 되니 잃어버린 인생이 서럽기만 하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뒤척이는데 닭장에서 닭들이 난리를 쳤다.
 족제비가 왔는가 싶어 문틈으로 내다보니 동네 젊은 것들이 닭서리를 하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심실이는 주저앉았다. 어떤 놈들인지 짐작은 갔지만 동네 요란하게 해 봤자 “저렇게 드세니 박복하지”라는 수군거림만 돌 게 뻔했다.
이튿날 심실이는 저잣거리에 있는 매파를 찾아갔다.
 매파 앞에서 심실이는 정숙한 과부가 지나가다 들른 양 옷섶으로
짐짓 눈물을 닦아 내며 흐느꼈다.
“과부 혼자 산다고 사람들이 업신여겨
동네 젊은 것들이 월담을 해서 닭을 잡아가지 않나, 우리 논 물꼬를 터서
 자기네 논에 물을 대지 않나….”
매파는 제 발로 찾아온 심실이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좋은 서방감이 있네. 그 사람이 안방을
지키면 자네를 업신여길 사람은 없을 걸세.”
이튿날 심실이는 매파 방에서
냉수 한그릇 떠 놓고 혼례를 올렸다. 허우대가 멀쩡한 초로의 서생이었다.
그날 밤 심실이는 멱을 감고 30여년 전 시집올 때 해 온 비단 이불을 안방에 깔았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인가. 이놈의 서생이 고자가 아닌가. 날이 밝기도 전에 심실이는 매파에게 달려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매파 왈, “아니, 자넬 업신여기는 사람이 벌써 나타났던가? 그 사람 정도면 누구도 함부로 못할 텐데….”
매파의 말에 말문이 막힌 심실이 모기소리로,
“안방만 지키면 뭐한다요. 가시버시로 살다보면 필시 부부싸움을 할 건데,
 그것은 무엇으로 푼다요….”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80)박복한 과부 심실이|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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