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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부벽루, 촉석루, 영호루
15-09-15 20:43

왕년에 한가락 했지만
이제는 늙고 할 일 없는 대감들이 모인 팔판동 김대감댁 널찍한 사랑방. 김대감이 장죽을 물고 담배 연기를 천장으로 후~ 불며 옛일을 떠올린다.
 “내가 평안감사로 부임했더니 평양 최고 갑부인 최진사가 부벽루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는데, 팔작 처마 끝마다 청사초롱 불 밝히고 상다리가 부러져라 주연상을 차려 놓았는데 가관입디다. 칠보산에서 따 온 송이산적 안주에 구월산에서 캔 백년 묵은 산삼으로 담근 술을 마시고 시 한수를 읊었지.”
 김대감이 숨을 고르고 눈을 감은 채 “장성 너머 출렁이는 대동강 물이요, 드넓은 들판 동쪽엔 점점이 박힌 산이로다.” 시 한수를 뽑고 나서 “부벽루에서 내려다보는 대동강 물줄기와 반짝이는 평양성의 불빛, 그 너머 산들이 이뤄낸 풍광은 뭐라 말할 수 없었어요. 부벽루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조선 팔도강산 어디에도 따를 데가 없어요” 했다.
 그때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민대감이 어흠어흠 헛기침을 했다.
 “진주성 촉석루에서 굽어본 남강이야말로 조선 팔도가 아니라 천하제일경이지요.”
 민대감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인생 전성기 때 화려했던 촉석루 연회를 반추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날따라 만월은 두둥실 떠올라 달이 세개가 되었지요. 하늘에 하나, 남강에 하나, 내 술잔에 하나였소. 두둥둥둥 장고 장단에 진주 명창이 창을 뽑고 기생 홍란이 진주검무를 추는데, 아~ 이건 한마리 나비였소. 끌어안고 풍덩 남강으로 빠지고 싶더라니까요. 검무를 마치고 땀이 밴 홍란을 안고 술 한잔 마시고 달 한번 쳐다보고, 또 한잔 마시고 남쪽 벼랑 끝의 달빛에 젖은 용두사를 바라보고, 또 한잔 마시고 남강을 내려다보고…. 그때 그 경관에 견줄 만한 데를 나는 평생 두번 다시 보지 못했소이다.”
 한방 가득 앉아 있던 늙은 대감들이 “와~ 부벽루보다는 촉석루가 낫다”며 한마디씩 했다.
 그때 구석진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권대감이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동 영호루가 으뜸이오.”
 늙은 대감들이 “아무렴 그럴려고? 안동 영호루를 어찌 부벽루와 촉석루에 비견할 수 있겠소?” 수군거렸다.
 “안동부사로 있을 적에 내 나이 서른둘, 팔팔할 때였지요. 새로 온 열여섯살 수청기생 청매는 간단한 안주를 싸 들고 나는 술병을 들고 누각 처마 끝에 초승달이 걸린 늦은 밤에 영호루에 올랐지요. 천상천하에 우리 둘뿐이었지요.”
 권대감의 사설에 다른 대감들이 귀를 쫑긋했다.
 “내 도포를 벗어 바닥에 깔고 우리 둘은 옷을 훌훌 벗었지요. 나는 강을 보고 앉고 탱탱한 청매는 내 허벅지에 마주 보고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이 없어 청매가 호리병을 들고 입 가득 술을 담아 내 입에 반을 부어 주고 나머지는 그 애가 마셨지요. 청매는 명기를 가졌지요. 술 한잔을 마시고 나면 아홉번 꽉꽉 조였어요. 짝 달라붙은 청매 어깨 너머로 청매 눈썹 같은 초승달을 보고 희미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물을 보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지요.”
 침만 삼키던 늙은 대감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벽루와 촉석루는 영호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웅성거렸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85)부벽루, 촉석루, 영호루|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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