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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매화

시인 정승호 님은 “울고 싶으면 선암사의 해우소로 가라”고 했다. 무지한 여행자는 수없이 선암사를 들락거렸음에도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암사에 매화가 지천에 핀 어느 해질녘의 선암사 풍경을 만난다면 나도 모르게 북받치는 여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매화나무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의 재배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매화에 관한 시조時調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부터 재배가 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고택, 고찰, 서원 등에 관상용으로 재배가 되었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한 가지로, 난蘭’은 우정과 고아高雅를, ‘국菊’은 장수를, ‘죽竹’은 지조를 상징하며, ‘매梅’는 용기와 고결을 상징한다. 옛부터 매화는 오덕五德을 지녔다하여 쾌락, 행복, 장수, 순리, 절개의 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의 기품과 절개를 상징하여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라고 칭송하였다.

현존하는 고매古梅 중 가장 건강하고 웅장한 매화가 선암백매仙岩白梅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한 절이다. 그런데 선암사는 천년고찰의 면모보다는 단아한 옛집의 품격이 더욱 짙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찰들이 중창과 개보수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선암사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불사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년고찰의 깊숙한 멋이 그대로이니 분쟁의 시간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더불어 그 긴 시간을 선암사와 함께 전설처럼 살아 온 매화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칠전선원七殿禪院과 무우전無憂殿사이, 그 길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고매화, ‘선암백매仙庵白昧’라 불리는 ‘무우전매無優殿梅’와 무우전 돌담길 입구에서 우측으로 다섯 번째 우람하게 선 매화나무가 자리하니 ‘선암홍매仙庵紅昧’다.



어느 봄날, 늦은 오후에 찾은 선암사. 일부러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절집을 찾았다. 매화향기의 절정은 암향暗香이라 한다. 어둠이 깊을 때일수록 매화의 향은 더욱 맑고 또렷하게 퍼진다. 그리고 담과 담 사이의 길, ‘선암백매’를 먼저 만난다. 고려시대에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에 와룡송臥龍松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소나무와 함께 백매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령 600년, 수고 12m에 이르는 장성이며, 수폭 16m에 이르는 거구의 매화나무다. 자연스럽게 자란 모습이지만 토종매화로서의 고고함은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선암백매의 웅장함은 전남대학교 대명매大明梅,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지실마을 계당매溪堂梅, 소록도 수양매水楊賣와 함께 호남오매湖南五梅 중의 하나로도 꼽힌다. 선암백매의 옆으로 차밭 가는 길에 자리한 담장으로는 300년이 넘는 매화나무들이 도열하고 선다. 그 중 담장에서 다섯 번째 선암백매를 닮고 유독 가지가 굵은 홍매 한그루가 서니 수령 550년의 ‘선암홍매’다. 토종매화의 특징은 꽃잎은 일반 매화에 비해 작지만, 그 향은 감히 당해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화려하게 많이 달린 꽃잎이 아닌 듬성듬성하게 자리한 매화꽃잎들은 그 기품으로도 늙은 매화의 품을 도도히 지키고 선다. 열매를 얻기 위한 개량종 매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매화다.

선암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 매화 말고도 많은 고매들이 살고 있다. 대웅전의 옆 계단에 자리한 수령 450년의 매화, 선원 담장 앞의 홍매화는 수령 400년으로 지금도 과즙이 풍부한 건강한 매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선암홍매와 함께 수령 350년에서 500년의 전설을 살아 온 매화들이 지천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선암백매의 경우는 노화현상으로 가지 끝이 말라가고 있다. 녹조류와 곰팡이들의 공생체인 지의류들이 매화 상부까지 퍼져 있어 새순이 줄어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선암홍매다. 2012년 여름에 둘러보니 굵은 세 줄기 중에 두 줄기가 잘려 나갔다. 그나마 남은 한 줄기도 상부에서 지의류들이 발견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처럼 수백 년을 살아온 매화 등의 천연기념물이 우리 대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소생술이나 후계목 육성을 통하여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사진. 박성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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