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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자연, 묵향이 꽃 핀 낙원 함양

수려한 자연, 묵향이 꽃 핀 낙원 함양
지리산과 덕유산을 중심으로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 함양.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릴 정도로 일찍부터 묵향이 꽃핀 선비 정신의 산실인 이곳. 자연과 인문의 숨결이 어우러진 탓인지 함양에는 울창한 숲, 깊은 계곡이 고장의 심연을 장식하고, 유서 깊은 서원과 향교, 누각과 정자는 물론 천년 고찰이 곳곳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숨결이 어울려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함양의 인문정신을 들추어 본다.
01. 함양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의 가을 풍경 ⓒ함양군청
함양8경,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절경
경상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함양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교통의 분기점이다.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던 아주 특별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고, 조선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서원, 향교, 정자와 누각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그런 만큼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며, 더구나 그 바탕이 되어 준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제10호 덕유산을 비롯한 고산준령들은 인간이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받아 안으며 명승지를 창출한 것처럼 함양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함양의 제1경은 ‘상림(上林)의 사계절’이다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 선생이 이곳 함양(천령군)의 태수로 재직할 당시에 조성됐다고 전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 가운데 하나이다. 그 길이가 무려 1.6㎞에 폭이 넓은 곳은 200미터에 이른다.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강기슭과 하천 부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강둑에 조성한 숲)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이 함양읍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이때 최치원 선생(857~?)이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아 강물의 흐름을 현재의 위치로 돌렸다. 그리고는 강변에도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당시에는 숲을 대관림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숲의 중간 부분이 파괴되어 지금과 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졌다. 하림 부분은 마을이 들어서면서 산림이 훼손되어 몇 그루의 나무만이 서 있어 그 흔적만 엿볼 수 있다.
이외에 제2경은 ‘금대지리’, 즉 금대암에서의 장엄한 지리산 조망이고, 제3경은 ‘용추비경’이다. 용추계곡과 기백산의 빼어난 경치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제4경은 ‘화림풍류’로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 등의 정자와 어우러지는 계곡의 경치와 남계서원, 청계서원과 연계하는 선비 문화의 꽃이다. 그야말로 최치원이 일러주었듯이 현묘한 도를 그대로 보는 듯한 풍류가 절로 묻어난다. 제5경은 ‘칠선시류’로, 지리산 칠선계곡의 경치와 화살과 같이 빠르게 굽이쳐 흐르는 물이다. 제6경은 ‘서암석불’로, 벽송사와 서암정사의 고즈넉한 풍경과 경이로운 석불이다. 제7경은 ‘덕유운해’로, 남덕유산 아래로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신비로움이다. 제8경은 ‘괘관철쭉’으로, 백운산으로부터 괘관산까지 이어지는 봄 철쭉의 아름다움이다.
02. 20세기 초 채용신(1850~1941)이 작자미상의 최치원 초상화를 본떠 그린 그림(한국미술정보센터 제공) 
03.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는 정여창 고택의 편액(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역사 문화의 산실, 그 자긍심
함양은 자연과 어우러진 역사문화 유적이 유난히 많다. 신라시대 때 최치원 선생이 이 지방 태수로 재직 시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학사루를 비롯해 광풍루, 함화루 등의 누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거연정·동호정·군자정·심원정 등 정자도 수없이 많다. 누각과 정자가 많은 것은 선비들의 활동이 그 만큼 활발했음을 증명한다.
특히 일두 정여창의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은 함양 지역의 자랑거리이다. 일두 선생의 고택은 선생이 타계한지 1세기 후에 후손들에 의해 중건됐는데, 눈여겨 볼 것은 고택의 솟을 대문에 걸려 있는 충효 정려 편액 5점이다. 편액이 5점이나 걸려 있는 양반 고택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것으로, 충과 효에 관한 한 일두 선생의 후손과 집안이 최고라는 자긍심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함양이 선비의 고장임을 재차 증명하는 것은 규모와 명성을 가진 서원과 향교의 건재함이다. 그 가운데 남계서원(사적 제499호)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에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창건됐다고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유서가 깊다. 바로 이웃에는 청계서원이 있는데,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바로 이웃에 서원을 건립해 학풍을 드높였을까 싶다.
향교의 존재는 고을의 향풍 진작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이다. 한 고을에 향교가 하나만 있어도 문풍이 깃든 아름다운 고장이라 일컬을 수 있는데, 함양에는 함양향교와 안의향교 등 큰 향교가 두 개나 있다. 함양향교는 고려 때 경학을 가르치던 곳인 소소당(昭所堂)을 이어 조선 태조 때 창건된 아주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안의향교는 그 후 조선 성종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방에서 성균관을 대신하여 지방대학의 역할을 했던 향교가 한 지역에 이렇게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지역민들의 풍속교화와 학문에 대한 요청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열망이 함양을 교육의 고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함양의 또 다른 자랑은 신라 때부터 불교가 발달한 지역으로 벽송사를 비롯해 영각사, 용추사 등 천년 고찰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승안사지 삼층석탑, 벽송사 사층석탑 등의 불교 미술품이 기이함과 고풍스러운 멋을 뽐내며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불심 가득한 중생들을 미소로 끌어안는다.
04. 함양향교에서 추기석전제를 봉행하고 있다. ⓒ함양군청
선비, 세상을 밝히는 등불
함양의 자긍심은 무엇보다도 선비정신이다.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에서 시작해 조선시대 초기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 실학의 대가인 박지원, 조선시대 청백리인 일로당 양관, 옥계 노진 등 기라성 같은 선비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이 고장 출신이거나 이 고장의 군수로 재직하며 함양을 가꾸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들의 학문 실천을 통한 선비정신의 발현은 함양인들의 내면에 독특하게 자리 잡으며 경상우도의 선비정신을 대변하게 됐다.
일두 정여창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그의 학문을 설명한 바 있다. “나의 바탕은 남들보다 낮다. 때문에 많은 공을 들이지 않으면 작은 효과도 얻기 힘들다. 학문이란 씨를 심어 기르는 것과 같다. 자갈밭에서는 좋은 벼라 할지라도 잘 자라지 않고, 기름진 땅에서는 강아지풀도 쉽게 자란다. 만일 북돋아 주고 호미질로 김매는 노력이 없다면, 좋은 밭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특히 공부를 하면서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학문을 하여 무엇에 쓰겠는가?”
일두 선생의 고백은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의 호 ‘일두(一蠹)’, ‘세상의 한 마리 좀벌레’라는 표현이 일러주듯이, 그는 겸손했다. 그 겸손은 성리학을 몸소 실천했던 선비로서 마음공부의 몰입으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 전통은 겸손함과 더불어 함양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영혼에 깊이 간직되어 있으리라.
05. 금대 앞에서의 장엄한 지리산의 조망 ⓒ함양군청 06. 칠선계곡 초입의 산중턱에 있는 서암석불 ⓒ함양군청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신창호(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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