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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수라상을 그대로 재현한 대장금 상차림
15-09-29 00:21

▲ 음식이 아니라 꽃밭을 보는 듯하다
ⓒ 이종찬

▲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끼웠다는 잣
ⓒ 이종찬
기생, 그의 또다른 이름은 재야 예술가

"요즈음 사람들은 기생이라고 하면 대부분 술과 몸을 파는 천한 여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옛날 기생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지요. 그들은 서예와 문장, 전통악기, 전통춤 등을 마음껏 부리고 누릴 줄 아는, 일종의 재야 예술가들이었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그들의 문화를 기생문화라 부르지 않고 교방문화라 부르지요." -진주시 박용덕 관광진흥담당

연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연초록 물빛이 잔주름을 또르르 말고 있는 아름다운 남강…. 임진왜란 때 3800명의 병력으로 7일 동안에 걸친 치열한 싸움 끝에 안타깝게도 이마에 적탄을 맞고 전사한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1554~1592) 장군의 혼이 서린 진주성….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끌어안은 채 남강에 뛰어든 논개의 넋이 떠도는 의암….

경남의 서쪽에 백호처럼 자리잡은 진주. 한반도의 어미산이라는 지리산과 드넓은 사천들, 짙푸른 남해안을 품에 끼고 있는 진주는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라 불릴 정도로 교방(고려, 조선시대 기녀(妓女)들을 중심으로 하여 가무(歌舞)를 관장하던 기관)문화와 교방음식이 많이 발전한 곳이다.

진주시 박용덕 관광진흥담당은 "그 당시 교방에서 일하던 궁녀들이 나이가 들어 퇴기가 되면 진주로 많이 내려왔다"라고 말한다. 이어 "진주의 교방음식은 그들이 내려와 기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내놓았던 궁중음식"이라며, "그들이 궁중음식을 맘껏 뽐낼 수 있었던 것은 지리산과 남해안을 낀 이곳의 농수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못박는다.

▲ 신선로
ⓒ 이종찬

▲ 신선로에 담긴 화려한 색깔의 음식
ⓒ 이종찬
한양 선비들이 천리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먹었다는 교방요리

"진주의 궁중요리는 지리산과 남해안의 신선한 농수산물이 밑바탕이 되어 전래된 궁중요리보다 훨씬 더 맛있고 아름다운 교방요리로 다시 태어났지예. 예로부터 한양 선비들이 천리길을 마다않고 진주의 교방요리를 먹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을 정도이니까예."

지난 1월 13일(금) 저녁 6시. 진주헛제삿밥, 진주비빔밥, 진주냉면과 더불어 진주의 4대 음식이자 상차림이 한송이 꽃처럼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진주교방음식을 맛보기 위해 '진주 한류상품 팸투어' 일행들과 함께 찾았던 한정식 전문점 '아리랑'(경남 진주시 신안동 34-23).

이 집 주인 이소선(50)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싼 가격의 이태리나 프랑스 요리는 극찬을 하지만 우리 음식에 대해서는 인정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어 "우리 고유의 음식이 가장 세계적인 음식이자 가장 맛이 있고 아름답다"라며, "우리 스스로가 우리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되뇐다.

어릴 때부터 우리 음식을 좋아했고 우리 음식 만들기를 참 좋아했다는 이씨는 "우리 고유의 음식을 만드는 것은 곧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지키는 일"이라고 속삭인다. 이 곳에서만 8년 동안 교방음식을 직접 조리하고 있는 이씨는 "교뱡음식 상에 올리는 건구절과 구절판 같은 것은 가격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고 귀띔한다.

▲ 잣죽 맛도 독특하다
ⓒ 이종찬

▲ 녹차밀전병
ⓒ 이종찬
우리 나라 최고의 상차림은 대장금 상차림

그래서일까. 깔끔한 안방에 들어서자 금세라도 상다리가 무너질 정도로 수많은 음식이 하얀 상 위에 빼곡하게 차려져 있다. 아름답다. 하얀 종이가 깔린 상 위에 놓인 하얀 그릇들 위에 담긴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마치 꽃송이처럼 곱게 피어나 있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 무슨 조각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어디 그뿐인가. 이게 무슨 상차림인지, 상 위에 놓인 음식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아는 것이라곤 신선로와 갈비찜, 조기구이 정도다. 근데, 종업원 한 분이 그렇찮아도 빼곡한 상차림 위에 잣과 솔잎, 빨간 실이 담긴 하얀 접시 하나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

기자가 그게 뭐냐고 묻자 "이게 바로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달빛 아래에서 솔잎으로 구멍을 찾아 실을 끼던 그 잣"이라며, "한번 끼워보이소" 한다. 기자가 솔잎으로 잣 구멍을 찾아 빨간색의 실을 끼우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갑자기 훤한 형광등 불빛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어린 장금이는 달빛 아래서도 잘도 끼우더니만.

"그렇다면 이게 그 유명한 대장금 상차림(1명 5만원, 4명 이상)이란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만들던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요리를 그대로 저희 집에서 재현했지예. 대장금 상차림은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아예. 우리 나라 최고의 상차림이 바로 대장금 상차림 아입니꺼."

이 집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대장금 상차림에는 대략 30여 가지의 음식이 오른단다. 오자죽에서부터 순무물김치, 홍시죽순채, 잣즙, 대하냉채, 오색화양적, 숭채만두, 호두삼합장과, 신선로, 송이가리병, 녹차밀전병, 사슬적, 계삼채, 두부선, 마 갈비찜, 조기구이, 건구절(조란 율란 생강란 잣솔 곶감호두말이), 진구절판, 된장조치 및 기본 반찬, 장과와 배숙 등등….

▲ 두부선
ⓒ 이종찬

▲ 대장금 상차림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 이종찬
대장금 상차림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종업원이 음식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언뜻 보면 그게 그 음식 같다. 하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면 저마다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은 쫄깃쫄깃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음식은 아삭아삭 씹히면서도 향긋한 맛이 은근히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 집에서 직접 담궜다는 맑은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꽃잎처럼 아름다운 음식 이것 저것을 집어 그 독특한 맛을 헤아리며 천천히 먹다 보니 어느새 임금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또한 상 위의 음식이 어느 정도 떨어졌다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음식이 자꾸 나온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 많이 먹어도 배가 쉬이 불러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돌솥비빔밥 맛도 여느 돌솥비빔밥 맛과는 많이 다르다. 코끝을 은은하게 스며드는 향긋한 산나물과 함께 잘 비벼진 쫄깃한 밥알을 한 입 가득 떠넣으면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이 끝없이 혀끝을 희롱한다.

"손님이 원하시면 폐백음식도 가격에 따라 맞춰드리지예. 다음에 오시면 서울 양반들이 천리길도 마다않고 달려와 먹었다는 교방 상차림(1명 5만원, 4명 이상)과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싱싱한 먹거리로 만든 한정식 아리랑(1명 3만원, 4명 이상)도 한번 드셔 보이소. 혼자 오실 때는 속풀이에 아주 좋은 생태탕(1만원)을 한 그릇 드셔도 되고예."

▲ 돌솥비빔밥을 먹고 나면 대장금 상차림 기행은 끝이 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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