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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
15-09-15 22:01

설악산 울산바위의
이름 유래로 가장 많이 알려진 얘기는
1983년 뿌리 깊은 나무 출판사가 발행한 ‘한국의 발견’강원도 속초시 편에서
‘울산바위’ 전설과 함께 ‘속초 지명의 유래’
가 적혀져 있는데,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 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불렀는데,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울산바위는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설악산
 유람길에 나셨던울산 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인데 신흥사가 차지했으니
 
 그 대가로
 세를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아 갔는데
어느 해인가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부터는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도로 가져 가라고 한 바
 
 이에 울산 고을 원님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하였더니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 새끼를 불로 태워 재로 꼰 새끼로 바위를 묶었지만
 
 울산 고을의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으려니와 더 이상 울산바위에 대한
 세를 내라는 말도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 속초의 지명 유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이며한편으로는 계조암에서 보면 울산바위가 마치
울(울타리 즉 담)같아 보이는데,.
 
그래서
'울같은 산바위'란 뜻으로 '울산바위'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울산바위는
설악산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암 봉으로 바위 아래에서 정상까지는 바위높이만 200여 미터에 달하며 30-40분이 걸리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울산바위 정상부의 전망대는 두 군데이며 두 곳이 바로 옆으로 나란히 있다.
 
거대한 바위여서인지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하나로 산신령이 금강산을 만들려고 기도했을 때의 얘기가 있다.
유달리 금강산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산신령은 봉우리를 1만2천봉으로 하고 그 형체를
가지각색으로 하려고 전국의 명산에다가 큰 바위를 모조리
 금강산으로 보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튿날 전국의 바위는 모조리 금강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경상도의 울산에 있던 바위도 부지런히 행장을 차려 길을 떠났다.
그러나 이 바위는 덩치가 컷 던지라 걸음이 몹시 더디었다. 힘을 다해 북으로 향했지만
어느새 해가 저물어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 해가 떠오르자 다시 출발하려 했는데 금강산은
어젯밤으로 1만 2천봉이 다 차버렸다는 전갈이 왔다.
 
이 바위는 오도 가도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바로 이 오도 가도 못하는 자리가 오늘날 울산바위가 서있는 자리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세월이 흘러 어느새 조선 배불숭유의 시절이었다. 한 원님이 울산에 부임했다. 설악산에 울산 암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통이 터져 그 보복의 일환으로 설악산 스님들을 골탕 먹이자는 계책을 꾸몄다. 지금이나 그때나 외설악 일대는 신흥사의 땅이었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울산원님의 교자는 신흥사의 앞뜰에 놓여졌다.
 
그는 소리쳤다. 설악산에
우리 고을 바위가 버젓이 있음에도 모르는 체 하느냐 “올해부터 바윗 세를
 꼭 내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절을 폐찰 하겠다.”그로부터 매년 가을
해괴한 바윗세 라는 세금을 울산에 바쳤다.
 
 
이로부터 신흥사는 날로 기울어져 갔다.
 주지의 얼굴은 날로 꼬치로 말라갔다. 그것을 보고 어느 날 한 동자승이 물었다.
 스님은 네가 알 일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소승이 알면 안 되나요.
 
 
혹시 대책이 강구될지 모르니 말씀해 주세요.”
주지는 동자승에게 그 내력을 이야기했다. 동자승은 울산에서 바윗 세를 받으러
 오면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다.
 
울산에서 원님이 행차하여
동자승을 만났는데 동자승은 바위 터에 곡식을 심어 절 식량을 만들 테니
바위를 가져가라 전하였다. 원님은 바위를 파갈 수 있게 새끼를 태운 재로 묶어 놓으라고 했다.
 이에 동자승은 마을 청년들을 시켜 새끼를 꼬아 소금물에 절인 후 그 위에 기름을
부어 바위를 묶고 그 위에 불을 지르게 했다.
 
새끼는 재와 같이 되어
소금에 절 은 속은 튼튼했다. 설악에 다시 나타난 원님은 동자승의 기지에
감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이런 전설이 있는 울산바위 정상은 가을철이면
단풍으로 물든 외설악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출처] 울산바위|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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