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에 한 노승이 있어 일찍이 고창현 사람들의 연등회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한다. 그 때, 어느 한 소년이 보통 사람과는 달라, 아무도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른다고 했다. 모임이 끝나자 노승은 소년의 뒤를 따라가 산기슭에 이르렀는데, 소년은 자기집은 누추하여 사람을 재울 수가 없다고 노승을 물리쳤다.
- 노승이 연등회에서 소년을 만남(발단)
그러나 노승의 사정에 못 이긴 소년은 하는 수 없이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마중 나왔던 할미가 말하기를, "만약 너의 두 형이 보면 법사(法師)는 그 밥이 되고 말 것이 아니냐?"고 꾸중하였다. 노승은 이것이 호랑이 굴인 것을 알았으나, 이미 도망갈 수는 없었다. 호랑이 형제가 오래 머무를 수 없도록 그들을 다시 내보내며 더 많은 먹이를 구해 오라고 하였다.
- 노승은 호랑이 굴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머물게 됨(전개)
이들 형제가 나간 뒤에 밖으로부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댁의 소년이 마을 사이에서 흥청대며 놀았기 때문에, 절의 주지(住持)가 우리 속의 함정(陷穽)에 빠져 죽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년은 자신이 이 명령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임을 말하고, 노승에게 짧은 창을 가지고 나와 혼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다음 날 고을에 이른 노승은 소년의 말대로 자신이 우리 속의 호랑이를 죽일 수 있다 하며 짧은 창을 가지고 나갔다. 호랑이가 조용히 말하기를 자신은 죽어서 남자로 환생하여 10여 세가 되면 다시 찾아 뵙게다고 하고, 스스로 노승의 창 끝에 찔러 죽어 넘어졌다.
-소년이 스스로 자결함(절정)
15년이 지난 뒤에 노승은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나, 그 소원대로 삭발하여 중이 되게 하였다. 소년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는데, 후에 들으니 일엄사에 법력(法力)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키는 스님이 나타났다고 했다.
- 소년이 일엄사에서 스님으로 다시 나타남.(결말)
(보한집)
요점 정리
연대 : 고려시대
작자 : 최자
갈래 : 문헌 설화
문체 : 산문체
구성 : 4단 구성(발단-전개-절정-결말)
성격 : 전기적, 교훈적
주제 : 착한 호랑이의 환생, 호승의 법력
내용 : 변산 노승이 소년으로 둔갑한 호랑이의 소원을 들어주자, 호랑이는 스님으로 환생하여 법력으로 사람을 감복시켰다.
제재 : 호랑이와 승려
의의 : '수이전'에 나오는 '호원'과 같은 신라 설화의 계열로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불교 교화를 목적으로 한 설화로서 '보한집'에 나오는 문헌설화이다.
내용 연구
노승 : 나이가 많은 중
현 : 옛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연등회 : 불교 의식 또는 민속행사의 하나로 불을 켜고 복을 빌며 노는 놀이
참관 : 어떤 곳에 나아가서 봄
누추 : 지저분하고 더러움
할미 : 할머니나 할멈을 하대하는 속어
법사 : 절에서 설법하는 중, 도가 통한 중
함정 : 짐승을 잡기 위하여 파 놓은 구덩이
애원 : 통사정하여 간절히 바람
환생하여 : 되살아나서, 불교의 윤회사상을 나타냄
법력 : 불교 용어로 불법의 위력을 일컫는 말.
절의 주지가 우리 속의 함정에 빠져 죽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 불교의 법력을 나타낸 것이다. 종교의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이해와 감상
고려 무신 집정 시대, 최자의 '보한집'에 나오는 문헌 설화의 하나로, 설화집 '수이전'에 수록된 '호원'과 궤를 같이 하는 설화로, 환생설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대 설화의 전형적인 전기적 수법을 그대로 따랐다.
호원사설화는 호랑이의 화신인 여자가 연인의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하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또한, 이 '호승'에서도 호형들의 악을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음을 자청한 소년은 노승의 손에 의하여 죽었다가 다시 환생하게 된다. 이들 결말은 상당히 비극적이지만, 그것은 종교적,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왔다. 그리고 최자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서 끝에다 다음과 같이 소견을 밝혔다. " 이 이야기는 아주 괴탄한 것이다. 세상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이야기로서 범이 중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일엄사의 중이 그랬었다고 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라고.
심화 자료
보한집
고려 후기에 최자(崔滋)가 엮은 시화집(詩話集). 3권 1책. 목판본. 초간본은 최자가 서문을 쓴 1254년(고종 41)경에 간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전해지는 것이 없다. ≪성종실록≫의 기록에 이극돈(李克墩)·이종준(李宗準) 등이 다른 시화류와 함께 간행한 사실이 나와 있다. 이 책도 전하는 것이 없다.
다음으로 1659년(효종 10)에 엄정구(嚴鼎耉)가 간행한 각본(刻本)이 있고, 활판본으로는 1911년에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파한집 破閑集≫ 등과 합철하여 낸 것이 있다. 그 뒤에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보한집≫은 본래 이인로(李仁老)가 엮은 ≪파한집≫을 보충하는 입장에서 저술한 것이다. 그래서 ‘속파한집’이라고도 하였다.
최자는 자서(自序)에서 이인로가 고금의 여러 명현의 좋은 문장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파한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실권자인 최이(崔怡)가 ≪파한집≫이 너무 소략하니 보완하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서 산일된 나머지의 그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편집경위를 밝히고 있다. 최이의 속보(續補)지시는 당시의 문인·문학 우대책의 일환에서 나온 것이다. ≪보한집≫은 양에서 ≪파한집≫의 배가 되고 내용도 더 다채롭다.
권상에는 고려 태조의 문장을 비롯한 역대의 명신들의 언행과 누정(樓亭)·역원(驛院)을 소재로 한 시 등 52화(話), 권중에는 이인로·이규보 등의 선배 문인들의 일화와 시문평 46화, 권 하에는 21품(品)에 걸친 모범적 시구의 예시와 함께 자신의 시문론과 승려·기생의 작품 등 49화가 수록되어 있다.
≪보한집≫은 다른 어느 시화문헌에서보다도 문학론이 풍요하다. 당시 고려의 한시단(漢詩壇)은 소식(蘇軾)을 배우려는 기풍이 지배적이다. 작시법에 있어서는 어묘(語妙)를 중시한 이인로 계열과 신의(新意)를 보다 중시한 이규보(李奎報)계열의 주장이 있었다.
≪보한집≫에서는 그 같은 대립적 경향 중에서 사어(辭語)·성률(聲律)의 표현미에 치중한 이인로 쪽보다는 기골(氣骨)과 의경(意境)을 더욱 중시한 이규보 쪽의 입장을 지지, 옹호하고 그의 이론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시문은 기(氣)를 주로 삼는데 기는 성(性)에서 나오고 의(意)는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오니 정이 곧 의이다’라고 하여 이규보의 기론을 발전시켜 의(意)를 정(情)으로 풀이하였다.
≪보한집≫의 문장은 도(道)의 입문이므로 도에 어긋나는 말은 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의 기(氣)를 살리고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다소 도에 어긋나는 험하고 이상한 표현도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였다. 문장은 기(氣)·골(骨)·의(意)·사 (辭)·체(體) 등의 여러 가지 요소를 구비하였을 때에 훌륭한 문장이 되며 그렇지 못하면 문장의 병폐가 된다고 하였다.
≪보한집≫은 시의 품평 기준을 상(上)·차(次)·병(病) 3등급으로 설정하였다. 상에는 신기(新奇 : 새롭고 기이함.)를 비롯한 10품, 하에는 생졸(生拙 : 설고 서○.) 등 8품으로 34품을 예시하였다.
이와 같이 품격의 우열을 셋으로 구분하여 기상(氣象)이 잘 나타난 작품을 상품으로 평하고, 사어와 성률의 수사기교가 우수한 시를 버금으로 하고, 그 어느 쪽도 갖추지 못하여 거친 것을 병들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제시는 당나라 종영(鍾嶸)의 시 3품이나 사공도(司空圖)의 24품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비평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보한집≫의 전권에 나타난 평어를 검토하여 보면 ‘청(淸)’자 계열(예 : 淸新, 淸婉, 淸舜 등)이 상품의 평어로 가장 많이 쓰였다. 다음으로 ‘정(精)’자 계열, ‘호(豪)’자 계열이 많다.
기(奇)·장(壯)·화(華)·준(俊)·신(新)·경(警)·고(高)·화(和)·유(幽)·우(優)·주(楔)·간(簡)·경(勁)·굉(宏)·웅(雄)·표(飄)·완(婉)·부(富)·원(圓)·호(浩)·심(深)자 계열도 우수한 시를 일컫는 평어로 쓰이고 있다.
≪보한집≫의 병품(病品)은 생(生)·소(疏)·야(野)·졸(拙)·천(淺)·잡(雜)·비(鄙)·미(靡)자 등의 계열을 들고 있다. ≪보한집≫에서는 병품 중에서도 용졸한 것을 가장 낮게 보았다. 그래서 이르기를 용렬한 말과 옹졸한 글귀는 얕고 쉬워 말할 것조차 못된다고 단언하였다.
≪보한집≫에서는 시와 그림 양자가 일치한다는 관점을 보였다.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와 그림은 한가지이다. 상외(象外:속된 것에서 초연한 상태)의 세계까지 포착하는 점에서도 양자는 같다고 하였다.
≪보한집≫은 시론이나 시평 외에도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각 문체(文體)의 발달과정과 특징 등을 설명하고 변려문(騈儷文)의 병폐에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시와 문을 나누어 기술하고 시대 순으로 서술하여 약하나마 문학사 기술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최자는 자기 나름의 시문관과 비평관을 가지고 비평기준과 시품(詩品)을 제시하는 한편, 그에 입각하여 비평을 전개하였다. 그럼으로써 고려시대의 비평문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다만 ≪보한집≫이 ≪파한집≫의 속보(續補)를 표방했지만, 이인로보다도 이규보에게 너무 치우친 평가를 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흠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최자가 이규보의 후광에 크게 힘입어 출세한 것과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麗朝詩學硏究(全鎣大, 서울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4), 韓國古典詩品硏究(李圭虎, 서울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9), 崔滋의 評論硏究(金周漢, 高麗時代의 言語와 文學, 螢雪出版社, 1975), 崔滋의 詩評(車柱環, 東亞文化 9, 1970), 補閑集, 編纂動機에 대하여(申用浩, 圓光漢文學 2, 1985), 崔滋論(朴性奎, 韓國文學作家論 2, 螢雪出版社, 1986), 崔滋의 補閑集 著述動機(金塘澤, 震檀學報 65, 1988), 高麗中期文學論硏究(沈浩澤, 高麗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9).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