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
이성계가 일취월장(日就月將) 승승가도를 달리며,
그 기세가 하루가 멀다하게 강해져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의 이목(耳目)이
이성계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이란 소문을 믿지 않으려 했다가 차츰 날이 갈수록
이씨란 곧 자신을 두고 일컬음을 알고 난 후부터 점차 남모르는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
때로는 꿈에서도
일국을 건설하여 용상에 앉아 있는 자신의 의젓함을 보기도 했고,
양이 싸우다 두 개의 뿔이 부러져버린 일이나, 서까래 3개를
짊어지고 나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성계에게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결정적인 감동을 준 것은 항간에,
"목자승저하 목정삼한경(木子乘猪下
復政三韓境)이라 하여
이씨(李氏) 성을 갖고
있는 돼지띠(乘猪下)인 사람이 삼한(三韓)을 다시 회복시켜
정사를 펴나가리라."는 소문이 나돌면서였다.
이성계는 마침
자신의 띠가 돼지띠였으므로 언제쯤인가 제왕이 되어보겠다는
대야망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 꿈속에서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에서 서까래 3개를 짊어지고 나오는데
바로 눈앞에서 숫양이 싸움을 하다가 두 개의 뿔이
일시에 부러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신기하게 여긴 이성계는
세상사 일을 거울처럼 훤히 내다본다는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했다.
이성계의 이야기를
신중히 듣고 있던 무학대사는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합장을 하여 이성계에게
황제의 예의를 올렸다.
그러자. 이성계는,
"대사님, 왜 이러십니까?
저에게 대례(大禮)를 올리시다니요?"
이성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감마마가 될 것이외다." 하고
신중한 어조로 해몽의 비답(批答)을 내렸다.
그리고,
그 연유를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집이 불에 타는 형상은
앞으로 병화(兵火)를 뜻하고 서까래 3 개를 짊어지고 나온 것은
석 삼자(三字)나 임금 주자(主字)가 되니, 필시 임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두 개의 뿔이 빠진
양(羊)을 친히 보았다는 것도 임금이 된다는 암시인데,
아마 두 개의 뿔이 빠진 것 이외에 그 양은 반드시
꼬리까지 빠졌을 것이외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맞습니다.
대사님! 정말 대사님은 하늘과 사람, 그리고 신(神)을 삼합(三合)하여 내려보내신
하늘의 아들(天子)이자 신승(神僧)이시고 인간으로서도
가장 현명하신 귀인(貴人)이십니다."
무학대사를 극찬한
이성계는 무학대사가 말한 대로 꿈속에서 서까래를 짊어지고 정신 없이
나오다가 양의 꼬리를 밟았는데 이상하게도 꼬리가 쑥 빠져버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무학대사는
그 연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 중국 한나라 시대에도
귀공(貴公:이성계)의 현몽에서와 같이 유방(劉邦)이 젊었을 때
어느 정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양거각미(羊去角尾)라 하여 양의 두 개의 뿔과
꼬리가 빠져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꿈의 해몽을
당대 유명한 역술가(易術家)에게 부탁한 결과, 양 양자(羊字)가 거두절미(去頭截尾)가 되었으니,
이는 필연적으로 임금 왕자(王字)로 장차 임금이 될 징조이라'고 비답(泌答)을 내렸던 바
후일에 한왕(漢王)이 되니 장차 임금이 될 것이오.
딱히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귀공과 내가 밀약(密約) 하심을 어찌 생각하시오." 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중을 밝혔다.
무학대사와 이성계는
그 자리에서 이성계가 임금이 되지 못할 경우, 무학대사는
이성계로부터 무식쟁이 돌중, 그리고 대사의 돼지 같은 얼굴 생김을 들어 미륵돼지 등
혹평을 하며 놀려주어도 달게 받을 것과 반대로 임금이 될 경우엔 아주
큰절을 지어주고 왕사(王師)로 까지 모시겠다는
둘만의 밀약을 하였다.
이성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사들과
병영(兵營)으로 돌아왔다.
이성계는 속마음으로
무학대사의 말처럼 임금이 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고 부푼 야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었다.
그러자. 이성계의 부장(副將)은
이성계의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장군님, 안변(安邊)이란 곳에 글자를 짚어내면
그 짚어낸 글씨를 여러 각도로 분리시켜 인간들의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일정의
파자정단(破字正斷)으로 이름이 나 있는 걸승(乞僧)이 있다는데,
거기 한 번 가보심이 어떠신지요?"
부장의 이러한 말에
이성계는 마음속으로 귀가 번쩍 뜨였지만, 헛기침을 두어 번하고는,
"뭐 그게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며 슬며시
사양했다.
그러나. 부장은
이성계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터라 이성계에게, "장군님,
그러면 소장이 대신 안변을 다녀올까요?" 하고
슬쩍 말하자,
이성계는 큰소리로,
"일국의 녹을 받는 장수가 사사로운 일에 심신을 쓰다니?……" 하고
부장을 힐책하면서도,
"그럼, 차라리
변방의 방위 태세도 볼겸 같이 가십시다." 하면서
은근슬쩍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하여
안변에 온 이성계는 수소문 끝에 유명하다는
걸승의 거처를 찾아갔다.
산기슭에 토굴을 파고들어 앉아 있는
걸승은 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천하에 빌어먹는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라고 하는
게 훨씬 적격인 듯이 보였다.
이성계 자신은 물론이고
같이 간 군졸까지도 허수름한 백성으로 변복을 하고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성계란 인물을 알아 볼 수 없었다.
걸승이 있는 토굴 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서 있었고 파자정단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혀를 차며,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꼭 맞추는지 모르겠다?" 라며
감탄하는 모습들이었다.
이성계도 다른 사람과
같이 줄을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굴 안으로 들어갔다. 굴 안에는 삼사십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하나가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성계는 그가
어떻게 정단을 하고 있는가를 유심히 보았다.
걸승은 먼저 와 있는
남자에게, "당신이 큼직큼직하게 써 놓은 여러 가지의 글자 중에서
하나만 골라 짚으시오." 하고 말하자.
그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물은 다음 물을 문자(問字)를 짚었다. 걸승은 그 남자가 짚었던 문자(問字)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허, 당신은 내 친구여 내 친구로구먼!
" 걸승의 이와 같은 큰 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남자는,
"그게 무슨 말씀이셔유?" 하고 반문하자.
걸승은
재차 큰소리를 치며, "당신 거지 아니야?
거지,거지도 몰라?
당신이나 나나
깨진 바가지에 밥 얻어먹는 것은 똑같잖아.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친구지 허허……." 라고 미친 듯이 큰 소리를 치고
일갈 성토를 하자.
걸승의 말에 감탄한 사내는
, "대사님, 맞습니다. 맞아요. 저는 거지예요.
한때는 그런 대로 살았는데,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을 때 처자를 잃고 한을 가슴에 안은 채, 하늘을
지붕 삼아 문전걸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 남자는
그만 토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여인이 걸승 곁으로 다가가서 세상살이가 하도
비관적이나 앞으로는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는 뜻에서
즐거울 락자(樂字)를 짚었다.
걸승은 글자를 짚고 있던
여인의 손가락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투명한 소리로, "체에엣, 과부구만,
당신 남편이 목매달아 죽었지?"
걸승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동안 여인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원망하는 목소리로, "그래요. 도사님.
남편은 약초를 캐러가서 목매달아
자살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시나요?
정말 신기하네요?"
여인의 이 같은 말에
걸승은 가파른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와 같이 하나도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허, 즐거울 락자는 흰 백(白)자변을
상층 중심부,
즉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목부위에 해당하는데, 그 목부위 양쪽에 흰 실타래가 있어 이는
마치 목을 맨 끈과 같고 맨 아래의 나무 목(木)변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칠성판(七星板)과 같으니 이 모두를 종합해보면 흰 노끈으로 목을 매
칠성 판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헛허허……."하는 것이었다.
여인이 토굴을 나가자.
이어서 이성계가 허름하고 초라하게 보이려고 짚고 왔던 나무 막대기를
토굴 벽 쪽에 기대놓고 걸승의 면전에 정숙한
모습으로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워 논 막대기가 옆으로 댕그렁하고
토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걸승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태도로 그 막대기를 한참이나 응시하더니,
"에헴, 허, 배가 부르도다
." 아무 영문도 모르는
이성계는, "도사님, 저의 운세 좀 봐주세요?" 하고
정중하게 청하자.
걸승은 눈썹을
위아래로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이성계에게 글씨를 짚어보라고
하고는 곁에 있는 바가지에
찬밥 한 덩어리를
볼이 터지도록 입 속으로 밀어 넣고
허리에 차고 있던 호리병 모양의 물통을 입에 갖다대고 절반은 흘리면서
절반이나 겨우 마시는데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성계는
아까 걸인이 짚었던 물을 문자(問字)를 짚었다.
걸승은 큰 소리로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면서, "지존이요, 지존(至尊)!"
하고 외쳐 됐다.
이성계는
, "지존이라니요, 대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걸승은
방금 까지 만도 미친 듯이 파안대소하던 모습을 바꾸어 조용한 어조로,
"귀공께서 짚은 물을 문자(問字)는 좌군우군(左君右君) 상(象)이므로 이는 장차 임금이 될
징조이고 일장토상지락(一杖土上之落) 또한, 필유지존지인(必有之尊之人)이니
장차 임금이 될 것은 의심할 바가 없소이다." 라며 단호한
어조로 장담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걸승에게, "같은 물을 문자(問字)인데, 아까 그 남자에게는
문 앞에 입이 있으니(門前口置) 문전걸인(門前乞人)이라고 하시고, 이제 와서는
좌군우군(左君右君)하며 손바닥 뒤짚듯이 평하시는지요?"
조금은 불만스럽다는
어조로 이성계가 따지고 들자 걸승은 시간이
흐를수록 침착해지며,
"해와 달이
춘하추동을 이루고 세상만유(世上萬有)는 돌고 돌아
시시각각으로
천차만별(千差萬別)하여 같은
글자를 가지고도 짚는 사람이 앉아있는 방향이나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소이다." 라는
논리 정연하게 지적하면서,
"아까 그 사람은 내가 얻어다 놓은 밥 옆에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
물을 문자를 짚었으니,
이는 마땅히
문전구치(門前口置), 즉 걸인이라 할 수 있고 귀공께서는 임금 왕자 곁에서
똑같은 물을 문자를 짚었으니 좌군우군, 즉 임금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성계는 걸승의 이야기에
이해가 가는지 고래를 연거푸 끄덕대며, 다그치듯
걸승에게 물었다.
"대사님. 방금 말씀에
임금 왕자 곁에 앉아 있다고 하셨는데, 이 토굴 속에
임금 왕자가 어디에 있는지요?"
이성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헛허허……. 하고 웃어내던 걸승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소.
허허, 일장토상지락(一杖土上之落),
즉 한 개의 막대기가 흙(土)위에 떨어졌으니
이게 바로 임금 왕자 아니고 그제야 이성계는 속이 후련한지 걸승에게
자신이 항간에서 말한 이성계라고 밝혔다.
그러자. 걸승은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나타난 자괘(字卦)를 보고 알았노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물을 문자를 자세히 보면,
"한 임금(君)은 분명하나 또 다른 임금(君)은 분명치 않아,
입 구자(口字) 하나를 갖고 서로 끌어가려고
난투극을 벌이다.
입마저 찢어진 형상이라
불길하며 흙(土)위에 막대기(一) 하나를 더하니 이는 완벽한 임금 왕(王)자가
되므로 결국 임금을 뜻한 글자는 셋이 돼, 앞으로 귀공께서 임금이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 삼대까지는 왕위찬탈이 있게 될 것이옵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계를 향해 정중하게
예의를 올렸다.
토굴에서 나온 이성계는
자신이 임금이 되는 것은 하늘의 소명이라 확신하고 그 위치를 확보하며 흉중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