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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장록 』 이야기 Ⅱ 하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보살펴라
15-07-05 23:00

『갱장록』은 『용비어천가』,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문헌비고』 같은 책에서 조선 국왕의 모범적 사례를 뽑은 것이다. 『갱장록』의 각 기사 끝에는 인용한 서적이 밝혀져 있다. 지난번의 ‘창업(創業)’ 편에서는 태조의 4대 선조와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4대 선조의 행적은 『용비어천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태조의 행적은 주로 『국조보감』을 인용했다. 이번에는 『갱장록』의 둘째 편인 ‘경천(敬天)’ 편을 다룬다.

‘경천’이란 하늘을 공경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늘을 공경하려면 하늘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 하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늘의 뜻을 실천해야 공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천 편에는 조선의 국왕들이 천문을 관측하여 하늘의 이치를 파악하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던 해에 서운관에 명령하여 천문도(天文圖)를 돌에 새겨 중성(中星)을 정하게 했다. 그는 고려의 후손이 끊어지고 하늘이 자신에게 나라를 세우게 한 것은 백성들 때문이므로, 국왕과 신하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하늘은 반드시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대에는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가 크게 늘어났다. 세종은 정인지 등에게 간의(簡儀)를 만들게하여 한양의 북극고도가 38도임을 알았다. 세종은 경복궁 천추전 옆에 흠경각(欽敬閣)을 세우고 물시계의 일종인 옥루기륜(玉漏機輪)을 설치했다. 옥루기륜은 종이로 만든 산 아래에 설치되어 시각에 따라 12신, 북치는 사람, 종치는 사람, 사신(司辰), 옥녀(玉女)가 나타나고, 산의 사방에 사
람, 새, 짐승, 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백성들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표현했다. 세종은 구리로 만든 측우기를 서운관에 설치하고 주척(周尺)으로 강우량을 측정하고, 지방에도 측우기와 주척을 배포하여 강우량을 보고하게 했다.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는 이후에도 계속 제작되었다. 명종은 종묘 입구에 있던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수리하고, 창경궁 보루각의 부귀(浮龜)를 새로 주조하게 하였다. 보루각의 부귀는 자격루의 부품이었다. 영조는 혼천의를 수리하여 경희궁에 규정각(揆政閣)에 보관하게 했다. 영조는 측우기를 제작하여 두 궁궐과 서운관에 설치하고 팔도와 양도(개성, 강화)에 나눠주게 하였다.
세종 대의 고사를 따른 것이다.

휴대용 앙부일구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그 이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왕은 항상 근신하며 하늘의 뜻을 파악하고, 재이(災異)가 나타나면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했다.

세조는 토지를 측량하는 인지의(印地儀)를 만들고 그 노래도 지었다. 세조가 사정전에 나가 자신의 시를 내보였다. “천지는 사계절을 운행하고 제왕은 음양에 참여한다. 천지를 본받지 않은 것이 없으니 정치하는 도리가 어찌 다르겠는가?” 세조는 지방 수령에게도 비슷한 명령을 내렸다. 국왕과 신하는 모두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날마다 근신하며 하늘의 마음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조에게 정치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일이었다.

성종 때 혜성이 나타나자 성균관에서 이를 물리치는 초제(醮祭)를 지내자고 했다. 성종은 혜성을 물리치는 것은 덕을 닦는 데 달려있다며 거절했다. 이이는 선조에게 재이에 대해 말하였다.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나쁜 이에게 화를 주는 이치가 있을 뿐 크게 무도한 세상에 재앙이 없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효종 때 강릉 지방에 한여름인데도 눈이 내렸다. 강원관찰사 민광훈이 이를 보고하지 않자 국왕이 노하여 그를 쫓아냈다. 효종이 경연에서 말하였다. “중인(中人)의 본성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마음을 움직이고 참아서 할 수 없던 일을 해내게 된다. 국왕도 재이를 만나면 오늘 한 가지 일을 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하여 차츰차츰 나아간다면 하늘의 경고에 답할 수 있다.”
경천 편의 마지막은 국왕이 하늘의 경고를 두려워하고 근신하는 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천원옥력』및 옥루기륜의 복원 상상도

현종은 기우제 때 직접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궁안에서 재계하며 밤새 뜰에 서서 기도하다가 제사가 끝나면 편안해 하였다. 숙종도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비나 눈이 때에 어긋나거나 바람과 해가 조화롭지 않으면 염려하였고, 주변 사람에게 해가 맑은지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부는지를 몇 번이고 물었다. 숙종은 『천원옥력(天元玉曆)』의 서문에서 말하였다. “국왕의 자리
에서 하늘을 섬기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국왕이 항상 하늘을 생각하고 높여 상제(上帝)께서 와 계신 듯이 하면 음양은 저절로 조화를 이룬다. 재이가 오면 두려워하다가 재이가 사라지면 소홀히 하는 것은 하늘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다.” 영조도 큰 비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고르지 않으면 한밤중에도 의관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영조가 말하였다.
“나는 한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나의 마음을 살피며, 의상(儀象)을 관찰한다. 거기에 조응하는 것은 나의 마음에 달렸으므로 밤낮으로 전전긍긍하며 태만하거나 소홀히 하지 못한다.” 조선의 국왕이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존의 자리였다. 그러나 국왕은 항상 하늘을 두려워하며 그 뜻을 살펴야 했고, 하늘의 뜻이란 국왕이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는지에 달려있었다.
     - 글 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출처: 한국문화재재단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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