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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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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의 전설
15-09-15 23:32

 神勒寺의 秘話 이른 여름의
 새벽 이슬이 내리고, 서늘한 한기가
 몸에 스민다.
 
길을 떠나는 젊은
 나그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상쾌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아직, 동녘 하늘이
 희뿌연하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길 떠날 차비를 마친
 젊은이는 위우러진 방문 앞에 잠깐 동안 머물러 섰다.
방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어머님.』
  젊은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어머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몸 성하시기를 빕니다.』
  나직하게, 차마 열리지 않는 입술사이로 새어나오는
말이었다. 
 
 그 때,
몸을 뒤채이는 소리가 들렸다.
 
  『얘야,
 내 걱정일랑 말고, 조심해 잘 다녀오너라.』
  늙은 어머니의 힘없는 말소리가 들렸다.
  『네, 어머님.』

  『그런데,
 하 꿈이 이상하구나…….』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마 내몸이 허약해서 그런 모양이지만,
어쨌든 남자는 여자     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과거를 보러 가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 럼 어서 다녀오너라, 』
   어머니는 방 안에서 돌아 눕는 모양이었다.
   『다녀 오겠습니다.』

   젊은이는
 괘나리 봇짐을 고쳐 메고 돌아섰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사립문을   열고 행길에 나섰다. 
 
 밝아 오는 햇살을
등에 지고 젊은이는 길을 재촉했다.
 
강을 따라    
  하류를 향해 걸었다.
 
 갈대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었다. 
 젊은이는 못내 어머니의 꿈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노상 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였지만,
 막상 과거를 치루러  가면서 늙은 어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마음을 어둡게 했고,
게다가 꿈은 어쩐지 불길한 징조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해가 떠오르자 날은 더워졌다. 
  젊은이는
 강가에 내려가 저고리를 벗고 얼굴을 씻었다.
 
 한결 상쾌하였다.
그리고, 시장기를 느낀 젊은이는 물가에 앉아 싸온 주먹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난 젊은이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강물 위에 빛나는 햇빛이 눈부셨다.
서늘한 강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젊은이는 졸음을 느꼈다.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었다.

  그가 집을 비운 동안의
 어머니를 위한 몇 가지 일을 해두어야 했다.
 
그 일을 끝마쳤을 때에는
이미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고, 그는 길을 떠나야 했다.

  길을 걸어온 피로와
 식곤증과 수면 부족이, 그를 잠 속으로 이끌어 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젊은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강물 위에 햇빛은 눈부시고, 그 따스한 햇볕이 그의 우람한
가슴팍에 내려 쪼이고 있었다.
 
그는
저고리를 입다 말고 의아한 표정을 했다. 

  『참, 이상도 하다.
 꿈을 꾼 것 같은데 전혀 생각이 나질 않으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가 얽힌 의혹이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었다.

  『분명 꿈을 꾸었지?
아니면 그것은 생시에 있었던 일이 아닐까?
 알 수 없다. 꿈이건 생     시의 일이건, 전혀 기억 할 수가 없다니…….』

  젊은이는 중얼거리며
 강물을 마냥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움직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었는데…….』
  문득, 첨벙하고
 물고기가 강심에서 뛰어 올랐다. 젊은이의 눈이 빛났다.
  『그렇지. 강심에서 일어난 일이었지, 강심에서…….』

  젊은이는
일어나 강가로 가까이 내려갔다.
 
 그리고
물끄러미 물 속을 들여다 보였다.
 
 맑은 강물은
 거울 속처럼 들여다 보였다.
 
여러 가지 빛깔의 돌에는
 이끼가 끼어있고, 그 사이를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젊은이는 물 속에 손을 잠궜다.
시원한 촉감이 전신에 번져왔다.
 
강의 수면에는
 햇빛이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물에 얼굴을 가까이 해서 보면
강물은 푸른 빛을 떠나 검푸르게 보인다.
 
그 검푸른 강심의 빛깔은
 젊은이의 사색을 깊게 하고, 젊은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혼미함 속에서
 차라리 안온한 괴로움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차츰 젊은이를 무욕(無欲)한 허탈 상태에 놓이게 했다.
 
 막연한 풀리지 않는
 의혹을 더듬으며, 젊은이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강물 소리는
 아득한 속삭임처럼 그의 내부에서 울렸다.

  <……얘야 과거를 보러 가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느니라. 또 권력을 잡았다 해서
오만해서는 안된다.
 
 남자의 권력은
 여자의 빛이기도 하고, 또 남자를 몰락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애야. 부디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아라……>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젊은이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 여자가 있었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젊은이는 아직도 꿈 속을 더듬으며 괘나리 봇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괘나리 봇짐을 어깨에 메기 위해 그것을 들어 올렸다.
  순간, 섬광과도 같이
 그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그렇지. 봇짐 속을 보자!}

  젊은이는 다시 주저 않아 짐을 풀었다. 
 그러자 봇짐 속에는 한 마리의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는 화다닥 놀라
 뒤로 물러서 커다란 돌맹이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구렁이를 향해 던지려 했다.
 
 순간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어 갈대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이는
 머리 위로 돌을 들어 올린 채, 구렁이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뿐
돌을 던지려 하지 않았다.

  {음, 저 구렁이가
 사공에게 쫓기던 여인임에 틀림없구나.}

  젊은이는
 비로소 꿈 속에 일어난 일을 기억해 냈다.
 
  꿈 속의 젊은이는
 나이 어린 동승(童僧)이었다.

  동승은
스승의 심부름으로 강을 건너가야 했다. 
 나루터의 뱃사공은 험상궂은 사나이었다.
 
 가슴에 털이 돋고
구랫나루가 텁수룩한 사나이는 말씨까지가 거칠었다.
  {야,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조그만 상좌 녀석에게 돈이 있니? 중이라고 그저
나루를 탈 생각은 말아야 한다.}

  {네. 나루를 건널 삯은 있습니다. 곧 좀 건네 주십시오.}
  {야, 요놈 봐라. 삯도 주지 않고 건네 달라고? 어디 삯 먼저 내라.}
  동승은 짐 속에서 엽전 꾸러미를 꺼내 배 삯을 치루었다
그 돈 꾸러미를 본 사공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냐?
조그만 상좌 중놈이 어디서 그 많은 돈이 생겼지?
바른대로 말해라.
 
하지 않으면 관가에 고해 바칠테다.}
  {이 돈은 보은사를 중창할 시주 돈이예요.
저의 노스님께서 강 건너 대장간에 가져다 주래서 가는 겁니다. }
  동승은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건네 주지. 자, 어서 배에 올라라.}
  사공은 동승을 태우고 배를 강심으로 밀어 내려 했다.
 그 때 천방지축 뛰어 오는 한 여인이 나룻배를 불렀다.
  {여보, 사공 잠깐만 기다려 주시어요.}
  {아니, 저런 빌어먹을 것이 있담. 남의 일을 방해하니.}
  라고 혼자 중얼거린 다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안돼요. 배를 벌써 띄웠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시오.}
  {잠깐만 배를 기슭에 대이면 좋을 것을 그러시오. 함께 갑시다.}

  {안된대두. 여기 탄 손님은 중이라,
외간 여자와는 함께 타지를 않소. 미안하외다.}

  {아니, 내가 언제 여자와는 나룻배를 타지 않겠다 했오.
기왕이면 함께 가는 것이 사공에게도 힘이 덜 들어 좋지 않습니까. 배를 기슭에 대시오.}
  동승이 말했다.

  사공은 하는 수 없이
 배를 기슭에 대고 여인을 태웠다.
  {고맙습니다. 스님.}

  여인은 동승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사공의 발 밑에 던졌다.
  {예 있오. 배 삯은 미리 받아 두시오.
 
행여 배 삯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태워 주지 않으려 했오?}
  사공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노를 저어 배를 강심으로 몰았다.
  여인은 동승을 향해 돌아 앉았다.

  {스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소승은 강건너 대장간이 있는 마을까지 갑니다.}
  {대장간이오?
 
 스님네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 대장간에 연장을 가지러 갈 일은 없지 않습니까?
무슨 일로 가시와요?}

  {아, 그야 농사는 짓지 않지만 연장은 때로 필요합니다.
 실은 이번에 저희네 절을 중창하기 위해서 연장을 맞추러 가는 길입니다.}
  {아, 절을 중창하시면 시주를 거두시겠군요. 어느 절입니까?
 
제 집도 강을 건너서 얼마 멀지 않으니,
 함께 가 주시면 저도 시주를 하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소승은 보은사에 사는 사미승입니다.
함께 가도록 하지요.}

  두 사람의 수작을
잠자코 듣고 있던 사공이, 갑자기 노를 들어 여인을
 후려치며 외쳤다.

  {이 요사스러운 년아,
왜 하필이면 스님을 꼬이느냐!}

  {무엇이라고!
남이야 중을 꼬이건 홀아비를 꼬이건 무슨 상관이람!}
  사공이 내려치는 노를 피해 물 속으로 뛰어든 여인은 금방 한 마리 커다란 암 구렁이가 되어 달아났다.
그 서슬에 젊은이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젊은이는
 봇짐을 챙겨 어깨에 둘러 맸다.
그리고 길을 재촉했다.

  어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그는 나루터에 닿았다.

  나루터에는
 한 사람의 늙은 사공이 빈 배에 앉아 있었다.
젊은이는 나룻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노인장. 나루를 건네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어서 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이렇게 늦게 어디를 가십니까?}
  사공이 삿대로 배를 밀어내며 물었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나루를 건너가면
인가가 없는데 어디서 유하실려고?}
  {인가가 없다니요?}

  젊은이는 그제사 사공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모양은 어찌 보면 꿈속의 사공과 닮은 것도 같았다. 

  {그렇소
. 삼십리 안에 인가란 없지요.
그래서 이렇게 늦게는 손님이 없는데 오늘은 젊은이가
마지막 손님인가보오.}

  {하, 이상한데……
늘 이 나무를 건너 강 건너 장에를 다녔는데 인가가 없다니……
노인장께서는 이곳에서 얼마나 나룻배를 부리셨습니까?}
  {나요, 나야말로 이 나룻터에서 태어나 늙었지요.}
  {그러면 이곳은 여강(麗江) 나루가 아닙니까?}

  {여강 나루야 여강 나루지요.
 그러나 젊은이는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이오.}
  {넷, 길을 잘못 들다니요.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소.
젊은이는 오늘 낮에 강가에서 암 구렁이를 보았지요?
이 길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오.
 
이 나루를 건너면
보은사가 있지만 누구도 이 나루를 건너서 살아서
보은사(報恩寺)에 닿는 사람은 없오.}

  {그러면 노인장,
 저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천만에, 죽지는 않았오이다.
다만 젊은이의 효심 때문에 이길에 이른 것이오.
 
 젊은이가 그토록 위하던 어머니는
 오늘 새벽 젊은이가 떠나자 곧 숨졌오.
 
 그래서 지금은
 보은사의 나찰(羅刹)이 되어 있는데, 보은사가 너무 퇴락하여
젊은이의 어머니가 거처할 곳이 없오.
 
그래서 어머니는
 절 아래 있는 동굴을 거처로 삼았오.
 
 그런데 그 동굴에는
백사녀(百蛇女)라는 마귀가 살고 있었오.
 
 당신 어머니께 집을 빼앗기니까
화가 나서 당신을 해치려고 했던 것이오.
 
다행히 나루를 지키는
 나한에게 들켜 백사녀는 당신을 해치지 못했오.}

  {그러면,
 꿈 속의 동승은 누굽니까?
그 동승은 저 올습니까?}

  {그렇소.
 그것은 당신의 전생 모습이오.
 당신은 전생에 보은사를 중창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도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오.
 오늘 당신에게 이런 기회가 있는 것도 모두 보으나 부처님의 계시인 것이오.}
  했다.

  홀연 젊은이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둠 속의 강 기슭에 혼자였다.
 
그는
 삼십리의 무인지경을 지나 보은사에 이르렀다.
 젊은이는 보은사를 돌아보고, 어머니의 영전에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장안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물론 젊은이는
 장원 급제하여 여주 고을의 원님이 되었고, 나라에 상주하여
 보은사에 큰 역사를 일으켜 중창했다.

  때는 이조 성종 四년……
대왕 대비의 특명으로 지금의 경기도 여주군 여강 동쪽 봉미산에 있던
보은사를 중창하고 부처님의 신탁으로 중창한 절이라 해서 신륵사(神勒寺)라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륵사 앞의 탑 밑에는,
나찰이 된 그 젊은이의 어머니가 지금도 살고 있다고 전한다.
 
 
   
                                             크기변환_1333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