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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오십천, 맑은 비경 속에 간직된 옛사람들의 흔적 삼척


관동關東 혹은 영동嶺東이라 부르는 강원도의 동쪽지역은 험준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장벽처럼 지나며 내륙의 다른 지방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관동문화라 일컬어지는 이 지역의 문화는 자연과 어우러진 유유한 풍류가 볼거리로, 동해안 자락을 따라 들어선 관동팔경 같은 명승고적으로 대변된다. 삼척 오십천변에 자리한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머물던 곳이다. 삼척의 여정은 바다를 등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수억만 년의 시간을 간직한 경이로운 동굴지대와 산간민초들의 삶이 녹녹히 스며있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b]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치는 삼척 죽서루 [/b]

삼척시 성내동 오십천변의 절벽 위에 자리한 죽서루는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었다. 그러나 창건연대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의 시 중에 죽서루와 관련된 시가 전해오고 있는 것을 보면 12세기 후반 이전에 이미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죽서루는 여말선초의 혼란기에 허물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허물어진 죽서루는 조선 태종 3년(1403) 당시 삼척 부사였던 김효손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누각의 이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누각을 세울 당시 동쪽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어 죽서루가 되었다는 것과 죽죽선이라는 이름 난 기생의 집이 있어 서쪽에 지은 누대라는 뜻으로 죽서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죽서루는 삼척의 양반 사대부와 삼척을 찾아오는 묵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었던 공공시설이었다. 건물은 자연석 위에 모두 17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의 누대에 다시 20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7칸, 측면 2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운데의 5칸은 내부에 기둥이 없는 통칸으로 전망만큼이나 시원스런 구조로 되어있다.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오십천의 푸른 물줄기도 볼만하지만 누각 안의 빼곡히 걸린 현판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현판들 속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의 이름을 만나볼 수 있다. 북쪽 입구에 걸린 죽서루기는 허목의 글이고 이율곡과 이승휴, 이구의 글귀도 보인다.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도 걸려있다. [b]천민속 문화의 보고, 산간민초들의 삶 [/b]

시원스런 동해바다의 풍광을 만끽하며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원덕면 갈남리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독특한 서낭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해신당 공원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원형은 바닷가 절벽에 자리한 해신당이다. 해신당 안에는 처녀의 영정과 함께 굴비처럼 엮어놓은 남근조각들을 매달아 놓았다. 처녀는 해신당의 주인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이 마을의 처녀가 장래를 약속한 총각과 함께 앞바다의 바위섬으로 해초를 따러 갔다. 총각이 점심을 가지러 간 사이 폭풍이 일었고 혼자 남은 처녀는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처녀가 죽은 뒤 바다에서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았고, 뱃일 나간 총각들은 죽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처녀의 원통한 혼령 때문이라고 생각한 마을사람들은 서낭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재앙이 그칠 줄 몰랐다. 마을사람 하나가 홧김에 술을 마시고 서낭당 신목에 대고 방뇨를 했다. 그런데 다음날 바다에 나가보니 쳐놓은 그물에 고기가 가득했다. 처녀가 원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양기였던 것이다. 그 후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고 바다와 마을의 생활이 예전처럼 풍요로워졌다.”

해신당이 어촌마을의 독특한 민속이라면 너와집은 산촌마을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흔적이다. 도계읍 신리와 대이리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너와집과 굴피집이 보존되어 있다. 이 가옥들은 산촌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껍질과 나무판자로 지붕을 얹었다. 또 다른 특징은 방과 부엌을 비롯해 외양간, 곳간 등을 모두 건물 안에 다닥다닥 붙여 놓은 점이다. 이런 구조는 산짐승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고 매서운 겨울의 한기로부터 보온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너와집과 함께 불씨를 보관하던 화티, 벽난로 구실을 하던 고콜, 통방아와 물레방아, 독, 설피 등 민속유물들이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b]국내 최대의 동굴자원의 보고[/b]

삼척은 국내 최대규모의 동굴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도계읍 대이리 덕항산자락의 동굴지대는 물이 석회암을 녹이는 용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두 10개의 동굴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동굴이 환선굴(3.5㎞)과 관음굴(1.2㎞)인데 종유석, 용석과 함께 깊은 골짜기 사이로 풍부한 수량이 흘러 장관을 이룬다. 또한 환경조건이 좋아 환선좀딱정벌레를 비롯한 희귀한 동굴생물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곡면 금계리의 초당굴은 총연장이 자그마치 70여㎞로 추정되는 수직동굴로 곳곳에 큰 광장과 연못이 자리하고 있으며 물김, 좀딱정벌레, 장님굴새우, 긴다리거미 등 희귀한 동굴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피압수가 마치 분수대모양으로 곳곳에서 솟아올라 독특한 장관을 보여준다. 초당굴은 천연기념물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 사진_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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