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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괜찮아, 슬로시티 대흥으로 향하다

‘더 빠른’이라는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운 광고처럼 빠름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물건도 사람도 더 빠른 것만 찾는 요즘, 느림의 미학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들 빠른 것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묵묵히 느림을 자처하는 동네가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느려도 괜찮아, 서두를 것 없는 슬로시티 대흥으로 향한다. 

슬로시티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슬로시티는 느리게 먹기, 느리게 살기를 목표로 하는 운동이다. 지역민이 중심이 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9년, 대흥은 증도와 청산 등에 이어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풍요로운 자연생태 보존과 내포 지역 역사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마을은 슬로시티 대흥만이 가진 특징이다.

▲슬로시티 상징은 느림의 대명사 작은 달팽이다. ⓒ강민영


의좋은 형제 공원
대흥은 의좋은 형제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가난한 형제가 밤새 서로의 곳간에 쌀가마니를 날랐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공원 곳곳에는 이 의좋은 형제의 모습을 한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의좋은 형제 공원 ⓒ강민영

공원에서 열리는 행사는 더욱 다채롭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의좋은 형제 장터가 열린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작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옛 장터의 정취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매년 9월에는 옛이야기가 대흥을 가득 채운다. 문체부 우수축제로도 선정된 ‘옛이야기축제’는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소중함과 옛이야기를 들려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바위에 새긴 의좋은 형제 이야기 ⓒ강민영

마을 기업 '느린 손'
수공예품을 만드는 '느린 손'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마을 협동조합이다. 대흥의 명인들이 만드는 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고, 짚공예, 천연염색, 천연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운영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내부가 시선을 끄는 '느린 손'에는 슬로시티의 색깔을 입힌 솟대, 비누, 가방, 옷 등을 판매한다. 달팽이 미술관에 들러 더 많은 공예품을 구경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코스다.

▲'느린 손'과 판매상품 ⓒ강민영


▲박효신 예산 대흥 슬로시티협의회 사무국장 ⓒ강민영

Q. 슬로시티를 시작하고 나서 마을에 생긴 변화가 있나요?
사실 시골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슬로시티를 시작하고 나서 지역주민들 간의 공동체 의식이 몰라보게 성장했습니다. 예전에 시골인심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나’에서 ‘우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함께한다는 게 참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Q. 슬로시티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 말씀해주시겠어요?
슬로시티 운동의 기반으로 '느린 손'이라는 마을협동조합이 하나 생겼어요. '느린 손'이 작년에 우수마을 기업으로 선정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해서 이뤄지거든요.

Q. 사무국장님이 추천하는 참여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즈넉한 시골 길을 따라 걷는 '손바닥 정원길'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동네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뜰을 개방해서 도움을 주고 계신데요.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시골의 정취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가끔 주민들이 먼저 다가와서 차를 건네는 경우도 있는데, 편안하게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가세요.

▲길목마다 펼쳐지는 볼거리 ⓒ강민영

예당저수지를 가득 담은 음식, 어죽
대흥을 찾은 사람이라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다. 이름도 생김새도 특이한 어죽이다. 향토음식인 어죽은 민물고기를 삶아 체에 거른 후, 쌀과 국수를 넣고 빨갛게 끓여낸 음식이다. 붕어를 비롯한 잡어가 주재료인데 예당저수지에서 바로 잡아 사용한다. 붕어를 끓인다고 해서 매운탕과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식감은 죽에 더 가깝다. 생선의 비린 맛을 잡은 얼큰함이 일품이다.

▲대흥의 명물, 어죽 ⓒ강민영

하루 남짓 머문 슬로시티 대흥에 웅장한 건축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가는 길목마다 차 한 잔을 건네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단순히 느린 삶을 사는 것만이 아닌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은 웅장함과 화려함의 빈자리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매일 조급한 내일을 준비하기에 지쳤다면 슬로시티 대흥에서 조금 느리게 걸어보는 건 어떨까.

*자세한 정보는 슬로시티 대흥 홈페이지(http://www.slowcitydh.com/index.php)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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