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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보고, 종가의 천년음식 세상 밖에 나서다
15-07-05 18:01

한식의 보고(寶庫) 종가음식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영남의 재령이씨 종가에 전해오는 최초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대표음식 시식회가 지난 3월 25일 서울 한국의집에서 열려 참석했다. 340년간 종가와 그 문중에서만 먹던 음식이 단순한 집안 음식을 넘어 이제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근세 격동의 세월 100여 년간 서양음식에 밀려 사라질 뻔 한 소중한 종가의 음식문화가 세계 식품시장에서 어깨를 겨루며 한류가 된다는 건 희망적이다. 종가는 조선시대 나라를 경영했던 지도자들의 후손이 사는 곳이라 음식의 맛과 품격뿐 아니라 문화적 콘텐츠가 무한히 축적돼 있어 그 가치는 앞으로 더욱 크게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디미방』
세계기록문화유산’ 종가의 요리서
종가음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 음식의 정체성을 입증하는 가문의 요리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서로 알려진 경북 안동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서 전해오는 500여 년 된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에는 121가지 항목이 있다. 술 빚기, 장 담그기, 김치 담는 법, 다식 찍는 법 등을 비롯해 지금 식탁에 오르는 탕도 있다. 이 음식은 문중부인들의 손길로 부활돼 종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340년 전 70세가 넘은 종부의 붓끝으로 쓰인 『음식디미방』의 146가지 음식은 현재 가장 ‘핫’ 하게 뜨고 있다. 이 책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충남 대전에 있는 은진송씨 문정공파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종가에는 300여 년이 넘은 『덕은가승(德恩家乘)』이란 고서가 전하는데, 350가지 희귀한 음식이 오른 다담상을 230상이나 차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약과, 두제탕, 세면, 해삼증, 생복, 어만두, 잡채, 세실과, 개자, 혜수, 저육장방, 난숙, 과제탕 등 음식 이름도 자세히 남아 있다. 당시 사대부가의 접빈대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놀랍다. 또 『우음제방(禹飮諸方)』이란 책에 기록된 송순주(松荀酒)를 대물림받은 종부는 무형문화재가 됐다. 종가음식은 수백 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한 가문의 역사와 가족들의 입맛이 스며 있어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음식이기도 하다.

밀양손씨 인묵재 종가의 7첩 반상
종가음식, 종가 대청에서 맛보다
조선 500년과 근세 100여 년간 잠자던 종가음식은 종갓집 열두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종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불편한 한옥 내부를 고치고 화장실과 보일러도 현대식으로 바꿨다. 잃어버린 고가구를 다시 갖추어 실내 장식도 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종손 종부는 권위적인 모습이 아닌 상냥한 웃음으로 서비스에 온 힘을 다한다. 자연이 키운 텃밭에서 수확한 신선한 재료로 건강 밥상을 차려 오방색 고명으로 예의를 갖추었다. 한지로 테이블보를 만들어 한국적인 멋을 보여준다. 종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웃 농가도 살릴 수 있어 귀농인구도 늘어날 것이며 따라서 일자리 창출로 산업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입소문 나기 시작하면서 종가 체험을 원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인터넷 구축도 잘돼 있어 가고 싶은 종가를 선택하면 손가락 하나로 예약이 가능하다. 마음 정하기 따라 기둥마다 주옥같은 글귀가 새겨진 고대광실 사랑채에서 7첩 반상을 받을 수도 있고, 퇴계의 태실 등 위대한 인물이 탄생했다는 방에서 잠을 잘 수도 있는 세상이다.

1999년 6월 요리잡지에 종가음식문화를 연재하기 위해 찾았던 답사의 현장은 냉혹했다. 하지만 변변한 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현대 문명에 떠밀려 사라져가는 뿌리 깊은 우리 문화가 아쉬워 나선 걸음이니 멈출 수 없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문화를 생활 속에 실천했고,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징검다리 우리 세대가 아니면 천년의 생활문화를 깊숙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통의 생활문화를 이어온 노(老)종부들이 세상 떠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10회나 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아 자료 찾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종가의 솟을대문이 굳게 닫혀 그 빗장을 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종가와 연이 닿는 분들을 수소문해 다리를 놓아 달라 응원을 청하고 종손, 종부를 설득하기 위해 하루 왕복 12시간을 달려 한 달에 두 번은 기본이고 세 번씩 걸음을 했다. 무엇보다 음식 취재는 거의 불가능했다. 노종부들의 불편한 거동도 문제였지만 경제력도 넉넉하지 않아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선비 집에서 무슨 음식 타령인가, 3첩 반상이면 족한 것을”이라며 발길을 돌리게 했던 종가도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를 털어 재료를 준비해 가는 성의에 감동한 그들은 가문의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16년간 142집에서 400여 가지 종가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이는 종부들의 인간적인 배려가 아니면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경남 고성 전주최씨 종가에서 만든 오가피 약차와 홍화씨차예와 맛, 멋과 배려가 있는 종가음식
한 곳에서 수백 년 살며 고택과 선대의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배려와 섬김을 실천했던 종가 사람들의 윤리적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격식을 갖춰 조상께 제례음식을 올리고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나누면서 집안과 마을 공동체의 화합을 이끌었다. 일상식은 3첩 반상을 넘지 않았지만 사람이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가치를 더해주는 통과의례 음식과 종가를 찾는 접빈객 상차림은 종부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라도 잘 차리려고 애썼다. 사실 종가의 잔칫날은 종가 사람들보다 어려운 이웃들이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손꼽아 기다렸다.

의례음식은 첫 생일을 축하하는 돌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돌상은 떡상이라 하리만치 갖가지 떡을 올린다. 떡은 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웃과 나누면서 떡 문화 발전에 기여를 했다. 관례상차림은 성인된 이를 축하하기 위해 품위를 갖추었다. 우리 음식의 백미는 혼례음식이다. 극진한 예를 갖춘 이바지음식, 높게 쌓아올린 큰손님상, 시어머니가 신부에게 내리는 큰상, 장모가 사위에게 내리는 큰상, 손님 접대상 등 양가에 오가는 화려한 음식은 우리 음식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식들의 효심을 담은 수연상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방문할 때 기념으로 차려 드려 뉴스를 타고 세계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졌다. 종가음식에는 극진한 예를 갖춰 조상을 섬기고 어른을 받들고 이웃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의례마다 절제된 규범(規範)과 용기(用器), 관념(觀念)문화가 함축되어 있는 종합문화라 할 수 있다.
 
사진1. 서애 류성룡 종가 추석차례상, 사진2.의성김씨 지촌 김방걸 종가 돌상

- 글 이연자 (사단법인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종가문화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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