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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숨결 땅의 생명력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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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신과 만나다
제주사람들에게 올레는 정낭(제주식 대문) 밖을 나서면 맨 처음 만나는 아름다운 좁은 골목의 돌담길이란 뜻이다. 그런데 굿에서 보면 올레는 신을 만나는 정낭 입구 또는 출발점을 말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정낭 밖이 집올레요, 신당으로 들어가는 당 입구가 당올레요, 무덤을 출입하는 묘지의 입구가 산올레요, 여러 집올레가 만나는 큰 올레가 한올레다. 민속적 의미, 신화적 의미, 공간적 의미를 지닌 ‘올레’는 손님이 제주로 찾아오는 길이며, 또는 신(神)이 집의 문전(門前)으로 들어오기 전에 집 앞에서 머무는 장소란 의미를 지닌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토주관’이라는 당신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장소(성소; 聖所)가 하나 이상 있는데 이를 ‘본향당(本鄕堂)’이라 하며, 본향당으로 통하는 작은 길, 마을 사람들이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을 당올레라 한다. 제주의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당올레를 알아야 한다. 하늘의 신들이 지상에 내려오면 우주목이라는 당나무가 서 있는 본향당에 내려오고, 하늘에서 내려온 신은 심방이 굿하는 장소, 즉 집안으로 모셔온다.
제주의 본향당 신들 중에는 일뤠할망이라는 칠일신(七日神)이 많은데, 아이를 낳게 하고 낳은 아이를 15세까지 길러주고 아기의 피부병을 고쳐주는 신이다. 삼승할망이거나 삼승할망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마을의 심방이며 의사인 무의(巫醫)로서 아이를 어머니의 태에서 꺼내주는 산파 역할을 한다.
 
03. 제주도의 전통가옥의 모습 ⓒ한경만
 
이와 같이 마을의 본향당신 칠일신은 아이를 15세까지 키워주는 일반신 삼승할망의 역할과 같아서 임신·출산·생장·치료해 주는 신이자 의사이며 심방(巫)으로, 삼승할망은 탯줄을 끊어주는 ‘태(胎)할망’, 넋 나간 아이의 넋을 들이는 ‘넋할망’이라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이가 자라면,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생명선 ‘삼(生命)줄’이면서 ‘탯줄’인 ‘새끼(兒孩)줄’을 끊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생명의 신’이기 때문이다.
삼승할망은 예로부터 의사가 없는 마을마다 있어서 아이의 넋을 들이고,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면서 탯줄을 끊어 주는 산파였으며, 마을 본향당을 매고 있는 ‘당을 관리하는(堂漢) 당하니’였으며, ‘당 맨 심방(世襲巫)’이었다. 삼승할망은 ‘아이를 받는 할망’으로 오늘날의 조산원,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병원에 가듯 당에 가서 정성을 다해 빈다. “일뤠당(이렛당)에 강 할마님안티 빌민, 아기 아픈 거 다 낫나(이렛당에 가서 할머니께 빌면, 아기 아픈 거 다 낫는다)”하며, 심방(삼승할망)을 데리고 당에 가서 신에게 정성을 다해 빈다.
마을의 성소 본향당은 속화된 현실계에 존재하는 불교의 사찰이나, 개신교의 교회나, 천주교의 성당처럼 하늘과 통하는 영적이고 성스러운 공간이며 동시에 병원처럼 가서 신께 빌면 영적인 치료도 이루어지는 우주의 중심이며 배꼽, ‘옴파로스’이다.
 
04. 제주도에서는 좁은 골목길을 거릿길이라 부른다. ⓒ김재연
 
제주는 세계의 중심, 우주의 중심
옴파로스(Omphalos)는 라틴어로 ‘배꼽’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이며, 델포이의 중앙에 있는 아폴로 신전 안은 중심의 중심,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고 ‘가장 신성한 장소’이자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을 탐라국의 광양당, 그곳은 삼신인(三神人)의 땅,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의 중심인 삼성혈이며, 즉 이곳이 옴파로스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이의 탯줄을 자른 자국, 이곳으로부터 우주나무가 자라고 이는 천상의 세계와 연결되는 땅의 뿌리가 아닌가 했다. 탯줄은 천지를 잇는 끈이며 우주나무로서 세계의 축이다. 탯줄이 절단되고 남은 부위는 배꼽이 되고 이 배꼽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세 개의 구멍’, 탐라의 배꼽 옴파로스다.
탐라국의 1번지, 광양당은 본향당이며 천제를 지내던 제단 삼성혈이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하늘길이며 신이 오르내리는 사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성혈은 아주 오랜 옛날 신화시대에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삼신인(三神人)이 태어난 곳이다. 삼성혈은 둥그렇게 패여 있는 땅에 세 개의 작은 굴이 배치된 형태를 가지고 있어, 마치 인간 탯줄의 해부 조직학적 절단면을 보는 듯하다.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로, 신화시대로 따지자면 세상의 중심인 ‘옴파로스’라고 할 수 있겠다.
 
05.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성혈(사적 제134호) ⓒ제주관광공사 06. 제주 마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당산나무 ⓒ박노대
 
본향은 자기가 태어난 땅이자 근원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제주사람은 본향(本鄕)이라 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 본향(本鄕)인 것은 자기의 탯줄을 태워 묻어둔 땅이란 의미이다. 예로부터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 즉 어머니와 아이의 인연의 줄이자 생명의 줄이며 어머니의 태반에서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던 ‘새끼줄’을 잘라 태운 검정(남은 재)을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새벽녘에 탯줄처럼 세 길이 만나는 세거리, 어머니만 아는 비밀한 곳에 묻어두었다가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면 태를 태웠던 검정을 아픈 부위에 발라주었다. 태(胎)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생명의 뿌리를 저장하고 있는 땅이 지닌 복원력으로 병든 아이의 피부를 소생시킨다는 영적인 주술이며 치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 사람들은 이 땅에 근거를 두고 사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뿌리를 내린 본향(本鄕), 즉 자기가 태어난 땅, 고향은 탯줄을 태워 묻어 둔 땅, 본향(本鄕)이라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본향은 어머니가 아기의 태, 생명의 원천을 묻어둔 곳이니 마을마다 있는 본향당은 태를 묻은 땅을 지켜주는 토주관(地緣祖上)이 머무는 곳이며, 하늘과 땅과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대지의 탯줄이며, 속화된 인간의 땅에 마련된 신과 영적인 교류가 가능한 거룩한 장소인 것이다.
본향당신은 어떤 신인가? 자기의 탯줄을 묻은 땅의 신이지만 고대의 하늘굿(天祭)이 제주도 굿의 초감제 ‘본향듦’에서 큰 화살을 들고 사냥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삼성신화의 ‘삼사석’이야기도 ‘활을 쏘아 땅을 나누어’ 사시복지(射矢卜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크게 보면 두 장면 모두 큰 활을 가지고 화살을 쏘는 장군의 모습이며, 이는 고구려의 활 잘 쏘는 아이 주몽이야기도 비슷하다. 모두 우리 민족, ‘큰대(大)+활궁(弓)’하여 만들어진 ‘큰활 쏘는 사람(夷)’을 쓰는 동이족(東夷族)의 장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큰 굿의 본향당신의 활 쏘는 모습에서 세계의 배꼽이 광양당이거나, 삼성혈이 세계의 옴파로스이며, 한라산에서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동이족의 장수 삼신인 삼을나를 그려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07.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문화재청 08. 강정동 냇기리소 일뤠당에서의 기도 ⓒ문무병
 
                       출처 : 문화재정 홈페이지   글 문무병(제주신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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