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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천길암 외소나무 가지
15-09-15 21:26

새우젓 장수 덕구는 합강주막 단골손님이다.
덕구가 새우젓 지게를 처마 아래 괴어놓고 뜨끈한 객방에 들어가
아랫목을 차지하고 막걸리 곁들여 국밥 한그릇을 먹는데 천길암
땡추가 헛기침을 뱉으며 들어온다.
 “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썰렁한 초겨울 저녁 바람에 옷깃을 여민 땡추가
아랫목을 차지하고 새우젓 장수 덕구는 개다리소반을 들고 윗목으로 옮겨 앉았다. “스님, 곡차 한잔 하시지요.” “나도 시켰네.” 오며 가며 곡차를 마시는 천길암 스님을 다른 사람들은 땡추라 흉을 봐도 덕구는 깍듯이 대했다. 주거니 받거니 잔이 오가다가 덕구가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왜 이리 돈이 안모이는지 모르겠어요. 이 나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땡추가 잔을 놓고 덕구를 빤히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꼭 알고 싶어?” “네. 가르쳐주세요.” “내일 아침 나를 따라와.”
 술상을 치우자 땡추는 바랑을 베개 삼아
쓰러지자마자 코를 고는데 덕구는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문다.
 그런데 부엌 옆 큰 객방이 떠들썩하다. 투전판이 벌어진 것이다. 방문을 열자 고만고만 낯익은 얼굴이다. 체 장수, 소금 장수, 소 장수, 갓 장수, 우산 장수, 약 장수
패거리에 야바위꾼까지….
투전판에 낀 덕구는 삼경이 되기 전에
수중의 돈을 날리고, 소 장수 우 서방한테 빌린 돈도 사경 전에 털렸다.
 덕구는 쓴 입맛을 다시며 투전판을 나오다가 그때까지 설거지하랴 노름방 술상 차리랴 쏘다니던 주모가 부엌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슬그머니 뒤따라 들어갔다.
 주모는
뒤에서 허리를 껴안는 덕구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늘도 외상이요?”
 덕구는 뜨거운 입김을 주모
목덜미에 내뿜으며 “쌈짓돈까지 털린 걸 봤잖소” 하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질펀하게 절구를 찧고 난
덕구는 바지춤을 올리며 객방으로 들어가 땡추
옆에 꼬꾸라졌다.
 이튿날 아침. 땡추와 덕구는 천길암으로 향했다.
 헛걸음인가 싶어 뒤따르던 덕구가 물었다. “스님, 돈 버는 방법을 꼭
천길암까지 가서 가르쳐줘야 합니까. 여기서….” 땡추가 단호하게 내뱉었다.
 “잔말 말고 따라와!”
 천길암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앉았다고 해서 이름이 천길암이다.
덕구가 암자 마루턱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바가지로 석간수를 벌컥벌컥 마신 땡추가 두어뼘 되는 마당 끝으로 가 절벽 아래로 뻗은 외소나무를 가리키며 명령하는 게 아닌가.
 “저 소나무로 올라가.” 덕구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스님, 돈 모으는 법을 가르쳐주신다고 해놓고….” “잔말 말고.” 싸리비로 등을 얻어맞은 덕구가 후다닥 소나무로 기어올랐다.
 “두 손으로 저 가지를 잡고 매달려.”
소나무 가지를 잡고 매달린 덕구가 아래를 내려다보다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가지를 잡은 손을 놓으면
너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 소나무 가지를
돈으로 생각해. 수중에 들어온 돈은 놓지 말란 소리야.
돈을 안 쓰면 돈이 모이는 거야!”
 보름이 지난 어느 장날.
덕구는 소 장수 우 서방을 만났다.
 “덕구, 그때 빌려간 돈 열냥 갚아야제.” “아따, 노름판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는 법이 어디 있소.
내 돈 다 따놓고!” “이 새끼가!”
성질 급한 우 서방은 주먹부터 날렸다. 앞니 두 개가 날아간 덕구가
합강주막에 들어가자 주모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지난 장 안으로
외상값 갚는다더니 이제야 왔소?”
 “나 외상 지은 거 없는데…. 해후 값도 외상이 있는겨?”
그때 안방 문이 덜컥 열리고
수염이 텁수룩한 저잣거리 왈패가 눈을 부라리며 나왔다.
 주모가 말했다. “오라버니, 저 작자 손 좀 봐줘.”
‘걸음아 나 살려라.’
 덕구는 새우젓 지게도 내팽개친 채 한걸음에
천길암으로 달려가 피신했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29)천길암 외소나무 가지|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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