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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이야 늙은 퇴기와 새우젓 장수
15-09-15 21:07

산허리 고갯길을 한걸음 두걸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르는 새우젓 장수. 고갯마루 초가집 삽짝에서 내려다보던 홍매는 종종걸음으로 내려가 새우젓 지게를 떠밀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몸이 성치 않아 두손으로 지팡이를 움켜쥔 채 한숨만 쉬고 있다.

 굽어진 고갯길에서 보이지 않던 새우젓 장수가 마침내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새우젓 지게를 괴어 놓고 홍매가 떠온 냉수를 한사발 얻어 마신 고서방이 쪽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환한 웃음을 날려 인사를 대신한다.


 “얼마 만인가. 열흘도 넘었제?” 홍매의 물음에 “8일 만이라우” 하는 고서방. 담뱃불을 붙이며 쳐다보니 홍매의 얼굴엔 주름살이 부쩍 늘어났고 허리는 더 굽었다.

 새우젓 장수 고서방과 늙은 퇴기 홍매는 쓰러져 가는 초가집 쪽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요즘 대처엔 고약한 일이 터져 연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릅니다요.” “그게 무슨 일이여?” “사또 아들이 지 애비 힘을 믿고 온갖 못된 짓을 하더니 이번엔 매사냥을 나갔다가 나물 캐러 산에 오른 양갓집 처녀를 겁탈했지 뭐예요.” “그래서?” “그녀는 소나무에 목을 매어….”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홍매는 새우젓 장수가 들려주는 얘기가 유일한 세상 소식이다.

 이 집은 원래 주막이었다. 대처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색줏집 기생 홍매는 박가분 떡칠로도 얼굴의 잔주름을 감출 수 없는 여자 나이 서른이 넘자 지금 살고 있는 무티재 고갯마루 외딴집에 주막을 차려 주모가 되었다.

 그때부터 가끔씩 들리던 젊은 새우젓 장수는 주막에서 막걸리를 사 마시는 손님이자 새우젓을 파는 장사꾼이었다. 무티재 주막은 오가는 나그네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국밥을 사 먹으며 내는 웃음소리와 이바구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꽃다운 나이는 지났지만 홍매는 가끔씩 객방 손님에게 몸도 팔았다.

 젊은 시절부터 몸을 함부러 썼음일까? 세월이 흘러 나이 불혹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홍매는 폭삭 늙어버렸다. 불을 밝히던 주막 등도 내리고 제 몸뚱이 하나 챙기기도 힘들어졌다. 친정 쪽 먼 친척 조카를 양자로 들였더니 몸을 팔아 사두었던 피 같은 논밭 야금야금 다 팔아치우고 3년째 소식조차 없다.

 고서방이 보름 만에 무티재를 넘다가 홍매 집에 들렀더니 안방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고서방의 손을 잡고 홍매가 입을 열었다. “술 마신 남정네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 치마 벗길 궁리만 했는데 자네 혼자만 나를 누님 대하듯 했네.” 홍매는 가쁜 숨을 몰아쉬곤 말을 이었다. “늙고 병들자 모두가 외면했지만 자네는 나의 말벗이 되어주고 비 새는 지붕도 고쳐 주고 내려앉은 구들장도 고쳐 주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자네도 이제 나이가…?” “사십줄에 접어드니 무릎이 아파 이게 새우젓 장수 마지막 길입니다.” “부엌… 아궁이… 밑을 파서 자네가 가져가게.” 홍매의 손이 싸늘해졌다.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쓰고 산을 내려오던 고서방이 홍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 되돌아 홍매네 집으로 가 아궁이를 파 보니 어른 주먹만 한 금덩어리가 나왔다.

 무티재 아랫마을인 천전골에 두개의 공사판이 동시에 벌어졌다. 석수와 마을 사람들이 동네 앞 개울에 돌다리를 놓고 솔밭 앞에 훈장 집이 딸린 아담한 서당을 짓는 것이다. 새우젓 장수 하던 고서방이 돌다리 놓는 곳에서 일손을 거들다 어느새 서당 짓는 곳에서 땀을 흘렸다.

 동네 사람들이 돌다리 난간 기둥에 금덩어리를 희사한 고서방 이름을 따 ‘고석봉교’라 음각하려 하자 고서방이 완강히 반대해 그 뜻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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