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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죽서루

강원도 삼척은 비록 서라벌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서라벌 계신 임금님의 뜻을 받든 김이사부 장군이 동해바다와 함께 울릉도와 부속 섬 독도를 우리 영토로 만든 출항지이다. 삼척은 궁궐 주춧돌 하나 놓여 있지 않지만 우리민족의 건국 신화가 탄생한 곳이다. 동안거사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태어난 곳이라서 그렇다. 삼척은 궁궐 기둥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왕조 창업의 꿈을 꾼 신령스러운 곳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출현을 예고하는 백우금관百牛金棺 설화의 탄생지라서 그렇다. 또한 삼척은 궁궐 기왓장 하나 올려져있지 않은 곳이지만 임금이 살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고려 공양왕께서 유배를 오셔서 최후를 맞이한 곳이라서 그렇다.




죽서루가 자리한 절벽에는 부백府伯·부사府使·사군使君·삼척수三陟守·이은吏隱·지군知郡·지부知府·지주知州·지진주知眞珠·진주백眞珠伯·진주수眞珠守 등 조선시대 삼척부사의 관명官名이 가지가지로 나타나 있다.
삼척부사들 중에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도 있고, 허균의 아버지로 강릉초당 두부를 처음 만들었던 허엽 부사도 있다. 허균의 장인어른이자 아버지 허엽과 절친한 친구지간이었던 김효원 부사도 삼척부사로 일했다. 암행어사로 삼척에 왔다가 13년 뒤 삼척부사가 되어 다시 찾아온 이보욱 부사도 있다. 삼척부사로 재임하다가 10년 만에 강원 관찰사로 승진하여 삼척을 다시 찾은 홍명한 부사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이름을 죽서루 절벽에 새겼고 관찰사 때는 죽서루 주변을 찬양한 한시를 남겼다. 삼척에 유배되었다가 나중에 영의정에까지 오른 채제공도 죽서루 절벽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겼고 삼척에 전승되던 오금잠신굿을 구경하고는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68세의 최고령 부사로 부임했다가 고희를 맞아 도정으로 승진해서 떠난 김병연 부사의 이름도 죽서루 절벽에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부사로 재임 중에 지병으로 삶을 마감하고 애끓는 마음으로 부친상을 치르던 아들까지 줄초상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심해 부사와 조재연 부사가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죽서루 절벽에는 목민관의 포부를 새기고 무릉반석에는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라는 일필휘지 멋진 초서체의 큰 12글자를 새겨 삼척지방의 산자수명함을 찬양했던 옥호자 정하언 부사가 용추폭포 근처에 정자를 만들지 못하고 삼척을 떠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로 남는다.

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삼척을 여전히 아름답게 하는 것은 죽서루다. 보물 제213호 죽서루는 관동제일루다. 숙종 때 이성주 부사께서 써놓은 현판에도 심영경 부사의 한시에도 이렇게 써놓았다.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바다 갈매기가 찾아오는 곳이다. 자연 암반에 높이를 맞춰 저마다 길이가 다른 17개 기둥을 올려놓은 죽서루는 남도의 소쇄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로 손꼽는다. 당대 최고 화가인 표암과 겸재 그리고 단원이 찾아와 죽서루를 그렸고 율곡도 송강도 사천도 입을 모아 죽서루 주변 풍광을 노래한 한시를 남겼다. 숙종 임금님도 죽서루 주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시는 어제시를 하사하셨으니 죽서루가 한결 자랑스럽다. 이에 시 한 수를 보탠다.

죽서루에 오르면
두타산頭陀山 자운紫雲
오십천 타고 내려와
기단도 초석도 없이
그랭이질로 세운 열일곱 기둥 죽서루 휘감으니
권세도
금은보화도
저 세상
갖고 갈 수 없음을 깨닫고
누구나 욕심 없는 사람 된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사진. 김수문 시인, 북평여자중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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