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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최참봉과 산돼지
15-09-15 21:18

청산골이 발칵 뒤집어졌다.
 간밤에 최참봉의 선친 묘가 파헤쳐져 백골이 흩어진 것이다.
 산돼지의 짓이다.

 동네 사람들은 크게 놀랐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7년 전에 이승을 하직한 최참봉의 선친은 생전에
 남 못할 짓을 수없이 저지르고도 눈도 깜짝하지 않은 악덕 지주였다.

 보릿고개에 굶어 죽어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장리쌀을 놓아 목줄을 걸고 있던 몇마지기 밭뙈기를 송두리째 빼앗고,
그나마 논밭조차 없는 집은 어린 딸을 데려와 이불 속 노리개로 삼았다.
 소작농의 마누라를 겁탈해 그녀가 목을 매어 자살하기도 했다.

 이런 악행에도 탈이 나지 않은 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집안 소작농인 데다,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
감히 항의라도 할라치면 사냥개 같은 하인들한테 무지막지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최참봉 아비가 죽고 나서 동네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깐, 최참봉도 부전자전, 죽은 아비보다 더 악질이다.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암놈 산돼지가 제
서방 복수를 한 거네.” “그 묘가 최참봉 아비 묘인 줄
산돼지 주제에 어떻게 알았을까?”

 결과적으로 최참봉이 만든 일이다.
 산돼지 암수 두마리가 최참봉네 감자밭을 조금 파 뒤집어 놓았다고
함정을 파서 수놈을 잡았다.
 
수놈을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로 두들겨 패니 꿱꿱 울음소리가 온 산천을 뒤집었다.
이튿날 밤, 암놈이 최참봉 선친 묘를 파헤친 것이다.

 부글부글 끓던 최참봉이 하인들과
 동네 소작농들을 동원, 여기저기 함정을 파고 산돼지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올무를 설치해 놓았지만 암놈 산돼지는 걸려들지 않았다.

 30리 밖에서 이름난 사냥꾼을 데려왔다.
 나이 지긋한 사냥꾼은 무과에 과거시험도 치러본 활의 명수다. 최참봉의 하인들과 동네 사람들이 몰이꾼으로 동원되어 암산돼지 사냥에 나섰다. 꽹과리를 치고 고함을 지르며 사흘 동안 몰이꾼들이 온 산을 훑었다.

 마침내 암산돼지가 나타났다.
길목을 지키던 사냥꾼이 활시위를 크게 당기다가 눈살을 찌푸린 후
화살을 날렸지만 빗나갔다. 그 후 암산돼지는 종적을 감췄다.

 보름 만에 산돼지 모습이 다시 포착되었다.
금방 태어난 새끼 여덟마리를 달고 산돼지는 쿠르르 숲을 헤쳤다.
 사냥꾼의 화살은 또 한번 빗나갔다.

 그날 밤 집사가 최참봉 앞에 꿇어앉았다.
“어르신, 제가 계속 사냥꾼 옆을 따라다녔는데, 활의 명수라더니 지척의
 거리에서 두번씩이나 화살이 빗나갔습니다. 이상합니다.”

 마당에 횃불을 켜고 곤장대 위에
 사냥꾼을 틀어 묶은 후 최참봉이 몸소 곤장을 휘두르며 “이실직고하렷다”
 벽력고함을 질렀다.

 엉덩이가 피투성이가 된 사냥꾼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첫번째 활시위를 당겼을 때 그 암산돼지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사냥꾼은 절대로 새끼 밴 짐승을 잡는 법이 없습니다.
두번째 시위를 겨눴을 때는
갓 태어난 새끼 여덟마리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미가 죽으면 젖먹이들도 죽습니다.
저는 새끼들이 젖을 떼고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어미를 죽이려 했습니다.”

 활과 화살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고 사냥꾼은 피투성이가
 되어 쫓겨났다.
이튿날 새벽,
먼동이 트자 하인들이 손에 손에 창을 들고
산에 올랐다.
집사가 진두지휘했다.
 “어린 새끼를 거느린 산돼지는 쉽게 잡을 수 있다.
 모두 발걸음을 재촉하라.”

 결국 암놈 산돼지는
창에 찔려 창자를 쏟았고, 잡혀온 새끼들은 최참봉이 마당에
 한마리씩 패대기쳐 죽였다.

 이튿날,
 서당 다녀오던 최참봉의 5대 독자 손자 녀석이
발을 헛디뎌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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