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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다시 찾은 신랑
15-09-15 20:48

찢어지게 가난한 집 딸,
열일곱 옥분이가 혼수 하나 가져가지 않는 조건에 재취로
한살 아래 신랑에게 시집갔다.
 
첫 신부가 시어머니 등쌀에
쫓겨났다는 걸 알고 옥분이는 시어머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어머님” 하고 발딱 일어나 우물 속에 빠지라면 빠지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시어머니 입속의 혀처럼 놀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엉뚱한 데 있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 뒤 신방에 들어가 눕자 신랑이 다가와 옷고름을 풀었다.
발가벗은 신랑 신부가 꼭 껴안고 온몸이 달아올라 막 합환을 하려는 참에, 바로 문밖에서 “아흠아흠” 헛기침을 한 시어머니가 “아가, 물 한사발 떠 오너라.” 신랑 신부가 한몸이 된 이불 속으로 찬물 한동이를 쏟아붓는 꼴이 됐다. “네, 어머님.” 후다닥 일어나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부엌으로 가 물 한사발을 떠다 바치고 나니 뜨거웠던 두몸이 다 식어 버리고, 시어머니가 또 고양이걸음으로 다가와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지 몰라 신랑 신부는 등을 마주 대고 밤을 새웠다.
한두번이 아니다.
어느 날 밤엔 시어머니가 베개를 들고 신방으로 들어와
“영감 코 고는 소리에 잠들 수가 없네” 하며 신랑 신부 사이에 누워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신랑을 안고 자는 것이다. 한약 열두첩을 달여 주며 “보약 먹을 땐 합방을 하면 안된다”고 새색시 옥분이를 문간방에 따로 재우고 시어미가 신방에서 아들과 함께 잤다.
 어느 날, 옥분이 우물가에서 온종일 빨래를 하고 왔더니
부엌에서 가마솥에 물을 데워 벌거벗은 신랑을 시어미가 씻기고 있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신랑의 첫 색시가 보따리 싸 들고 제 발로 나간 연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당차고 강단 있는 옥분이는 달랐다. 병신 같은 신랑은 아예 믿을 바가 못되고, 마누라한테 꽉 쥐어 사는 시아버지도 제쳐 두고 옥분이 자신이 시어미 버릇을 고쳐 놓기로 했다. 시어미가 신방에 들어와 신랑 신부 사이를 따고 들 때 옥분이는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가 시아버지 옆에 누웠다. 새벽녘에 안방에 들어온 시어미가 눈을 크게 뜨고 “세상에 이런 일이…” 하자, 옥분이는 생긋이 웃으며 “세상에 이런 일은 신방에서 있었거든요.” 시어미 시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날부터 저녁상을 치우고 신방에 들어가면
문을 꼭 걸어 잠그고선 솜으로 신랑 귀를 막고 방구들이 꺼질듯 운우의 정을 나눴다. 시어미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옥분이가 집에 오니 시어미가 또 부엌에서 아들을 목욕시켜 주고 있었다. 옥분이는 목간통 물을 부엌 바닥에 쏟아붓고 밥주걱으로 벌거벗은 신랑 등줄기를 멍이 들도록 두드려 팼다. 그날은 저녁도 하지 않았다.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 시어미 악다구니에 옥분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시어미가 동네방네 쏘다니며 며느리 욕을 해대도 동네 사람들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하나 쫓아냈으면 됐지, 또 쫓아내려고. 쯧쯧!”
어느 날 시아버지가 불러 사랑방에 갔더니,
 자작술로 불콰해진 채 “얘야, 네가 요즘 내 사십년 묵은 체증을 내려 주는구나. 이거 받아라.” 열쇠꾸러미다. 이튿날 시어미가 곳간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설레발치자 옥분이가 “제가 갖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했다. 눈이 뒤집혀 달려드는 시어미를 옥분이가 슬쩍 밀었더니 거름 더미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힘으로 새 며느리한테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름 더미에 앉은 채 발을 뻗고 울던 시어미는 이튿날부터 사람이 달라졌다. 서리 맞은 구렁이처럼,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기가 팍 죽었다. 이후로 신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90)다시 찾은 신랑|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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