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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의 세계를 보여주고, 극락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줌. 사복불언 (蛇福不言)
15-10-23 23:40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있는 과부가 남편도 없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십이 세가 되어도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도 못 하므로 사동(蛇童)〔혹 사복(蛇卜)이라고도 하고, 또 사파(蛇巴)·사복(蛇伏)이라고도 하지만, 모두 사동(蛇童)을 말한다.〕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효(元曉)가 고선사(高仙寺)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蛇福)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 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는, / “좋다.” / 하고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布薩)시켜 계(戒)를 주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 로우니라.”
사복(蛇福)이 사(詞)가 너무 번거롭다고 하여 원효는 고쳐서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
이에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했다.
“지혜 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 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偈)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涅槃)하셨네.
지금 또한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樓閣)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 버린다. 이것을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金剛山)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량사(道場寺)라 하여, 해마다 삼월 십사일이면 점찰회(占察會)를 여는 것을 상례(常例)로 삼았다. 사복이 세상에 영검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찬(讚)해 말한다.
잠자코 자는 용이 어찌 등한하리, / 세상 떠나면서 읊은 한 곡조 간단도 해라.
고통스런 생사가 본래 고통이 아니어니, / 연화장 세계는 넓기도 하여라.
요점 정리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일연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설교 불교 설화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불교적, 서사적, 교훈적, 목적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 사상 : 불교의 윤회 사상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기 : 사복의 출생
 
승 : 사복과 원효의 만남
 
전 : 사복의 게와 영험한 현상
 
결 : 사복에 대한 후세인의 평가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사복 어머니의 장례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사복을 통해 제시된 삶과 죽음의 이치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특징 : 사후의 세계를 보여주고, 극락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줌.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삼국유사

 
내용 연구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있는 과부가 남편도 없이 태기(胎氣 : 임신을 한 기미)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십이 세가 되어도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도 못 하므로 사동(蛇童 : 뱀 아이)〔혹 사복(蛇卜)이라고도 하고, 또 사파(蛇巴)·사복(蛇伏)이라고도 하지만, 모두 사동(蛇童)을 말한다.〕이라고 불렀다. - 사복의 출생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효(元曉)가 고선사(高仙寺 : 경주에 있던 절)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蛇福)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經 : 경서의 준말, 불경의 준말)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는, / “좋다.” / 하고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布薩 : 불교 의식의 하나로 출가한 이에게 스님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계경을 들려 주고 죄를 참회시켜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일)시켜 계(戒 : 죄악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 중이 지키는 행검, 한문 문체의 하나로 훈계를 목적으로 지은 글)를 주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 로우니라.[인간의 유한한 삶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이라는 불교적 관념이 전제되어 있는 말이다. 결국 삶과 죽음의 이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복(蛇福)이 사(詞)가 너무 번거롭다고 하여 원효는 고쳐서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 - 사복과 원효의 만남
이에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했다.
“지혜 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 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지혜로운 범이란 이미 무상을 깨달은 사복의 어머니를 가리키며, 지혜의 숲은 연화장 세계, 즉 극락의 세계를 말한다. 무상을 깨달은 자는 극락 세계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사복은 이에 게(偈 : 부처의 공덕,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 글귀로 가타라고도 함)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사라수(상록수의 일종) 사이에서 열반(涅槃)하셨네.
지금 또한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 부처님이 산다는 장엄한 세계)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사복불언의 설화에 삽입된 인용시가 지닌 의미는 사복의 게에서는 석가모니의 열반이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졌다고 하고, 지금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고 함으로써 불법에 정진하여 열반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찬에서는 죽고 사는 이치를 말한 것이 말의 번거스러움을 벗어나 간단하다 하고, 삶과 죽음이 모두 고통스러우니 결국 고통스럽지 않다고 하는 이치를 드러낸다. 또한 연화장 세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임을 노래하였다. 이를 통하여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기도 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고, 인식의 전환을 기반으로 현실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때 연화장 세계와 같은 긍극적 가치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이 설화에 삽입된 게와 찬은 모두 이 설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속세의 중생들에게 던져 주는가를 집약하여 제시하는 기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 : 마음이 맑고 잡된 생각이 없이 깨끗함)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樓閣)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 버린다. [초월적 세계가 드러나 있는 말로 인간 세상의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연화장이라는 초월적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전생의 인연이 소중하여 현생까지 이어지니,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이것을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 사복의 게와 영험한 현상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金剛山)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량사(道場寺)라 하여, 해마다 삼월 십사일이면 점찰회(占察會 : 점찰경에 의한 법회)를 여는 것을 상례(常例)로 삼았다. 사복이 세상에 영검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찬(讚)해 말한다.
잠자코 자는 용이 어찌 등한(等閒 :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김)하리, / 세상 떠나면서 읊은 한 곡조 간단도 해라.
고통스런 생사가 본래 고통이 아니어니, / 연화장(蓮花藏) 세계는 넓기도 하여라. - 사복에 대한 후세인의 평가
이해와 감상
'사복이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이 설화는 원효와 관련된 불교 설화로 아집(我執)에 사로 잡힌 인간이 불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깨우치고 부처는 먼 곳에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고,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것에 있으며 바로 자기 자신의 비천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일깨우며, 바로 인간 자신이 부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욱면(郁面) 설화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의 불교신도이고,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이었는데, 후에 극락왕생(極樂往生)하였다.
당시 강주(康州)의 거사(居士) 몇 십 명이 뜻을 극락에 두고 미타사(彌陀寺)를 세워 만일계회(萬日契會)를 만들었다.
욱면은 그때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뜰에 서서 염불하였다. 주인은 그녀가 일하지 않음을 미워하여 곡식 두섬을 주어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는데, 그녀는 초저녁에 다 찧고 절에 와서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하루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고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매어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지극히 정진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욱면낭은 당에 들어가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를 들은 승려들이 법당에서 함께 염불하게 하였다.
그뒤 얼마 있지 않아 하늘의 음악이 서쪽에서 들려왔고, 그녀의 몸은 들보를 뚫고 서쪽으로 날아가다가 교외에서 육신을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하여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대광명(大光明)을 발하면서 극락으로 갔으며, 음악소리는 공중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승전( 僧傳)에 의하면 그녀는 하가산(下柯山)에 갔다가 이상한 꿈을 꾼 뒤 발심(發心)하였으며, 9년 동안 부처님께 예배하였다고 전한다. 욱면의 왕생은 죽어서가 아니라 현신(現身)으로 극락에 간다는 신라 정토설화의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욱면설화처럼 신분이 높은 원효보다 하층민인 사복이 먼저 극락왕생하고 있는데, 이것은 득도나 도력에서 하층민 또는 하층민적 행동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대목이 될 수 있고, 진정한 도라는 것은 신분의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심화 자료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복
 생몰년 미상. 신라십성(新羅十聖)의 한 사람. 사동(蛇童)·사파(蛇巴)라고도 한다. 경주 만선북리에서 과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두 살이 되어도 말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여 이름을 사복이라 하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죽자
고선사(高仙寺)로 원효(元曉)를 찾아가서 “그대와 내가 옛날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같이 가서 장사지내자.”고 청하였다. 이에 함께 집으로 돌아와 포살(布薩)을 하고 수계(授戒)하였다.
원효는 시체 앞에서 축원하기를 “나지를 말아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를 말아라, 나는 것이 괴롭다(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라고 하였다.
사복이 그 말이 너무 길다고 하자 원효는 다시 “죽고 사는 것이 모두 괴롭구나.”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기슭으로 가서 장사를 지냈다.
사복은 게(偈)를 지어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지금 또한 그와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계관(蓮花藏界寬)에 들어가려 한다(往昔釋迦牟尼佛 婆羅樹間入涅槃 于今亦有如彼者 欲入蓮花藏界寬).”고 하면서 풀뿌리를 뽑고서 시체를 업고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자 땅이 갑자기 합해졌다고 한다.
뒷날 그를 위하여 사람들이 금강산 동쪽 기슭에 도량사(道場寺)라는 절을 세워 해마다 3월 14일에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다.
사복의 전기는 서민 대중적 신라불교의 특색을 보여 주고 있으며 아울러 신라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사복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다만 이것뿐인데, 민간에 떠도는 설화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삼국유사≫ 권4 사복불언(蛇福不言)조에 있는 〈사복불언설화〉이다. 불교적 영이설화(靈異說話)로 전체적으로 불교성자(佛敎聖者)의 영이담(靈異譚)이며, 남편 없는 잉태와 출산, 열두살까지 말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형상, 전세 인연, 장례, 시체를 지고 땅속으로 들어감 등 다양한 설화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사복이 뽑은 띠풀의 자리는 현세와 타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지점 곧 우주 중심의 자리로, 띠풀은 이른바 ‘우주의 나무(cosmic tree)’의 변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三國遺事所傳의 新羅佛敎思想硏究(金煐泰, 信興出版社, 1979).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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