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사람의 한량(閑良)이 과거를 보려고 서울로 향하였다. 중도에서 그는 어떤 큰 부자가 어떤 대적(大賊)에게 딸을 잃어버리고 비탄(悲嘆)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딸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내 재산의 반과 딸을 주리라.' 하는 방(榜)을 팔도에 붙였다는 것이었다. 한량은 그 여자를 구하여 보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도적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방향도 없이 찾아다니던 중, 어느 날 그는 노중(路中)에서 세 사람의 초립동(草笠童)이를 만나서, 그들과 결의 형제(結義兄弟)를 하였다.
네 사람의 한량은 도적의 집을 찾으러 출발하였다. 도중에서 그들은 다리 부러진 한 마리의 까치를 만났다 그들은 까치의 다리를 헝겊으로 매어 주었다. 그 까치는 독수리에게 집과 알을 잃어버리고―독수리는 종종 까치의 집을 빼앗는 일이 있다―다리까지 부러진 것이었다.
까치는 무사들에게 향하여
"당신들은 아마 대적의 집을 찾으시겠지요. 여기서 저 쪽에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거기에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바위 밑에는 흰 조개 껍질이 있습니다. 그것을 들어내고 보면, 조개 껍질 밑에 바늘귀만한 구멍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이 바로 대적이 사는 곳입니다."
하였다.
그들은 까치와 작별하고 그 산을 넘고 바위를 발견하여 그 밑에 있는 흰 조개 껍질을 들어 보았다. 정말 거기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은 파 내려갈수록 커져, 그 밑바닥에는 넓은 별계가 보였다. 그러나 그 구멍은 매우 깊었으므로 쉽게 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은 풀과 칡을 구하여 길다란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일 나이 젊은 한량에게 먼저 내려가 보라고 하였다. 내려가는 도중에 무슨 위험이 있을 때에는 줄을 흔들기만 하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곧 그 줄을 끌어올리기로 약속하였다.
제일 젊은 한량은 조금 내려가다가 무서운 생각이 나서 줄을 흔들었다. 다음 사람은 반쯤 내려갔을 때에 줄을 흔들었다. 또 그 다음 사람은 삼분의 이 정도 내려가다가 무서워 줄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형되는 한량이 내려가게 되었다.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나이 어려서 안 되겠다. 내가 내려가서 도적을 죽이고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라. 그 때에도 줄을 흔들 터이니 너희들은 줄을 당겨 올려야 할 것이다."
그는 구멍이 끝나는 곳까지 내려갔다. 넓은 지하국에 훌륭한 집도 많이 있었다. 그는 대적의 집인 듯한, 그 나라에서는 가장 큰 집 옆에 있는 우물가에서 선 버드나무 위에 몸을 감추고 대적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예쁜 여자가 물을 긷고자 우물까지 왔다. 그 여자는 물동이에 가득 물을 길어 가지고 그것을 들려고 하였다.
그 때에 한량은 버들잎을 한줌 훑어서 물동이 위에 뿌렸다.
"아이고 몹쓸 바람이구나!"
하면서 여자는 길었던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길었다. 여자가 다시 물동이를 들려고 하였을 때에, 한량은 또다시 버들잎을 떨어뜨렸다.
"바람도 얄궂어라."
하면서 여자는 다시 물을 길었다. 세 번만에 여자는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면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들어왔습니까?"
한량은 그가 온 이유를 말하였다. 여자는 다시 놀라면서,
"당신이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러나 대적은 무서운 장수이므로 죽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나를 따라 오십시오."
하고 한량을 컴컴한 도장 속에 감추고 커다란 철판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한량 앞에 놓으면서,
"당신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이것을 들어 보십시오."
하였다. 그는 겨우 그 철판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는 도저히 대적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여자는 도적의 집에 있는 동삼수(童蔘水)를 매일 몇 병씩 가져다 주었다. 그는 그 동삼수를 날마다 먹었다. 그래서 필경은 대철퇴(大鐵槌) 둘을 양손에 쥐고 자유로이 사용하게 되었다. 어떤 날 여자는 큰칼을 가지고 와서,
"이것은 대적이 쓰는 것입니다. 대적은 지금 잠자는 중입니다. 그놈은 한번 자기 시작하면 석달 열흘씩 자고, 도적질을 시작하여도 석달 열흘 동안하며, 먹기는 석달 열흘 동안씩 먹습니다. 지금은 자기 시작 한 뒤로 꼭 열흘이 되었습니다. 이 칼로 그놈의 목을 베십시오."
하였다. 한량은 좋아라고 여자를 따라 대적의 침실로 들어갔다. 대적은 무서운 눈을 뜬 채 자고 있었다. 한량은 도적의 목을 힘껏 쳤다. 도적의 목은 끊어진 채 뛰어서 천장에 붙었다가 도로 목에 붙고자 하였다. 여자는 예비하여 두었던 매운 재를 끊어진 목의 절단부에 뿌렸다. 그러니까 목은 다시 붙지 못하고 대적은 마침내 죽어 버렸다.
한량과 여자는 대적의 창고를 검사하여 보았다. 한 곳간을 열어 보니 금은 보화(金銀寶貨)가 가득 쌓여 있었다. 또 한 곳간에는 쌀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한 곳간에는 소와 말이 차 있었다. 또 한 곳간에는 사람의 해골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두 대적에게 피살된 사람의 해골이었다.
또 한 곳간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반생 반사(半生半死)된 남녀가 가득 있었다. 한량과 여자는 급히 미음을 쑤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하여 주었다. 그리고 대적의 금은 보화와 쌀, 소, 말 등을 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량과 여자는 몸에 지닐 수 있는 한의 보화를 가지고, 또 여자와 마찬가지로 대적에게 잡혀 온 다른 세 사람의 예쁜 여자와 함께 내려왔던 구멍 밑에까지 왔다. 그래서 줄을 흔들었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의 초립동이 한량들은 형이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벌써 대적의 손에 죽은 것이라고 단념하고 돌아가자고 하였을 때에, 마침 줄이 흔들리므로 좋아라고 줄을 당겨 올렸다. 한량과 네 사람의 여자들도 일일이 끌어올렸다.
네 사람의 한량은 네 여인을 구해 가지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데려다 주었다. 여자의 양친들은 한없이 좋아하며 그들의 딸을 각각 한량들에게 주고, 그 위에 그들의 재산을 많이 나누어 주었다. 큰 부잣집 딸을 제일 형되는 한량이 얻은 것은 물론이다. 부자의 딸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적놈에게 붙들려 가던 그 날 밤부터 도적에게 몸을 바치라는 강요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에 병이 있다고 하고 속인 뒤에 가만히 나의 허벅다리의 살을 베어서 헐미를 내어 그것을 도적에게 보였습니다. 도적은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여러 가지 약을 써서, 나의 상처는 수일 내에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나을 때마다, 나는 다시 살을 베어서 헐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조를 지켜왔습니다. 이것을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상처를 내어 놓았다. 정말 큰 헐미가 있었다. 한량은 약속과 같이 처녀와 부잣집 재산의 반을 얻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손진태(孫晋泰)의 '한국 민족 설화의 연구(韓國民族說話의 硏究)'에서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연대 : 미상
구성 : 영웅 설화의 구조
갈래 : 설화
내용 : 지하국 대적에게 빼앗긴 부자의 딸을 찾아 준 한량의 이야기
제재 : 아귀 귀신의 퇴치
주제 : 선한 지상 세계와 악한 지하국의 대결에서의 지상 세계의 승리, 고난을 이긴 후에 얻게 되는 행복,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과업을 성취하는 이야기.
의의 : 이 민담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의 한 유형이고, 설화의 소설화 과정을 보여 준다.
출전 : 한국 민속 설화의 연구(손진태 채록)
내용 연구
구성
1. 한량이 대적에게 딸을 빼앗긴 부자를 만남
2. 한량들은 까치의 도움으로 대적의 소굴을 알아냄
3. 대적의 소굴로 내려가기로 함
4. 지하국에 들어가 딸을 만남
5. 대적의 칼로 한량이 대적의 목을 침
한량(閑良) : 직업이나 일이 없이 놀고 먹는 말단 양반 계층. 혹은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무사.
대적(大賊) : 큰 도적.
방(榜) : 널리 알리기 위하여 길거리 등에 써 붙이는 글.
초립동 : 초립(나이 어린 남자가 쓰던 누런 풀로 된 갓)을 쓴 나이 어린 사내.
별계 : 별세계.별천지.
결의 형제(結義兄弟) :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관계를 맺음.또는 그런 형제.
동정(動靜) : 어떤 행동이나 상황 등이 전개되거나 변화되어 가는 낌새나 상태.
도중에서 ~까치를 만났다. : 우리나라 설화에는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 동물들은 주로 '보은(報恩)'과 관계가 깊다. 이 작품에서의 까치 역시 인간에게 도움을 얻고 그 보답으로 보은을 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동삼 : 동자삼의 준말로 어린 아이의 모양같이 생긴 산삼.
제일 젊은 ~ 내려가게 되었다. : 주인공과 부수적인 인물의 능력에 차별이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러한 것은 결말에 이르러 받게 되는 복(福)에서 차이를 빚게 된다.
그 때에 한량은 버들잎을 한줌 훑어서 물동이 위에 뿌렸다. : 한량과 여자의 만남에서 한량의 존재를 알리는 수법으로, 여자를 놀라게 하지 않고 자기를 인식하도록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 행동이 세 번 반복되면서 이야기의 재미가 더해진다.
한량은 좋아라고 ~ 들어갔다. : 여자의 도움에 의해 힘을 얻게 된 형 한량이 대적을 죽이러 들어가는 대목. 두 사람이 힘을 합해 대적을 죽임으로써 두 사람이 혼인에 이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헐미 : '헌 데'의 방언. 살갗이 헐어서 상한 자리.
이해와 감상
지하국대적퇴치설화의 줄거리는 기타 여러 소설에서 나온다. 이 설화와 같은 내용은 '김원전(金圓傳)', '최치원전', '홍길동전', '금령전'같은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공이 도적을 물리치고 여인을 구하고 같이 결혼한다는 줄거리는 같고, 덧붙여지는 이야기만 약간씩 다를 뿐이다. '최치원전'과 '홍길동전'은 이 설화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것이고, 나머지는 이 설화를 소설화한 것이다.
우리의 민담에는 지하국에 관한 것이 많다. 대개 대적(大賊)이 지상의 여인이나 보물을 약탈하여 지하국에 숨겨 놓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지하의 대적을 퇴치하고 여인이나 보물을 빼앗아 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고전 소설과 관련이 깊다. '김원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확대시켜 놓았다고 할 만하고, '최고운전'과 '홍길동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설화의 소설화 과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이 작품은 민담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모티프의 측면을 보면, 우리의 민담에는 지상과 대립되는 지하국이 나타나는 것이 많다. 지하국의 대적(大賊)이 지상의 중요한 것을 약탈하여 지하국에 숨겨 놓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지하의 대적을 퇴치하고 그것을 되찾아 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기본 모티프에 충실한 작품이다.
한편, 흥미성의 추구라는 측면에서도 보편성을 보여 준다. 이 민담은 신화나 설화의 신성성과 진실성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 위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신화와 전설 속의 신이(神異)한 인물에 비해 보통의 능력을 지닌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혼인이라는 행복한 상황에 이르는 희극적이고 낙천적인 결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소박한 삶의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심화 자료
민담의 공간
민담은 신화, 전설과 더불어 설화의 하위갈래로서, 신성성이나 진실성보다 흥미를 본위로 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은 비현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곧 뚜렷한 장소와 시간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보통 '옛날 옛적 어느 곳에.......' 라고 하는데 '옛날'은 서사적인 과거일 뿐이고, '어느 곳'은 막연한 장소의 제시로서 화자와 청자의 직접적인 경험과는 무관한 세계의 공간일 뿐이다.
전설은 구체적인 증거물을 필요로 하므로 가장 현실적인 공간을 설정하며, 신화는 전설보다 덜 실제적이지만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민담은 그 실제성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지하국'이라든지, 지상국이라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흥미를 끌기에 적합한 장소를 선택하게 된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의 유형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 는 고전 소설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설화가 소설의 앞선 문학 양식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의 줄거리는 기타 여러 고전소설에서 비슷한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김원전(金圓傳)', '최치원전','홍길동전','금령전' 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주인공이 도적을 물리치고 여인을 구하여 같이 결혼한다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같고 덧붙여지는 이야기만 약간씩 다를 뿐이다. '김원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확대 시켜 놓았다고 할 만하고, '최치원전'과 '홍길동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부분적으로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설화가 소설의 형태를 갖추기 위한 단계적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