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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복용, 왜 그리 겁내십니까
20-09-10 13:24

사내 헬스클럽 라커룸에서 선배 한 분을 만났습니다. 운동복 입은 모습을 처음 본 터라 “열심히 하시라”고 인사했더니 “운동하면 혈압도 떨어지겠지?”하고 조심스레 물어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의사가 고혈압 약을 처방 했는데 약 복용하기가 찜찜해 대신 운동을 결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동하러 나가겠다는 사람 붙잡고 “운동보다 약이 더 중요하다”는 ‘라커룸 강의’를 한참 동안 했습니다.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의사가 약을 처방 했는데도 약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평생 약으로 연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간에 부담이 간다고 해서” “정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들을 둘러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칼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지혈할 생각을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렇게 요리조리 빼면서 약 복용을 미루다 ‘큰 일’을 당했거나 당할 뻔한 사람을 저는 여럿 봤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위험을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병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 진행형’ 상황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관을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약을 처방할 정도라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운동이나 생활습관 개선이 아닙니다. 약부터 복용해야 합니다. 일단 운동과 식이요법을 해 본 뒤, 그래도 혈압이나 혈당이 안 떨어지면 약을 복용하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마치 불 난 집에서 불은 안 끄고 미래의 화재 예방을 위해 소방장비를 점검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 난 집에선 불부터 꺼야 합니다.

물론 걱정하는 대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고, 의사와 상의해서 약 종류를 바꾸면 됩니다. 수천억원에서 1조원 정도까지 투자해서 개발해 수백만~수천만명이 복용하고 있는 요즘 약들은 어쩌면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안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데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데 혈압이나 혈당이 안정되면 약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설혹 그렇게 안되더라도 어떻습니까? 평생 비타민을 복용하는 사람도 많은데, 영양제라 생각하고 복용하도록 하십시오.

인체는 자기 치유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약 힘을 빌지 않고 병을 극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건강 전략입니다. 특히 감기 같은 병은 약보다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같은 만성 생활습관병들은 예외입니다. 약 복용 시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자기만 손해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모험하지 말고 의사 말을 잘 들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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