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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대안 아니다.
20-06-22 13:21

채식 대안 아니다.
최근, 햄버거의 해로움을 경고한 <슈퍼사이즈 미>(Super Size Me)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면서 패스트푸드의 해악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에 펼쳐나가고 있다. 패스트푸드가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고, 사람의 몸을 해하며, 환경을 해친다는 논지는 이 영화 외에도 다른 매체나 환경 운동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건강한 밥상에 대한 예찬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온 바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 하나가 있다. 이러한 건강 중심의 육식과 채식 논의, 그리고 패스트푸드 논의가 가지는 인간중심적면-인간의 건강, 인간의 생존환경 등-은 자칫,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에 해온 폭력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만을 위해서 지구를 살리고 죽일 것인가?


육식, 채식, 패스트푸드 논의를 넘어
많은 이들은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자고 한다. 물론, 대기업 단위로 진행되는 축산업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배설물이 지구를 황폐하게 하고 있으며, 동물들은 맛있는 고기가 되기 위해, 부리가 잘리거나, 상자 속에 갇혀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일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제레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를 보면, 미국 생산 곡물의 70 %가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는데 이 양은 4억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축산업은 열대우림을 파괴하며 지구의 사막화를 촉진하는데 이는, 집단으로 사육하는 짐승들의 발굽들이 흙을 압박하여 흙이 물을 흡수하기 어렵게 해서 지구를 사막화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의 입장에서도, 인간이 동물을 먹는건 탐탁치 않다. 그들의 생활 공간이 인간의 먹거리로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동물의 입장에서, 그냥 먹고 먹히는 자연의 먹이 사슬이 아닌, 인간에게 고통받으며 먹히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채식으로 해결될까? 인류가 버리는 쓰레기, 사용하는 자원등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의 농경문화는 정녕, 무해하단 말인가?
육식을 하기위해 축산업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채식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농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인류가 먹는 식물을 충당하기 위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의 농경(소위 '녹색혁명'이라 불렸던) 방식은 철저하게 화학비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 화학비료란 것이 지구 토양을 망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비단 화학 비료뿐만 아니다. 지구 문명의 4대 발상지였던 한 곳인 수메르 지역은 예전에는 풍부한 삼림지역이었지만 현재 사막이 된 것은 수경농업 탓이다. 우리는 농업에 대해 그저 환경친화적, 혹은 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20세기 들어서 변화한 농업 방식 못지않게 과거의 농업 방식도 매우 위험하였다.
화학 비료뿐 아니라, 혼합 농경이 사라지고 단일작물을 심는 방식 또한 환경에 위해를 가한다. 이런 재배 방식은 땅을 더 빨리 죽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농경의 피해를 잘 볼수 있는 곳이 영국인데 이는 저지대에서 물을 빼내어 농지로 만드는 작업으로 엄청난 크기의 숲과 저지대, 황야가 사라졌다.


친환경적인 축산업과 농업이 지구를 살릴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먹기는 해야 겠는데, 친환경적인 축산업과 농업의 결과물을 먹어야 하나? 하지만 최근의 웰빙이 부(富)를 전제로 하듯, 친환경이란 말은 어느새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문제는 지구와 다른 종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환경의 문제를 인간의 건강과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관점에 고정되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좀더 몸에 좋은 걸 먹기 위해서 축산업에 반대한다. 우리가 더 깨끗하고 우리 몸에 해가 가지 않는 것을 먹기 위해서 유기농 야채를 먹겠다는 논지는, 기존의 축산업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지구에 가해지는 위해를 거두어들일 수는 없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나무를 베기 전에 숲에서 절을 하고 다음과 같이 크게 고함을 지른다고 한다. "이제 당신을 벨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재빨리 주변의 나무를 벤다. 왜 이런 의식을 하는걸까? 그것은 베어질 나무에게 고통을 ‘덜’ 주기 위해서이다. 즉 미리 베겠다고 겁을 주어 나무들이 기절을 했을 때, 나무들이 ‘아프지 않게’ 빨리 베어내는 것이다.
나무를 베기 전에 나무의 아픔을 고려하는 것. 이는 나무를 자신과 같이 지구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그들의 아픔을 최소화하는 행동일 것이다. 이런 자세가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자연계에서 어떤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만 하는 것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포식자가 늘어난 연못의 생태계가 어떻게 깨어지는지 배웠었다. 하지만 인류는 한번도 그 생태계에 ‘인류’를 넣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만약에, 전 지구상의 인류가 육식의 해로움을 깨닫고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지구는 좀더 행복해질까? 우리가 끊임없이 배출하는 자동차의 매연, 건물의 에어컨이 내뿜는 뜨거운 공기는 우리가 고기 안먹고 채소 먹는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다.
지금 지구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 몰려 있음으로써, 공해와 오염물질의 방출이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소비지향적인 삶의 구조로 지구는 심각하게 병들고 있다.
우리가 진정 건강해지길 원한다면, 우리가 진정, 지구의 구성원으로 지구를 아끼길 원한다면, 단지, 육식이냐 채식이냐, 패스트푸드이냐 웰빙이냐를 넘어서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먹거리의 종류를 바꾼다고 해서 지구는 나아지지 않는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대도시 중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그 비대함은 한국의 자연이 얼마나 오염되어가는지 잘 알 수 있다. 자기 재산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이 권력과 정치의 중심에 있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 다른 지구 구성원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이제는 흩어져야 한다. 뭉쳐야 산다? 환경과 지구 입장에서는 뭉치면 죽게 된다. 그것은 비단 다른 종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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