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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교수의 역사 속 인삼 이야기
15-08-13 14:27

역사 속 인삼이야기, 이번 시간 <심 이야기>에서는, 청일전쟁 이후 을미사변을 시작으로 고종을 더욱 압박하던 일본의 세력에 저항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공고히 다져나갔던 고종의 광무개혁 시절에 대해 전해드리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인삼업에 침투해 오던 일본의 기세를 꺾고 고종이 어떻게 대한제국의 인삼산업을 철저히 보호했는지에 대한 자랑스러운 이야기, 함께 따라가 보시죠.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 후 일본은 조선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받았고, 청으로부터 랴오둥 반도를 할양받아 대륙침판의 발판을 거머쥐는 듯했지요. 그러나 일본의 독주를 우려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연합한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다시 청에 반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는 친러배일(親露背日)의 정치적 경향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었던 서울 정동이 정치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세력의 위협을 느낀 일본의 만행!
조선에 친러·친미적인 정치 세력이 성장하자 일본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에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는 이른바 작전명 '여우사냥'을 감행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지릅니다. 그 후 일본은 다시 친일내각을 세우고 단발령 실시를 포함한 급진적 개혁을 재개했지만, 국모 살해에 분노한 백성의 반일감정이 하늘을 찔렀고,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때 의병 진압을 위해 수도 경비에 공백이 생겼고, 이 틈을 이용해 친러파는 일본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던 고종을 움직여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갑니다. '아관파천'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고종, 홍삼산업을 철저히 감독하다.
1896년 고종은 친일파를 정리하고 점차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홍삼제조와 무역에 깊은 관심을 보였지요. 고종은 그 해 9월, 왕실의 궁내부에 개성부의 삼포사무를 부속시키고 이용익을 개성 삼정감리에 임명하여 홍삼을 제조하도록 맡깁니다. 이에 따라 개성부 삼포에 대한 감시가 더욱 더 철저하게 시행되었고 개인적인 인삼 채취, 홍삼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실이 제조하여 판매하는 홍삼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제였습니다. 때문에 그 해 탁지부가 거둔 인삼세는 2만 1천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1만 5천근에 포삼세 10원씩을 거두면 산술적으로 15만원의 수입이 기대되었으므로, 탁지부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지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단행하다.
이런 상황에서 1897년 2월 고종은 정부의 대외의존 자세와 경제적 이권의 할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고 각계의 환궁 요청에 따라 경복궁이 아닌 현재의 덕수궁으로 환궁합니다. 이후 고종은 독립협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 해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환구단에서 갖고 국호를 대한(大韓),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치고 대한제국을 대내외에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더불어 광무개혁이라 불리는 고종 방식의 근대개혁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




환구단

광무개혁은 '옛 것을 근본으로 삼고 새로운 것을 참고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을 지향했습니다.
따라서 복고주의적 인상을 풍기지만 근대적 개혁성이 결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황제권 강화의 측변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홍삼정책도 이러한 기조 위에 있었습니다. 고종은 삼업(蔘業)은 농상공부, 삼정(蔘政)은 탁지부가 주관하되 궁내부가 이를 전관(專管)토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로써 삼정(蔘政)에 관한 모든 관리권이 궁내부로 이관되어 내장사가 관리하게 됩니다.

개성 농민들의 극심한 저항을 극복하다.
1898년 6월에는 궁내부 내장사 업무에 삼정이 첨가되었고, 이용익이 내장사장으로 삼정감독을 겸임하게 됩니다. 이해 가을 내장사장 이용익은 국왕의 특지(特旨)를 지니고 개성에 내려가 홍삼 생산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개성 사람의 저항이 격심하여 이용익이 피신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개성의 삼포 주인들은 삼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인삼 종자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네요. 그럼에도 1899년 8월에는 내장사가 내장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0월에는 내장원에 삼정과(蔘政課)를 두고 내장원경이 포삼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용익은 서울의 진위대를 개성에 파견하여 군대의 보호 아래 개성에서 홍삼 제조를 마치게 됩니다.


고종의 내장원 삼정 장악은 정부 재정보다 황실 재정을 더욱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장원의 삼정 관리는 개항 이후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 인삼업에 침투해 오던 일본의 기세를 꺾고 우리 인삼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역사 속 인삼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 글>
이윤상, 1995, 「대한제국기 내장원의 황실재정 운영」『한국문화』 17
양상현, 1996, 「대한제국기 내정원의 인삼관리와 삼세징수」『규장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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