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가물치
가지
간재미
갈근
갈치
감자
감태
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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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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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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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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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죽장도
낙지
냉이
노루
녹두
녹용
녹차
농어
뇌록
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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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타리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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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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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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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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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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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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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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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뿌리
만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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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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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
머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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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명란젓
명설차
명태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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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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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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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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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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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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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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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혼과 민족신앙이 살아 숨 쉬는 통영

호국 혼과 민족신앙이 살아 숨 쉬는 통영 한반도 남단에 있는 통영은 지리적 여건상 역사적으로 변방지역에 머물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3군의 통제영이 설치되었고 아울러 충무공의 전적지와 함께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사당이 편재해 있는 곳이다. 또한, 독특한 민간신앙유적이 산재해 있는 곳으로 중요민속연구의 보고이기도 하다. 통영세병관統營洗兵館 (국보 제305호)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 수군을 통괄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 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또한, 세병관은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李慶濬이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이며,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세병관 앞뜰에는 두룡포기사비頭龍浦記事碑(경남유형문화재 제112호)가 있는데 조선 인조 3년(1625) 제19대 수군통제사인 구인후가 이경준(제6대 통제사)이 수군 본영을 건설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받침돌 위에 비 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에는 구름과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어서 받치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는 통제영 남문 밖 바닷가 큰길에 서 있었는데 광무 고종 8년(1904)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96년 비 받침돌을 새로 만들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통영충렬사統營忠烈祠 (사적 제236호)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선조 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지어 보낸 현판을 받았고,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걸쳐 2번씩 제사를 지내왔다. 사당에는 본전, 정문, 중삼문, 동·서재실과 강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당 내에는 많은 비석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 7년(1681)에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비이며 사당의 뒤편에는 역대 수군통제사들의 비 29기가 있다. 통영충렬사팔사품統營忠烈祠八賜品 (보물 제440호)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높이 평가한 명나라의 황제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8종류의 유물 15점이다. 도독인(동으로 만든 도장)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모두 2개씩으로, 1969년 현충사가 지어지자 도독인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들은 1개씩을 그곳으로 옮겨놓았다. 현재 충렬사에는 도독인, 호두령패, 귀도, 참도, 독전기, 홍소령기, 남소령기, 곡나팔 등 8종류 8점만이 남아있다. 도독인都督印은 손잡이가 달려있는 동으로 만든 도장이다. 도장을 넣은 함에는 ‘황조어사인’이라고 쓰여 있어, 중국 황제가 보낸 도장임을 알 수 있다. 호두령패虎頭令牌는 나무로 만든 것인데, 한쪽에는 검은 칠을 하고 ‘영令’자를 새긴 후 그곳을 붉은색으로 메웠고, 다른 한쪽에는 ‘대장大將’을 새긴 후 분칠을 하였다. 사슴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표범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귀도鬼刀는 칼자루에 용머리와 귀신 머리가 장식되어 있는 칼로, 오동나무로 만든 칼집은 종이로 싸서 붉은 칠을 하였다. 참도斬刀의 칼자루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상어껍질로 싼 후 붉은 칠을 하고 소가죽으로 감았다. 칼집도 나무로 만들었으며 소가죽으로 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은도금을 한 쇠로 장식을 더 했다. 독존기督戰旗는 전쟁 시 감독하며 격려하는 깃발이다. 남색 비단 바탕에 ‘군사가 적을 만났을 때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처단한다.’라고 쓰여 있고, 깃대 머리에는 창이 꽂혀있다. 홍소령기紅小令旗는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홍색의 비단 바탕에 남색으로 영자를 붙였고 자루 끝에 창을 달았다. 남소령기藍小令旗 또한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남색의 비단 바탕에 홍색으로 영자를 붙였고 자루 끝에 창을 달았다. 곡나팔은 구리로 만든 나팔로, 목이 구부러진 모습이라 곡나팔이라고 한다. 나팔 입은 퍼졌고 붉은 술을 달았다. 또한 충렬묘비忠烈廟碑(경남유형문화재 제113호)는 충무공의 충절과 업적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운 비로, 충렬사 내 비각에 놓여 있다. 착량묘鑿梁廟 (경남기념물 제13호)

착량묘
<착량묘>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쫓겨 달아나다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 좁게 이어진 협곡에 이르러 돌을 파서 다리를 만들며 도망한데서 붙인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선조 31년(1598)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이를 애통하게 여긴 이 지방 사람들이 착량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정성껏 그를 모셔온 것이 이 사당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고종 14년(1877) 그의 10대손인 이규석이 통제사로 있을 때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쳐지었고, 1979년에 동재를, 1980년 고직사를 새로 지어 서원 양식을 갖추었다.

삼덕리마을 벅수
<삼덕리마을 벅수>
통영시문화동 벅수 (중요민속자료 제7호) 벅수는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서 있는 돌장승이다. 장승은 남녀 한 쌍이 짝을 이루어 서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장승은 유례가 드문 독장승이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고 둥근 눈은 튀어나왔으며 코는 삼각형으로 뭉툭하다. 머리 위에는 벙거지를 쓰고 턱밑에는 굵은 선으로 세 가닥의 수염이 표시되었다. 활짝 웃고 있는 입에는 송곳니가 길게 삐져나와 있는데 험상궂은 모습이기보다는 익살스럽다. 앞면 몸체에는 ‘토지대장군土地大將軍’이라는 이름이 새겨있다. 광무 10년(1906)에 세워졌다. 해평열녀사당(민속자료) 해평열녀의 성명이나 생활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살던 마을 이름을 따서 ‘해평열녀’라고 불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가 시집온 지 몇 달 뒤에 남편이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으로 빠져 죽었다. 그녀는 남편이 빠졌다는 곳을 찾아가서 제를 지낸 다음 바다에 몸을 던져 사흘 만에 남편의 시체를 안고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 부부를 합장하였는데, 마을 뒷산 나뭇잎을 벌레가 열녀란 두 글자를 새기면서 갉아먹었다 한다. 이는 해평열녀의 정렬에 하늘도 감동한 것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사철 향을 올렸다. <해평열녀기실비>는 1932년에 세워졌다. 삼덕리마을제당三德里마을祭堂 (중요민속자료 제9호) 산양읍 삼덕리에 있는 삼덕리마을제당은 당집과 당산으로 구성된다. 장군당 안의 장군신도將軍神圖와 2개의 목마 중 큰 목마, 원항마을 입구의 돌장승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고 그 밖에도 천제당과 당산나무 10여 그루, 나머지 돌장승 2쌍이 이곳의 동제당이다. 장군봉 정상에 있는 장군당과 천제당은 각각 장군신과 천신을 모신 곳으로서 규모가 작고 조촐하다. 장군신도는 장군당 내부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장군의 단호함이 잘 표현되어있다. 이 앞에 목마 한 쌍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큰 것은 원래의 철마를 도둑맞은 후 1940년 경 새로 만든 것이고, 작은 것은 근처에 살던 일본인이 기증한 것이다. 장승은 대청·관유·원항마을 입구에 남녀 한 쌍으로 세워졌다. 관유마을의 것만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고 나머지는 돌로 만든 석장승이다. 이 마을의 동제는 설날 첫새벽에 시작되어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데, 마을 공동으로 제사비용을 추렴하여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다. 마을에서 선출된 대표가 제관이 되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제사를 주관한다. 천제당에서 천제를 지내고 장군당에서 장군제와 용마제를 지낸 다음 산기슭 바위에서 잡신제를 지낸다. 이때쯤 각 가정에서는 조상제를 지낸 후 장승 앞에서 벅수제를 지낸다. 그리고 원항마을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어로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별신제를 지낸 후 주민 모두가 어우러지는 풍물놀이를 끝으로 이 의례는 막을 내린다. 마을 전체를 위한 제사이고 마을의 구성원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기능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곳은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동제가 잘 보존되어있고 다양한 신앙 대상물이 공존하고 있어 민간신앙, 마을신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안정사安精寺

문화동 벅수
<문화동 벅수>
안정사대웅전安精寺大雄殿 (경남유형문화재 제80호) 벽발산 기슭에 있는 안정사는 신라 무열왕 1년(654)에 원효대사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영조 27년(1751)에 다시 지었고, 대웅전도 이때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정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기둥 사이에는 각각 2구의 포를 배치하였다. 단청으로 채색한 화려한 공포는 일반적인 다포계 후기의 경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부에는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조성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안정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당건물이다. 안정사괘불安精寺掛佛 (경남유형문화재 제282호) 괘불이란 사찰에서 옥외집회를 하거나 야외에서 의식을 행할 때에 밖에 내다 거는 걸개그림을 말하는데,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는 괘불은 영산회상도로서 인도의 영취산에서 석가가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폭의 중앙에 석가여래가 서 있고,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으며, 그 뒤편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등의 4제자가 배치된 단조로운 구도이다. 석가의 얼굴은 풍만하고 표정 또한 원만하며, 머리정상에 있는 육계가 우뚝하다. 광배는 머리 둘레와 신체의 뒤에서 빛을 발하는 두 가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길이 12m, 폭 10m의 크기로, 조선 숙종 28년(1702)에 제작된 것이다. 그 후 조선 고종 12년(1875)과 1934년 등 2차례에 걸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안정사만세루 (경남문화재자료 제145호) 만세루는 조선 숙종 12년(1686)에 처음 지었고 헌종 7년(1841)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각은 일반적으로 절의 중심 건물 앞에 세워 출입의 역할인 문루의 기능과 종을 걸어 놓는 종루의 기능, 법회를 행하는 강당의 기능을 함께 갖는 경우가 많은데, 만세루는 문루의 기능은 없고 법회 장소와 종루의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안정사 전경
<안정사 전경>
안정사범종安精寺梵鐘 (경남유형문화재 제283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118㎝, 입 지름 69㎝의 범종이다. 둥근 형태의 머리 위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으며, 어깨부위는 사각형 모양으로 단순화된 꽃무늬를 둘렀다. 몸통은 가운데 도드라진 선을 둘러 2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위쪽은 사각형의 유곽이 4곳에 배치되었고, 유곽 안에는 꽃무늬의 유두가 9개씩 있다. 유곽 사이에는 명문이 있어 종을 만들 때 도움을 준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 있다. 몸통 아랫부분은 꽃무늬 모양의 원안에 범자와 ‘卍’자를 새겨 4곳에 배치하였다. 종의 가장 아래쪽은 덩굴무늬로 띠를 둘러 나타내었다. 전라남도 담양의 추월산 용천사에서 만든 것인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이후 이곳으로 이전된 것이다. 한반도 남단, 리아스식 해안과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통영은 그곳에 오래전부터 뿌리 내리며 살아온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함께 이순신 장군께서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창건한 이후 경상, 전라, 충청도의 모든 수군을 거느리며, 1895년 통제영 폐영까지 약 300여 년간 조선의 바다를 지키던 최고 사령부였다. 통영 곳곳에 아로새겨진 충무공의 우국혼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이 땅에 대한 사랑을 전해주고 있는 곳이다.
출처: 문화재청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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