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를 소
재로 한 설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설화의 성격은 세 가지로 나뉘며 때로는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바로 홍수신화·홍수전설·홍수민담이다.
홍수에 관한 전세계적인 보편적인 이미지는 ≪구약성경≫ 창세기 6∼9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Noah Flood)이다. 물론 홍수는 전세계에 걸쳐 고금에 있었고, 이에 관한 설화도 많다.
홍수설화는 인문현상의 설화로, 홍수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사연을 남기는가 하는 내용이기는 하나, 홍수가 실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고찰하는 종교학·고고학·지리학·지질학 등 여러 연구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지리학에서도 홍수에 관한 민간의 수용심리(受容心理, perception) 제반을 연구하는 일, 곧 인간의 생활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기능을 고찰하는 등의 심리지리학(心理地理學)이 있으므로 간단히 홍수와 홍수설화를 분리하여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홍수가 인문과학인 설화학과 종교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이유는 지리학적인 자연현상인 ‘큰물’에 ‘홍수에서 살아난’ 사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 산 사람은 어떻게 살 방도를 마련했는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 뒤 사람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인류는 어떻게 존속되었는가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홍수는 ‘누가 왜 일어나게 했는가?’라는 문제를 풀 때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서의 큰물에 주목하면 ‘왜’를 우선하고, 설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누가’라는 인간적인 대상을 먼저 고려한다.
설화는 홍수를 일으킨 것이 무서운 자연 현상인가, 무서운 신인가로 나눌 때, 무서운 신이 왜 홍수를 내렸는가를 규명한다. 이 때 신은 인간처럼 희로애락의 감정과 선악상벌의 도덕이 있어야 하므로 인격적인 신성을 가진다.
홍수는 인간의 자업자득이므로 인간은 반성하고 후에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교육을 하여 신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는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징벌하는 신과 윤리에 매인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남은 소수의 선택된 선한 인간이 신의 뜻에 합당한 문명을 창조하며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부여하고 있다.
홍수설화의 생존자에게는 먹고자 하는 욕구인 식욕과 인류를 존속시키는 성(性)과 혼인을 뜻하는 성욕, 그리고 문명을 계속할 도구의 소지(所持) 등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생존자 중 여자는 성숙한 가임여성(可姙女性)이어야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인 남자는 대부분 한가족 내에서 등장하므로 근친혼의 윤리 문제가 등장한다. 이러한 여러 면에서 홍수설화는 인류의 거의 모든 제반 문제를 포괄하는 중요한 성격을 가진다.
한국의 홍수설화도 위와 같은 세계적인 광포성(廣布性)과 한국적인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런데 그 동안 한국의 홍수설화는 세계에 소개된 바가 없다. 한국의 홍수에 관한 지명전설은 다른 전설보다 월등히 많아 한반도에 700곳이 있을 정도이다.
홍수설화에는 장자못전설과 광포전설(廣浦傳說)이 있다. 신불(神佛)이 등장하여 악인을 징벌하는 국지적(局地的)인 함몰(陷沒) 내용이 있으며, 고리봉전설〔環峰傳說〕과 남매혼전설(男妹婚傳說)은 신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징벌의 성격이 없고, 전국적 또는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침수 내용이다.
우리 나라의 홍수설화에서는 신이 등장하면 홍수의 결과가 더 가혹하게 되고, 신이 없으면 인종이 퍼지고 다시 평화가 돌아온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에서는 신이 나타나지 않고, 부분적인 지역홍수에서는 신(우리 나라에서는 佛)이 있다는 것은 원래 한국인의 홍수 의식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홍수설화의 세계적인 분포는 15가지의 순차(順次)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의 타락,
② 신의 진노,
③ 구원받은 가족,
④ 살 방도와 배 마련,
⑤ 식량 준비,
⑥ 물로 징벌,
⑦ 물로 세상 파멸,
⑧ 인간 시조의 구원,
⑨ 동물 시조의 구원,
⑩ 산 위에 착륙,
⑪ 새를 내보냄,
⑫ 예배 드림,
⑬ 신의 축복,
⑭ 인간 존속 방법의 등장,
⑮ 조개가 나타난다거나, 신앙이나 풍습이나 어떤 개념이 생겼다든가 함몰이 된 자국이 있다는 등의 홍수의 증거 등이다.
우리 나라의 홍수설화계(洪水說話系)인 고리봉전설·남매혼전설·행주형전설(行舟形傳說)·광포전설과 장자못전설 등을 종합해 보면 ‘⑫ 예배 드림’과 ‘⑬ 신의 축복’이 없다.
이 점에서 우리의 홍수전설은 신과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하겠다. ⑫와 ⑬은 없고 ⑨도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⑤와 ⑦은 간접적으로 암시를 하는 정도이다.
홍수설화의 변이 양상은 다음과 같다.
① 고리봉전설: ‘천지가 개벽할 때, 또는 대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에 다 잠길 때 이 산꼭대기에 배를 매었다.’는 산정(山頂)만 남은 침수 모티프로서 완전 침수가 아닌 한국적인 홍수의 특징을 보여 준다.
여러 방면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통계로는 한국에 780개 증거가 있다. 고리봉전설이 얽힌 산의 크기와 높이에 관계없이 산봉우리만 조금 남았으므로 소수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홍수의 증거나 변이를 들면 얼마만큼 남았느냐에 따라 산꼭대기에 새 한 마리만큼 남았다든가, 개나 고양이만큼, 삿갓·말〔斗〕·되〔升〕·북·석기·바가지·시루만큼 남았다고 한다.
또는 배를 꼭대기에 매었거나 배가 산정 사이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침수의 증거로 조개 껍질이 나오고 흙을 파면 바다 흙이 나온다고 하며, 피난한 사람은 주민·형제·여자 등이다.
② 행주형전설: 어느 고장이 풍수지리설상 배 모양〔舟形局〕이 된 것인데, 개인의 집이나 묘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청주·공주·대구·전주 같은 큰 도시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작은 고을 등에 많다.
청주는 예로부터 별명이 주성(舟城)으로 분지형 고을인데, 이 고을 사람은 홍수가 나면 배가 있어야 산다는 생존 의식을 지니고 삶의 배(救命船)에 살고 있는 셈이다.
어떤 죽음을 부르는 홍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나무나 당주를 돛대로 삼고(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계리 갱두들), 우물을 깊이 파지 않는다.
그리고 배, 곧 그 고을이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도록 고정시킬 배 매는 고리봉, 물길을 막을 조산(造山) 등이 있어야 하고(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배가 재물을 실어야 하며(경주시는 그래서 왕릉과 봉황대를 모았다), 객지에 나가는 사람은 잘 살지 못한다는 속신도 있다.
이전 동네 어귀에 오리를 꼭대기에 만들어둔 솟대(진대, 짐대)를 세운 것도 홍수의 돛대라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오리는 노아 홍수의 여러 새처럼 농업을 존속시킬 씨앗을 뱃속에 두는 유비무환의 농업신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③ 홍수남매혼전설: 대홍수에 산상(山上, 고리봉)에서 살아난 소수의 인간은 불행하게도 미혼의 남매였으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문의 후손을 두기 위해, 또는 널리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혼인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상피(相避)라 하여 대기(大忌)하는 남매혼이 성립하기 위하여 하늘의 허락 여부를 알아보는 시험을 한다.
㉠ 남매가 각기 다른 산상에서 청솔가지로 연기를 피웠을 때 공중에서 합치는가?
㉡ 양쪽 산상에서 암수 맷돌을 각기 기슭에 굴렸을 때 합치는가?
㉢ 또는 암수 맷돌을 합쳐서 굴릴 때 끝까지 합쳐 있는가?
㉣ 남매가 물을 담은 한 접시에 각기 손목의 피를 떨어뜨렸을 때 하나로 섞여 핏방울로 엉키는가?
이러한 시험을 한 결과 다 이루어져서 남매혼을 하고 자손을 둔다. 이 천의시험(天意試驗)은 종족 본능과 성 윤리(곧 근친상간 문제) 중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는 극한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이 때 하늘〔天神〕은 인격적이며 어디까지나 인간을 돕는 협조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홍수는 신의 징벌이 아니라 자연의 재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④ 전란남매혼전설(戰亂男妹婚傳說): 홍수 대신 임진왜란 같은 전란으로 인류나 어느 가문이 전멸할 위기에 다다랐을 때 산중으로 피난한 남매가 부득이 천의(天意)를 시험한 후 혼인을 하고 자손을 두는 내용이다. 이는 홍수 대신 전란이 들어간 점, 인류의 위기 대신 가문의 위기라는 점, 재난을 당한 지역이 국지적(局地的)이라는 점이 특징이나 홍수전설의 변이이다.
위에서 연기나 불은 문명을 존속시킬 인간의 능력과 발화기구(發火器具)를 생존자가 소유하고 있음을 뜻한다. 불은 곧 문명과 문화를 상징하며 또한 음식을 익힌다는 점에서 식용의 의미도 지닌다.
암수 맷돌은 우리 나라 전설과 판소리(‘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어르는 대목), 그리고 민요에서 보듯이 남녀의 성(性)과 그 결합을 뜻한다. 피 섞기는 부부일신이 되는 것과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고뇌를 뜻한다고 하겠다. 곧, 윤리와 상황에서 갈등을 하는 생존자 남매의 모습이 드러난다.
⑤ 해일남매전설(海溢男妹傳說): 이는 인간의 위기가 홍수 대신 마찬가지로 물로 인한 재난인 해일로 치환 (置換)한 것이다.
⑥ 달래고개전설 : 홍수남매혼전설의 핵심 화소인 홍수와 성이 후대로 내려와 소나기와 남매간의 정욕으로 축소되면서 남매끼리의 혼인을 하늘이 허락하는 관용이 사라지고, 남매끼리의 정욕은 큰 죄라는 사회적인 윤리가 엄격해져 남자가 자살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다. 이는 ‘달래고개’ 전설 또는 ‘달래나보지’ 이야기인데 전국적으로 10여 곳에 분포한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묘족(苗族)에게도 홍수에서 살아난 남매가 남매혼을 하는 전설이 있는데, 윈난성의 이족(紛族) 중 일부 부족의 전설에는 먼저 남매의 근친상간이 있었고 이를 안 하늘이 진노하여 대청소를 하려고 대홍수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는 홍수와 성의 위치와 시간이 바뀐 것으로, 홍수와 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아 홍수 전설에서는 사전에 암수 한 쌍씩을 짝지어 구원하는 신의 배려로 이러한 문제가 미연에 해결되었다.
⑦ 목도령전설: 큰 홍수가 났을 때 참나무를 아버지라고 부르던 목도령이 아버지나무를 타고 안전하게 떠내려가다 땅위동물(개미와 뱀)과 공중동물(모기)과 산중동물(여우)과 인간을 구해 주었는데, 후에 인간만이 은혜를 저버려 ‘머리 검은 짐승(인간)은 구해 주지 말라.’는 속담이 생겼다.
⑧ 한나루〔漢津〕의 이토정(李土亭)전설: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한진바다가 터질 때 현감 이지함(李之旅)이 주민을 피난시켰는데 그보다 유능한 이인(異人) 소금장수·지게꾼·옹기장수가 나타나 이토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부분 홍수나 해일의 상황이 등장하면서 이런 재난시에는 백성의 처지에서 겸허하고 진지하게 민치(民治)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⑨ 장자못전설과 광포전설: 동냥 온 중을 쇠똥으로 박대했다가 물로 징벌을 받았다든가(장자못전설), 부처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면 주민은 도망을 가라는 도승의 충고를 무시하고 도리어 물감으로 부처의 눈을 붉게 하여 홍수나 해일을 자초, 그 동네가 사라져 버렸다(함경남도 원산 아래 지방 廣浦 이야기)는 전설이다.
이는 홍수를 일으킬 신이나 부처를 무시한 인간이 받는 죄와 벌을 내용으로 한다. 비도덕적인 인간에게는 홍수라는 벌이 내린다는 윤리적 성격이 강한 이야기로, 이는 노아 홍수를 지구 세례(Gloval Baptism)로 보는 일부 기독교 신학자의 홍수관과 상통한다.
이상과 같이 한국 홍수설화는 죄와 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 극한상황에서 본능을 해결하는 문제, 하늘의 성격, 홍수에 대한 인식과 수용 태도, 1%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는 인간의 지혜 등에서 세계 홍수설화와 비교할 때 보편성과 특수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한국지명총람-전북편-(한글학회, 1981), 韓國口碑傳說의 硏究(崔來沃, 一潮閣, 1981), 韓國洪水說話의 變異樣相(崔來沃, 韓國民俗學 12, 民俗學會, 1980), Folklore in the Old Testament(Frazer, J.G., Hart Publishing Company Inc., 1975), Standard Dictionary of Folklore, Mythology and Legend(Leach, M. ed. ,Funk & Wagnalls, New York, 1972), The Flood Reconsidered(Frederick, A., Zondervan Publishing House, Grand Rapids Michigan, 1974).
자료출처: http://www.seelot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