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가물치
가지
간재미
갈근
갈치
감자
감태
감초
감홍로주
강활
강황
게장
고구마
고등어
고본
고사리
고슴도치
고추
고추장
곤쟁이
골풀
곰취
곱돌
과루인
곶감
과메기
곽향
광어
구기자
구리
국수
국화차
굴비
금불초
기장
김치
꼬막
꼴뚜기
꽃게
꿀풀
나물
나전칠기
낙죽장도
낙지
냉이
노루
녹두
녹용
녹차
농어
뇌록
누치
느룹나무
느타리버섯
다시마
다람쥐
다래
다슬기
닥나무
단감
단목
달래
담비
담쟁이
당귀
대게
대구
대나무
대발
대추
더덕
더덕주
도라지
도루묵
도마뱀
도미
도자기
돈육
돈차
돌미역
돔배기
동래파전
동백기름
동충하초
돚자리
돼지
된장
두꺼비
두릅
두충
딸기
들기름
마늘
마뿌리
만화석
막걸리
망둥어
매생이
매실
맥문동
맨드라미
머루
머루주
메밀차
멸치
명란젓
명설차
명태
모과
모란
모래무지
모시
모자
목기
목화
무명
무우
문배주
문어
미나리
미역
민속주
민어
밀랍
박하
방풍
백랍
백련잎차
백렴
백미
백반
백부자
백조어
백하수오
백합
밴댕이
뱅어
벼루
병어
법주
보골지
보리
복령
복분자
복숭아
복어
부들
부자
부채
부추
붉나무
붕어
비빔밥
비자
뽕나무
사과
사슴
산나물
산삼
삼림욕
산수유
살구
삼릉
삼배
삼치
상합
상황버섯
새우
새우젓
생강
석결명
석곡
석류
석영
석이버섯
석청
석창포
소금
소라
소주
속새
송어
송이버섯
송화가루
수달
수박
수정
숙주
순채
숭어
승검초
식해
안동포
안식향
앵두
야콘
야콘잎차
약쑥
양귀비
어란
어리굴젓
어육장
엄나무
연밥
연어
연엽주
열목어
염전
엽삭젓
오가피
오미자
오곡
오골계
오정주
오죽
오징어
옥돔
옥로주
옹기
옻칠
왕골
용문석
우무
우황
울금
웅어
위어
유기
유자
유자차
유황
육포
은어
은행
이강주
이스라지
익모초
인삼
인삼주
잉어
자단향
자두
자라
자라돔
자연동
자하젓
작설차
작약
장군풀
장아찌
전모
전복
전어
전어젓
전통주
젓갈
젓새우
정어리
조개
조기
조홍시
좁쌀
종어
종이
주꾸미
죽렴장
죽로차
죽순
죽순채
죽염멸치
죽엽청주
죽피
죽합
준치
중국차
지라돔
지치
질경이
찐빵
참가사리
참게
참기름
참죽나물
참외
찹쌀
창출
천궁
천남성
천문동
청각
청국장
청란석
청목향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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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주
추성주
취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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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주
콩잎
토마토
토끼
토사자
토주
토파즈
토하젓
파전
패랭이
편두
포도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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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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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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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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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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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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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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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에 얽힌 설화,자신의 수련을 통하여 공행(功行)을 쌓고 자기 몸 안에 단(丹)을 이룩하는 내단(內丹) 성취의 수련을 고취하는 데 부수하여 생겨난 설화를
15-10-23 19:37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단학에 얽힌 설화. 수련파의 도인(道人)들이 선약(仙藥)을 연조(煉造)하는 이른바 외단(外丹)에 대한 집념에서 탈피하고, 자신의 수련을 통하여 공행(功行)을 쌓고 자기 몸 안에 단(丹)을 이룩하는 내단(內丹) 성취의 수련을 고취하는 데 부수하여 생겨난 설화를 말한다.

〔단학의 기본 이론〕
수련을 통하여 공행을 쌓아서 몸 안에 단을 이룩하는 일을 일반적으로 단학이라고 부른다. 본성에 연결시킨 단학의 기본 이론은 김시습(金時習)의 용호(龍虎)에 관한 해설에 잘 해명되어 있다.
정기(鼎器
솥)에 납과 수은을 넣고 거기에 불을 지펴 두 가지 광물이 날아가거나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합치되도록 만드는 것이 금단(金丹
)을 연조하는 방법인데, 이것을 상징적인 것으로 취해서 인체에 적용시켜 풀어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기는 사람의 몸인데 머리는 건(乾)이 되고 배는 곤(坤)이 되며 배꼽 아래 한 치 서 푼의 자리에 있는 단전(丹田)이 그 중심이 되므로 단전을 기준으로 하여 몸을 안정시킨다. 납과 수은은 용호에 비기는데, 그것은 인체에서 행하여지는 일호일흡(一呼一吸)인 호흡이다. 이 일호일흡을 잘해서 우주의 원기(元氣)를 훔쳐다가 체내에 단을 이룩한다.
지피는 불은 복이(服餌), 즉 양생을 위한 식물로 잡는다. 그 복이로 복호항룡(伏虎降龍
호랑이와 용을 항복시킴.)하여 하나로 병합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몸의 자세를 제대로 잡아서 숨을 법도에 따라 바로 쉬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기본적인 방법 외에도 여러가지 금기 내지 술법이 있기는 하다. 이러한 단학은 장생불로하는 신선으로 변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으므로, 자연 그것에 관련된 설화가 많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해동이적의 단학설화〕
단학설화로 간주할 수 있는 기사는 각종 만록(漫錄일정한 체계 없이 붓 가는 대로 쓴 글)에 흩어져 있으나, 그 중 홍만종(洪萬宗)이 엮어 지은 해동이적 海東異蹟이 가장 규모를 잘 갖춘 것으로 들 수 있다. 32항 38인의 이적을 여러 책에서 뽑아서 인물별 시대순으로 배열하고 엮은이의 안어(按語)와 평설(評說)을 달기도 하였다.
다루어진 인물은
단군(檀君)·박혁거세(朴赫居世)·동명왕(東明王)·사선·옥보고(玉寶高)·김소이선(金蘇二僊)·대세구칠(大世仇柒)·참시(始)·김가기(金可記)·최치원(崔致遠)·강감찬(姜邯贊)·권진인(權眞人)·김시습·홍유손(洪裕孫)·정붕(鄭鵬)·정수곤(丁壽)·정희량(鄭希良)·남추(南)·지리선인(智異僊人)·서경덕(徐敬德)·정렴(鄭)·전우치(田禹治)·윤군평(尹君平)·한라선인(漢拏僊人)·남사고(南師古)·박지화(朴枝華)·이지함(李之)·한계노승(寒溪老僧)·유형진(柳亨進)·장한웅(張漢雄)·남해선인(南海僊人)·장생(蔣生)·곽재우(郭再祐
) 등이다.
이들이 모두 단학에 조예가 깊어서 이적을 나타낸 것은 아니나, 그 기사가 대체로 단학을 연상시키는 성질의 것들이다.

〔김가기 설화〕
신라 후기의 유당학인(留唐學人당나라 유학생)들에 의하여 중국에서 수련 중심의 도교가 전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 중에서 김가기는 백주등선(白晝登仙)한 인물로 전해진다. 그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도교전적인 운급칠첨 雲七籤속선전 續仙傳에 들어 있는데, 그에 관한 기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당나라 대중(大中) 11년(857) 12월 홀연히 표문(表文)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옥황상제의 조서를 받들어 영문대(英文臺)의 시랑(侍郎)이 되었습니다. 내년 2월 25일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당나라
선종(宣宗)은 대단히 이상하게 여겨 중사(中使
)를 보내어 궁중에 들라고 불렀으나 고사하였고, 옥황상제의 조서를 요구하였으나 다른 신선이 관장하여 인간세상에 남겨두지 않았다고 하여 거절하였다.
마침내 궁녀 4인과 향약(香藥)과 금채(金綵)를 내리고, 또 중사 2인을 보내어 시중을 들게 하였다. 김가기는 조용한 방에 홀로 거처하여 궁녀와 중사는 거의 접근하지 못하였다.
매일 밤중이면 방안에서 내객과 담소하는 소리가 나서 중사가 몰래 들여다 보면 다만 선관(仙官)과 선녀가 각각 용과 봉 위에 앉아서 엄연하게 마주보고 있어 궁녀와 중사가 호들갑을 떨 수 없었다.
2월 25일 봄 경치가 아름답고 꽃이 활짝 폈는데, 과연 오색 구름 속에서 소리치는 학과 나는 난새와 생소(笙簫)와 금석의 풍악과 깃, 수레지붕에 경옥바퀴를 한 수레가 나타났고 깃발이 하늘에 가득 찼으며 신선의 의장대가 극히 많은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
조정의 여러 관원과 사서인 등 구경하는 자들이 골짜기를 넘치도록 메운 채 바라보고 절하며 감탄하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해동이적
의 김가기 기사에도 이것을 그대로 옮겨 기록하고 있다.

〔최치원 설화〕
최치원도 신라에 수련 중심의 도교를 전파한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에 관한 기이한 설화는 많으나 김가기의 경우같이 등선(登仙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 사실이 역력한 설화는 남기지 않았고, 다만 그가 식구를 거느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숨어 살다가 어느날 아침 집을 나가 수풀 속에 갓과 신발을 버리고 없어져 버려 그것이 상빈(上賓), 즉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김시습 설화〕
김시습은 그의 괴벽과 기행으로 이미 범상한 인간이 아님이 세상에 알려졌고, 또 유··도 3교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지조차도 분간할 수 없게 처신하였다. 그러나 우리 땅의 수련 중심 도교의 도맥에서는 중시조격 지위에 있으며, 장생불로하는 신선이 되는 묘리를 터득한 사람으로 여겨져 신선과 관련된 설화까지 낳았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談에 김시습에 관한 한 가지 기사가 있다. 김시습이 강원도 양양 땅의 설악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강릉 사람인 최연(崔演
)이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 5, 6인과 함께 김시습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다 거절하고 유독 최연만은 가르칠 만하다고 머물러 있게 하였다. 최연은 반 년 동안 사제간의 도리를 다하고 자나깨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달이 높이 뜨고 밤이 깊어질 때 잠을 깨어 보면 김시습이 간 곳이 없고 잠자리가 비어 있었다. 최연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겼으나 감히 추적해서 찾을 수가 없어 그대로 있고는 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어느날 저녁 달이 또 밝아지자 김시습이 옷을 차려 입고 몰래 나가는데, 최연이 멀리서 그 뒤를 밟아갔다. 큰 골짜기 하나를 지나고 재를 하나 넘자 숲이 우거져 있어 그 사이로 살펴 보았다.
재 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을 만한 큰 반석이 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객 두 사람이 김시습과 인사를 나누고 반석에 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거리가 멀어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후에 그들이 헤어지자 최연은 먼저 돌아와서 본래대로 자리에 누웠다.
그 이튿날 김시습은 최연을 보고
처음에는 너를 가르칠 만하다고 여겼으나 지금 네가 조바심하여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고 말하고 그를 쫓아버렸다. 김시습이 밤중에 만나 이야기한 자들이 사람인지 신선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김시습이 선관들과 담소한 듯한 여운을 남기는 설화이다.
김시습은 그 뒤 두타승(頭陀僧
떠돌면서 수행하는 승려)이 되어 홍산(鴻山지금의 부여에 있는 산)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는데, 임종 때 화장하지 말라는 유언이 있어 승려들이 임시로 절 곁에 매장하였다가 3년 뒤에 제대로 매장하기 위하여 그 관을 열어보았더니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아 그가 시해(尸解
몸만 남기고 혼백이 빠져 나가서 신선이 됨.)한 것이 아닌가 하고들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남궁 두(南宮斗) 설화〕
단학설화 중 수련을 통하여 공행을 쌓아 가는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설명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재주가 비상하면서 그것을 세상에서 펴 보지 못하고 요절한 것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낸 것도 있다. 남궁 두는 조선 명종 때 도예(道藝)를 배울 목적으로 치상산(雉裳山)에 가서 한 장로를 만나 지도를 받고 체내에 단을 이룩하는 수련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로의 말대로 수련을 쌓은 끝에 단전이 충만해 오고 배꼽 밑에서 금색의 광채가 나는 듯하였다. 그는 금단이 이루어진 것이 기뻐서 그만 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여 급작스럽게 단전에 힘을 주어 황화(黃花
빛깔이 누런 꽃)를 발하게 하였더니 금단이 망가져 버려,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장로는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때리고 틀렸다고 탄식하며 뒷수습을 해서 그의 심기를 안정시켜 주었다. 장로는 이어
자네는 신태(神胎)는 이룩하지 못하였으나 지상선(地上仙)은 될 수 있으니, 약간 양생을 하면 800세의 수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
그는 장로의 내력을 물어 그가
의상(義湘
)의 도맥을 승계한 권진인임을 알았고, 그 장로를 졸라서 배꼽 밑의 신태를 구경할 수 있었다. 장로가 어둠 속에서 아래에 싸인 것을 풀자 금빛이 대들보를 쏘듯이 비치고, 그 빛이 하도 휘황하여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여서, 놀란 남궁 두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버렸다.

〔남추 설화〕
조선 중종 때 장원급제하여 전적 벼슬까지 지냈다는 남추에 관한 설화도 단학설화의 한 가지 특색을 나타내는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도인에게서 수련술을 배우고 난 다음 대과에 급제하였는데,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곡성(谷城)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이적을 많이 일으켜 사람들의 주의를 끌면서 지내다가 30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염습하여 입관시켰다가 관을 들어 보니 너무 가벼운 듯하여 열어 보았더니 빈 관이었다. 그 안에
창해에서는 배 간 자취 찾기 어렵고, 청산에서는 학 날아간 흔적이 안 보인다.
라는 시구가 적혀 있었다.
밭가는 사람들이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들려서 쳐다 보니 남추가 말을 타고 흰 구름 속을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에도 언급되어 있다.

〔전우치 설화〕
단학설화에는 술사(術士)의 괴술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 있다. 전우치는 신광한(申光漢)과 내왕하였던 사람으로 전해지는데, 태백산의 여우한테서 영전(靈詮)과 비기(記)가 적힌 소서(素書)를 얻어 그 일부를 익힌 끝에 여러 가지 환술(幻術도술)을 부리게 되었다.
한번은 신광한의 집에서 내객들과 함께 있을 때 천도(天桃
하늘나라에 있다는 복숭아)를 얻어낼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그는 새끼 수백 사리(뭉치)를 공중 구름 밖으로 던져 올려놓고, 동자를 시켜 그 새끼를 타고 올라가 새끼가 다하는 곳에서 벽도(碧桃
仙境에 있다는 과실)를 따오게 하였다.
동자가 새끼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는데, 잠시 후 벽도의 잎과 열매가 마당에 떨어졌다. 좌객들이 다투어 그 벽도를 집어 먹었는데 그 단물의 싱그러움이 속세의 복숭아가 아니었다.
그런데 공중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전우치는 놀라며
복숭아 한 알을 먹으려고 동자의 목숨을 없앴다.
고 말하였다. 천도를 지키는 자가 상제(上帝)에게 고하여 동자를 죽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팔 한 짝이 땅에 떨어지더니, 또 한 팔이 뒤이어 떨어지고 양다리와 몸뚱이와 머리가 떨어졌다.
좌객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는 가운데 전우치가 천천히 걸어가 동자의 시체를 수습하여 이리저리 이어붙였다. 한참 후에 동자가 툭툭 털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가버렸다.
그런데 전우치는 그 뒤 괴술로 군중을 현혹시킨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태수가 내어다 묻게 하였는데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파내어서 관을 열어 보았더니 빈 관이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전우치를 만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윤군평 설화〕
전우치와 같은 때의 사람으로 역시 도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윤군평은 이인(異人)을 만나 황정경 黃庭經을 전수받아 수련법을 터득하였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과식을 삼가라고 경고하면서, 모든 질병은 음식을 절제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늘 찬 철편(鐵片
철 조각) 4매를 가지고 번갈아 가며 양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철편이 불같이 뜨겁게 달아 올라 식은 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편안하지가 않았다. 추위나 더위를 가리지 않고 늘 목욕을 해서 어깨와 등을 식혔으며 동짓날에도 우물물 한 동이를 등에 부어야 견디었다.
80여세에 죽었는데 시신이 너무 가벼워서 수의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군평이 시해하였다고들 말하였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梅月堂集, 龍虎訣, 海東異蹟, 於于野談, 熱河日記, 詩話와 漫錄 (車柱環 編譯, 民衆書館, 1966), 韓國道敎思想硏究(車柱環, 서울大學校 韓國文化硏究所, 197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학
도교의 수련법. 연명장수(延命長壽)와 도통신선(道統神仙)의 술(術)로 환반지학(還反之學)·금단지학(金丹之學)·연단지학(煉丹之學) 등으로 불린다.

〔기 원〕
단학의 원류는 고대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신선술에서 유래하며, 이를 신앙하는 방사(方士)들에 의하여 존경받고 숭상되어 전해왔다. 방사의 방(方)은 기술을 의미한다. 그들은 불로장생의 약을 탐구하고, 정기(精氣)나 생명의 구조를 연구하는 등 실험과 기술을 연마하고 축적하면서 이를 전개하였다.
이것이 점차 체계화되면서 외단학(外丹學)과 내단학(內丹學)으로 크게 구별된다. 외단학은 벽곡(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대추·밤 등을 날로 먹는 일)이나 단약(丹藥), 즉 선약(仙藥)을 연조(煉造)하여 복용함으로써 신단(神丹)을 연마하고 신선을 이루는 타력적·
외적 방법이다.
내단학은 자력적
·
내적 수련에 의한 공행(功行)을 쌓음으로써 천지운행의 법칙에 의하여 몸 안에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즉 몸에 단을 형성하여 장생불사(長生不死)하려는 본성의 수련법이다.
위백양(魏伯陽)의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에서는 금단의 공(功), 즉 외단학에 대하여 호마(胡麻참깨와 검은깨의 총칭)도 수명을 늘려주거늘 금단을 먹으면 어떻겠는가? 금의 성질은 썩지 않으니 만물의 보배가 된다. 술사(術士)가 이를 복용하면 장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연단의 공(功), 즉 내단에 대하여
음양이기(陰陽二氣)는 지극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감응이 서로 통하거늘, 하물며 몸 안 가슴 속에서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음양은 해와 달에 해당하고 불과 물로써 그 징험(徵驗징조를 경험함)을 삼는다. 귀··삼보(三寶)는 굳게 지켜 함부로 쓰지 말라.
고 하였다.
금단술은 우주 자연의 변화 이치가 바탕이 된다. 금은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물질의 원소를 변환시킨다는 뜻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만물의 변화를 설한 철학이 있어서, 예컨대
역 易
은 우주와 인생의 변화를 통찰하여 그 변화 가운데 불변의 이치를 구하고 있는데, 자연계의 변화 이치를 터득하면 인간의 손으로 여러 가지 것을 창작해 낼 수 있다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갈홍(葛洪)은
포박자 抱朴子에서
변화의 이치는 어떤 것에서나 다 일어난다.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법이 있다. 인간은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감추는 방법이 있다.
방제(方諸
달을 향해서 물을 얻는 동판)나 양수(陽燧해를 향해서 불을 얻는 동판)를 쓰면 공중에서 물이나 불을 얻을 수 있다. 납의 성질은 희지만 붉게 하여 단(丹)이 되고, 단의 성질은 붉지만 희게 하여 납이 되게 할 수도 있다.
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구름··서리·
눈은 모두 천지의 기상이지만 약을 써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더구나, 만들어진 것은 자연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하늘을 날고 땅을 달리며,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동물이 조금씩 옛 몸을 바꾸어 전혀 다른 동물이 되는 것이 있다.
그들 자연계의 변화는 천변만화로 셀 수 없이 많다.
……높은 산이 바다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이 되기도 한다. 이는 큰 물건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이 이물(異物)로 금은을 만들지 못할 턱이 없다.
고 하여 연금술의 제조에 착수하고 있다.
포박자 내편의 단약은 단사(丹砂還丹)·황금·
백은 등 32종이 나타나 있으며, 특히 중요한 앞의 둘을 흔히 금단이라고 부른다. 연금술에 의하여 얻은 금단 대약(大藥)이야말로 불로장생에 필요한 최대 유일의 열쇠이다.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에서는 단사는 신체 오장의 모든 병을 낫게 한다. 정신을 기르고 혼백을 편안하게 하며 기(氣)를 더하고 눈을 밝게 하며, 정매(精魅) 사악한 귀신을 죽이고, 오래 복용하면 신명(神明)에 통하여 늙지 않으며, 잘 화(化)하여 수은이 된다.
고 하였다.
수은은 금···석(錫)의 독을 죽인다. 녹여서 환원하면 다시 단이 된다. 오래 복용하면 신선이 되어 죽지 않는다.
고 하였다.
이처럼 단사와 거기서 나오는 수은은 의약용으로 쓰여 역대의 의약서에도 나타나며, 이러한 금속의 용해법은 합금제조기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도교의 외단학은 의약학 및 금속공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내단학은 조식(調息
호흡법)·도인(導引선인이 되기 위한 양생법)·
방중(房中) 등의 방법을 써서 불로장생의 양생술(養生術)을 전개한다.
외단법의 연단 복용에도 반드시 내단의 조식행기(調息行氣)를 행하기는 하였지만, 조식법은 후래도교수행의 대표격이 되었다. 조식은 태식(胎息)
·
수일(守一) 등의 호흡법이며, 도인은 안마법, 방중술은 남녀 성합법(性合法)이다.
즉, 조식에 대해서
장자 莊子 내편에서는 옛 진인(眞人도교의 깊은 참뜻을 닦은 사람)은 그 식(息호흡)이 깊고 깊어서 발꿈치로 하지만, 중인(衆人)은 식을 함에 목으로 한다.
고 하여 진인의 양생법을 말하고 있다.
포박자 내편에서는 대체 사람은 기(氣) 안에 있고, 기는 인체 안에 있어서, 천지에서 만물에 이르기까지 기를 통하여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다. 기를 행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밖으로는 사악을 물리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일 쓰면서도 그것에 어둡다. 하고, 또 입으로 탁한 기를 토해 내고 코로 맑은 기를 들이마신다.
고 하여 다양한 호흡법을 전개한다.
제병원후론 諸病源候論에서는 양생도인법(養生導引法)에 말하기를 바르게 벽에 기대어 호흡을 하지 않고, 기 행하기를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러 멈춘다. 달산(疸疝)·대풍(大風)·편고(偏枯)의 모든 풍비(風痺)를 낫게 한다.
고 하여 호흡법과 도인법을 관련시켰다.
포박자에서는 천 가지 약을 복용하고 삼생(三牲··豚)을 길러 먹어도, 방중술을 알지 못하면 무익(無益)이 되고 만다.
고 하여 방중술이 선술(仙術)의 최대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방중술은 후대 중국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관련되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내단학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성행하게 된다. 다만, 도교의 내부에서 본다면
포박자
내편에 이렇게 이른다.
호흡·도인이나 초목의 약을 복용하면 수명연장은 되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신단(神丹)을 복용하면 사람의 수명을 무궁하게 하여 천지와 더불어 끝나며, 구름에 오르고 용을 타며, 태청(太淸)의 기(氣) 가운데를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하는 내·
외단의 단계적 관점이 하나의 신앙성으로 계승되고 있다.

〔역 사〕
불로장생의 신선사상이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하면, 연금술의 기원은 청동기 문명에 있다. 청동기의 기술은 은(殷)나라에서 주(周)나라로 전해져 주례 周禮에는 이미 여섯 종류의 합금법이 적혀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제(燕齊)지방에 삼신산(三神山
蓬萊·方丈·瀛洲) 설화가 유행하고, 방사를 중심으로 신산(神山)의 약초가 논의된다. 당시 기원전 5
4세기경 제나라에서 활약하던 방사의 한 사람인 추연(騶衍)은 음양오행사상을 체계화한다.
변화 원리에 바탕을 둔 음양오행사상은 중국 우주론 구조의 근본이 되며 인체의 생리학이론에도 적용된다. 음양오행은 물질 및 정기의 원질이며 후세의 원소에 상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소의 변환을 목적으로 하는 연금술에서는 근본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후 진(秦)
·전한(前漢)의 주된 관심은 신령스런 선약, 곧 불사의 약초를 찾아 구하는 데 있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하기 위하여 사자(使者)를 삼신산(三神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에 파견한 것은 유명한 일이지만, 전한의 무제(武帝)가 불사(不死)하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시황제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무제의 궁중에 방사들이 운집하고, 방사 이소군(李小君)이 황금을 만들어 식사하면 장생하여 봉래산의 신선을 만날 수 있다고 진언하였던 것을 보면, 금단제조쪽이 중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제 당대에 회남왕 유안(劉安)이 많은 방사와 학자를 모아
회남자 淮南子
를 찬술하였는데, 이 가운데 연금술과 연명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후한(後漢)의 역점은 약초보다는 오히려
인위적인 황금제조에 있었다. 회남왕의 신선도는 후한 말에 이르러 우길(于吉)의 태평청령서 太平淸領書에 전해지고, 그것이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와 삼장(三張張陵·張衡·張魯)의 천사도(天師道
五斗米道)로 이어져 신앙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연금술은 그들 종교운동과는 별개로 좌자(左慈)
갈현(葛玄)
정은(鄭隱)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갈홍에 이르러 신선사상과 더불어 대성하기에 이른다.
그 후의 금단술은 도교 교단의 발전과 그 교의사상(敎義思想)이 유행함에 따라 전개되어 당대(唐代)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며 점차 사양길로 접어든다. 당대의 많은 황제가 단약에 중독사하였기 때문이다.
제2대의
태종(太宗)이 연년약(延年藥)에, 제11대 헌종(憲宗)이 금단에, 다음의 목종(穆宗
)이 단약에 죽고, 이어 경종(敬宗)이 영약을 찾던 중 죽음을 당한다. 회창폐불(會昌廢佛)로 유명한 제15대 무종(武宗)이 단약에, 다음의 선종 역시 장년약(長年藥)에 중독되어 죽는다.
이러한 연금술의 시행착오는 척불(斥佛)
·
척도(斥道)의 유학자 한유(韓愈)가 통렬히 비판한 대로 커다란 각성을 가져와 오대(五代)를 거쳐 송(宋)나라에 들어오면서 외단에서 내단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이는 수나라
·당나라의 불교가 철학적·이론적 전개를 가져온 다음, 전란의 오대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면서 선(禪)의 실천이 현저하게 강조된 것과 궤도를 같이 하며, 이 도교의 내단과 불교의 선이 주자(朱子)의 신유학(新儒學
)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송대에는
진종(眞宗) 등 도군(道君) 황제가 많이 나와 도교가 유행하고, 따라서 도교의 학문적 전개도 눈부신 바 있다. 11세기에 장군방(張君房)이 찬술한 축약도장(縮約道藏)인 운급칠첨 雲七籤
에 내단부가 설정되는 등 내단학이 크게 진전을 보인다.

〔우리 나라의 단학〕
우리 나라 단학의 역사는 관점에 따라 고대의 신선사상이나 신명사상(神明思想), 또는 중국 도교의 유입 등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체계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여러 가지 기록에 나타난다.
이는 고려시대의 도교가 왕실을 위한 기복의식 위주의 이른바 과의도교적 성격(科儀道敎的性格)이었던 데 대하여, 조선시대 도교가 수련도교적 성격(修練道敎的性格)을 띤 것과 관련되며, 고려 말의 주자학 전래와 함께 일어난 척불숭유정책(斥佛崇儒政策) 아래 불교가 오직 선 위주로 흐르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내단학의 계보를 다룬 도가서(道家書)로는
한무외(韓無畏)의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 조여적(趙如籍)의 청학집 靑鶴集,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단학의 원류가 중국이며, 신라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보는 점이다.
해동전도록에서는 생각하건대,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실로 우리 도의 비조(鼻祖)로서 도덕경 오천언을 저술하셨다. 백양진인(伯陽眞人)이 출현함에 이르러 노자(老子)의 진전을 이어 주역참동계 삼편을 저술하니 무릇 우리 도의 대지가 이 두 경전에서 다 갖추어졌다. 하고 전수계맥을 설정하고 있다표 1
.
이들 중 역사적 사실은
김시습(金時習) 이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전진교(全眞敎)최치원(崔致遠)김시습으로 이어지는 도맥에는 연단수련적 성격이 강한 주역참동계≫·≪황정경 黃庭經≫·≪태식심인경 太息心印經
등이 전수되고 있어서 조선 단학의 내단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이에 대하여
청학집에서는 도맥이 광성자(廣成子)환인진인(桓因眞人)단군(檀君)호공(瓠公)최치원위한조(魏漢朝)로 이어진다고 하였다표 2
.
이는 단학의 계맥을 우리 나라 고유의 것으로 보는 바가 특징적이며,
해동이적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인 해동전도록이 주로 호흡법을 중심한 연단수련 중심이라면, 후자인 청학집은 삼정환(三精丸)·경옥고(瓊玉膏)·혼원단(混元丹)·길경탕(桔梗湯)·송화주(松花酒
) 등 선약 복용을 함께 하는 신선술 성격이 강하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이들과는 다른 시해파(尸解派)를 거론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조선의 단학에는 여러 유파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해동전도록에는 단서구결 丹書口訣〉·〈단서별지구결 丹書別紙口訣과 정렴(鄭)의 용호결 龍虎訣
이 부록되어 있다.
단서구결은 유··
도 3교를 판석(判釋)하여 도교를 가장 위에 둔다. 그리고 도교의 근원, 단의 득력(得力), 단우(丹友)와 사귀는 법을 설명하고 마침내 화후법(火候法)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海東傳道錄·靑鶴集(李鍾殷 역, 普成文化社, 1986), 朝鮮道敎史(李能和 著, 李鍾殷 역, 普成文化社, 1977), 韓國道敎思想硏究(車柱環, 韓國文化硏究所, 1978), 海東傳道錄에 나타난 道敎思想(金洛必, 韓國宗敎 9, 1984), 道敎의 總合的硏究(酒井忠夫, 國書刊行會, 1977), 鍊金術(吉田光那, 中央公論社, 1978). 梁銀容〉(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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