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를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이사를 할까요? 도시에서 살다 보면, 서너 번 이상 옮겨 다니는 것이 예사입니다. 이제, 붙박이로 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곳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 그들이 살아온 400년의 시간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차로 50분 정도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면 지례예술촌 마을이 나옵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는 딱 한 세대만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로 김원길 촌장댁입니다. 좌청룡 우백호의 터에 듬직한 안산을 마주하고 임하호를 내려다보는 고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가구이지만, 종택, 서당, 제청까지 125칸에 방이 20여 개 쯤 되는 규모입니다. 김원길 촌장은 집 구경부터 시켜주며, 고택이 산 위로 옮겨진 사연을 들려줍니다. 1980년대 안동에 임하댐 건설로 고택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습니. 김 촌장은 서울에서 대학을 공부하고 직장생활도 했지만, 타향살이가 마지 않아 안동 본가에 내려와 중등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다들 보상비를 받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했지만, 고향에 내려와 안착할 생각이었던 김 촌장은 이 일이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수몰되는 마을과 함께 400년 역사를 가진 동네가 사라지는 거잖소. 하루 살던 사람이 훌쩍 떠나는 것과는 판연히 다르죠. ‘이 일을 어찌할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그 당시 그의 심사숙고에 실마리를 열어준 이가 재미교포 김용익 씨였습니다. 

<종부 이순희 씨가 손주들과 며느리와 함께 오순도순 대추를 솎고 있는 모습>

오랜 만에 고국을 찾은 김용익 씨는 전국 산천을 누비며 여행 중이었는데, 그의 직업이 작가인지라, 안동에 와서 묵을 곳을 찾다가, 지나가는 이에게 “이 지역에 문인의 집이 있으면 소개시켜주오!” 했다고 합니다. 김원길 촌장은 젊은 시절에 등단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용익 씨가 촌장의 고택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방에서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갔죠. 그런데 대화중에 귀가 번쩍 뜨이는 내용이 있었어요.” 김용익 씨는 촌장에게 자신이 다녀본 미국의 ‘아티스트 콜로니(예술 창작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 중 ‘버지니아 센터’는 호수로 둘러싸여 외부와 격리된 곳인데, 1일 숙박비를 25달러부터 60달러까지 정해 놓고, 각자 형편에 맞는 금액을 체크하게 합니다. 만약 돈이 없는 경우에는 왜 돈이 없는지를 지원서에 설명하면 된다니, 가난한 예술가를 배려한 마음 씀씀이인 것이라 합니다. 촌장은 그날 이후, 이 고택에 학자, 예술인, 전통문화를 체험하려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렸습니다. 그에게 이 고택과 함께할 평생의 꿈이 생긴 것입니다.

고택 이전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촌장은 당시 김수근 교수가 재직했던 국민대학교 총장과 조형대학장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예술촌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 뒤, 배치도와 조감도 의뢰를 부탁했습니다. 흔쾌한 답변이 돌아왔고, 며칠 뒤 교수와 학생 20여 명이 내려와 현장 실측을 하고, 조감도 대신 2×4m의 모형을 만들었는데, 이 모형이 건축전문 매체 <공간>지에 논문과 함께 발표가 되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4년여의 과정을 거쳐 수몰 지역에서 산 위로 고택이 옮겨집니다. 영화 <초록 물고기>를 만든 이창동 감독은 두 번이나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A대학교 법학과 대학원은 15년간 봄, 가을로 여기 와서 수업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손 꼽자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잉태’의 체험을 하고 갔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엄마의 자궁 속에 깃든 새 생명처럼, 창작을 위해 적막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들이 조용히 오가는 곳. “이런 생각이 들더이다. 아무리 낙원이라도 말이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그곳이 낙원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아니오. 그 누구라도 언젠가는 닥칠 적막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지 않겠소. 이곳이 그런 기능도 하길 바라는 마음이오.”

그는 이런 마음을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신이 창작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인이니, 다른 창작자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것입니다. 예술촌에 늘 함께 거주하는 것은 아니나, 창작을 위해, 혹은 자기 돌봄을 위해 이 고택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는 예술 공동체의 일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례예술촌에서 가장 절친한 동반자가 있다면,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본 적 없는 아내일 것입니다. 이순희 씨 또한 안동이 고향으로, 종부로 살아간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다른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저한테는 너무 익숙한 삶이죠 .” 말은 그렇게 해도 종부로서의 삶이 왜 고되지 않겠나요. 고택 규모를 봐도 그렇고, 객이 잦은 이 집에 손에서 일이 떠날 겨를이 없을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김 촌장의 시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한다’에는 촌장의 아내에 대한 고맙고도 애틋한 마음이 실려 있습니다. ‘ (전략)  나는 여자로 태어나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나/ 시중을 좀 더 잘 들겠다고 하니/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 나를 들볶고/ 구박해 보았으면 원이 없겠단다/ (중략) 어디 내생에 다시 나더라도/ 멀리 가지나 마오.’ 

안동 시내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김수형 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고택을 찾습니다. 오늘은 큰 손주 정희가 장기를 배웠다며, 할아버지에게 내기를 청합니다. 한편에서는 둘째 손주 준희가 할머니와 함께 대추를 솎아냅니다.

<김씨 지촌 김방걸 선생의 종택을 멀리서 바라본 모습. 옛 집터는 호수에 잠겼습니다.>

김 촌장이 이 고택을 지례예술촌이라 이름 지었지만, 실은 수몰과 동시에 지례란 마을 이름은 지도에서 사라졌었습니다. 그러나 김 촌장은 지례란 이름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고택을 산 위로 옮기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만류하는 이들 뿐이었습니다. “400년 전, 내 조상님이 이 두메산골을 선택한 의미를 전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뜬금없이 도연명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안동 지역의 서원 명칭이나 당호(堂號), 지명, 그리고 시문(詩文)이 유난히 도연명과 관련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지요. 퇴계가 손수 쓴 묘비명의 마지막 줄 또한 ‘귀거래사’의 맨 마지막 문장이오.” 촌장이 그 문장을 풀어 줍니다. ‘오로지 자연의 조화를 따라 생을 마감하면 그뿐, 하늘이 주신 이 목숨을 즐기면 그만이지 다시 더 무엇을 의심하리오.’ 퇴계의 학문은 주자에서 왔지만, 인생의 롤 모델은 도연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도연명의 귀향이 관직생활의 실패로 인한 은둔이나 도피가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었음을 안동의 옛 선비들은 자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우리 선대 어르신께서도 자유로운 삶을 위해 이 두메산골에 집을 지으셨던 거겠죠.”그 이야기를 들으니, 조상 대대로 내려온 마을 이름 ‘지례’를 포기하지 않은 촌장의 심정이 전해졌습니다. 그가 안동예술촌이라 하지 않고, 지례예술촌이라는 이름을 고수한 덕에 현재 관광지도와 도로표지판에 일제히 지례예술촌이라 쓰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동네의 이름이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촌장은 서울에서 일을 보더라도, 잠은 꼭 지례촌에서 잡니다. 몇년 전, 그날도 서울에서 안동행 마지막 버스를 타고 새벽에 떨어졌습니다. 터미널에 세워둔 차를 운전해 지례촌으로 들어서는데, 서울과 달리 안동은 폭설이 내려, 어느 정도 가니, 더 이상 가면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렇게 가던 길에 차를 세워두고 어둠 속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도착해 ‘상모재’라는 시 한 편을 썼습니다.

‘달 아래/ 눈 위에/ 그림자 하나, 밤길/ 혼자서/ 재 넘어 간다, 열 두 발/ 휘날리는/ 상모같은 길에, 언뜻/ 사라졌다/ 다시 보이는, 아득히/ 흔들리며/ 가는 점/ 하나’ 

먹고사는 일에 허둥대며 살아가는 나 같은 범인에게, 어둠 속으로 담담하게 사라지는 시인의 뒷모습이 많은 생각을 일으킵니다. 어쩌면, 시인의 그 담담함은 시인의 마음이 400년 혼을 품고 있는 고택의 품속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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