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가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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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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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녹두
녹용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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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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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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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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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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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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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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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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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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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부채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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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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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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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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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의기적.jpg
 
 
과거와 현재의 절묘한 만남, 대구 골목에서 근현대사를 만나다

대한민국은 늘 새로운 것을 쫓아갑니다. 그러면서 옛것은 점점 잊혀지죠. 반면 유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합니다. 중세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 속에서 일상을 지내는 그들에게는 역사가 지금 이 순간이 되죠. 현대화를 좋아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는 그런 곳이 없을까요? 여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 역사가 숨어있고 거리와 골목들 그 자체가 역사박물관이 되는 대구, 그곳으로 지금 떠나볼까요?
 
 
 
옛사람들의 삶이 짙게 남아있는 대구 골목을 걷다.
 
 
선교사 주택은 선교, 의료, 교육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민하
 
 
대구는 골목을 걸어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도시입니다. 골목은 총 5개의 코스로 나누어져있었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미 ‘관광의 별’로 선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2코스 골목이었는데요. 1910년경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은 당시 미국 방갈로풍 주택 형태로 지금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스윗츠 주택은 선교박물관, 챔니스 주택은 의료 박물관, 블레어 주택은 교육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요. 약간 흐린 날씨 때문인지 주택의 담쟁이 넝쿨들과 오래된 빨간 벽돌들이 조금은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1919년의 3.1운동의 열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홍다솜
 
 
주택을 돌고 내려와 3.1 만세운동길을 만났습니다. 1919년 대구에서 일어난 3.1운동 당시 계성미션스쿨과 대구고보 학생들이 집결하고 대구의 서문시장 큰 장터로 몰려갔던 그 길입니다. 그 길이 지금은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은 사람들의 관광지로도 이용되고 있죠.
 
 
 
 
계산성당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 ⓒ정민하
 
계산성당은 천주교의 포교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1899년 처음으로 계산동에 한식 목조 십자형 성당이 신축되었는데요. 그 후 1918년 증축을 거쳐 현재의 성당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서양의 건축양식을 도입한 영남지방 최초의 고딕양식 건물인셈이죠.. 계산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다른 성당들과 다르게 특별했는데요. 성서에 나오는 장면들이 아닌 갓을 쓴 남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관복을 입은 사람등등 한국인들이 그 주인공으로 그려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했던 성인들이라고 하네요.
 
 
 
 
▲이상화고택ⓒ정민하
 
고등학교시절 배웠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겨져 있는 길을 따라 걷자 시인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상화의 시를 읽으면서 걸으니 당시의 울분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서상돈은 1907년 국가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민족 운동가였는데요. 그가 살던 고택이 그 당시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길다’는 뜻의 진골목은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홍다솜
 
근대의 색이 짙게 남아있는 진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진골목’은 긴 골목의 사투리로 길기 때문에 진골목이라고 불린다고합니다. 진골목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인데요. 예전의 간판들이 고스란히 남아 더욱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정소아과의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대구의 최고의 양옥건물인데요. 현재 남아있는 근대건물들 중에는 양옥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건축과 문화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 1980년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던 미도다방 ⓒ홍다솜
 
그리고 골목투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진골목의 명물이라고 불리는 ‘미도다방’입니다. 미도다방은 1983년 문을 열어 대구지역의 정치인들과 문인들의 명소였다고 하는데요.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화 속에서나 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갑자기 1980년대로 떨어진 것처럼 다방안은 오롯이 1980년대의 모습이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의자와 벽에 붙어있는 차림표, 그리고 어항. 다방에 앉아계신 분들은 그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 찾아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고요. 약차와 계란을 동동 띄운 쌍화차 그리고 커피를 한잔씩 시켜놓고 잠시 그 시절로 들어간 듯 앉아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고즈넉한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 구암서원 ⓒ홍다솜
 
평생을 살면서 고택에서 자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한 번도 없을 수도 있을텐데요. 대구에서는 고택에서의 숙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코스골목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암서원과 옻골마을에서 숙박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끼익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당과 대청마루가 보이고 방문은 고리로 걸어 잠그게 되어있었습니다. 창문은 창호지를 발라 바람을 막고 있었고 비록 우풍이 불어 방공기는 조금 차가웠지만 온돌은 뜨끈뜨끈해서 편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처마 끝에 매달려있는 옥수수도 고택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구암서원은 화장실과 부엌이 마려되어 있어 사실 완벽한 고택은 아니였습니다. 현대와 과거를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삼덕상회에서 커피한잔을 마시다
 
 
▲ 삼덕상회 ⓒ정민하
 
공구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공구골목에 도착했습니다. 공구가게들만 가득한 이 곳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요. 바로 삼덕상회입니다. 아기자기한 겉모습부터 기자단을 설레게 했는데요. 카페 삼덕상회는 민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북성로의 재발견’ 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는 대구지역 건축가, 미술가 및 인문학자들이 북성로의 보존가치가 우수한 건출물을 리노베이션하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멋진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카페 삼덕상회죠.
 
 
삼덕상회 인터뷰
 
 
최지애 연구원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는 어떤 것인가요?
처음 시작했던 것은 군청에서 북성로의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활용을 할지 어떤 지원을 해 줄지에 대한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때 저도 연구자로 있었죠. 예를들면 지주가 있고 세입자가 있는데 이 건물을 없애지 않고 세입자는 건물을 더 아름답고 편하게 이용하고 건물주는 재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였죠.
 
 
그 첫 번째로 카페 삼덕상회가 탄생했다고 들었어요.
젊은이들이 이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축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기보다는 재활용해서 이용할 방법을 찾았죠. 그리고 그것을 젊은 사람들이 더 잘 느끼게 하기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어요. 리노베이션의 첫 번째 과제는 복원을 기초로 한 활용법이었거든요. 2층은 거의 대부분을 살렸고 1층은 기본 골조를 이용해서 바꾸었죠. 여기 있는 나무자제도 다 100% 원래 있던 거죠.
 
 
원래 이 건물은 가정집이었나요?
북성로가 원래 상가골목이었어요. 여기 주변도 다 공구가게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건물도 대표적인 상가건물이었죠. 주상복합이라고 보면 되요. 1층에서 장사를 하고 2층에서 생활을 하는 구조를 가진 건물 이였어요. 일본 애니메이션보면 나오는 다락방같은 거였죠.
 
 
인문학 회의를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들을 하나요?
인문학 강좌나 전시, 문화 활동을 많이 해요. 커피를 파는 집이라는 단어보다는 ‘문화를 파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백프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요?
삼덕상회가 사실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실텐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커피만 마시기보다는 공부도하고 대구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삼덕상회가 북성로의 ‘점’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런 점들이 많아져서 선을 이루고 나중엔 면을 이루게 하는 게 목표죠.
 
 
삼덕상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삼덕카푸치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삼덕상회가 3대째 이 자리에서 철물점을 운영했는데 그 때 할아버지께서 철물점을 운영하시면서 상인이 지켜야할 세 가지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대요 .그걸 들으시고 한 바리스타가 삼덕상회만을 위해서 카푸치노를 만들어주셨죠. 일반 카푸치노보다 더 달콤한 게 특징한데요. 처음에 초코 맛을 느끼고 중간에 커피우유 그다음엔 우유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삼덕상회에 와서 느끼는게 많으시라고 만들어진 커피예요.
 
 
하이마트에서 클래식을 듣다
 
 
▲고전음악감상실  ⓒ홍다솜
 
마지막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하이마트’입니다. 우리 기억속의 ‘하이마트’ 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는데요. 1957년에 세워져 벌써 55년이 넘는 시간동안 꿋꿋하게 대구를 지켜온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고전음악감상실이었습니다. ‘하이마트’는 독일말로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어둡지만 아늑하게 느껴지는 작은 공간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예상외로 음악 감상실안에는 클래식을 들으러 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희미한 불빛만 있는 감상실 문을 열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을 눈을 감고 그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요. 한쪽 구석에는 LP 레코드판과 CD가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3대째 ‘하이마트’를 운영해오고 계신 김순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하이마트’ 인터뷰
 
김순희씨
 
 
고전음악감상실이라는 곳이 조금 생소해요. 어떤 곳인가요?
벌써 55년이 넘었네요. 저의 아버지가 6.25에 피난오시면서도 레코드판은 꼭 챙기셨어요. 그렇게 대구에 내려와서 시작하게 되었죠. 말 그대로 고전음악감상실이예요. 팝이 아닌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신청하시는 곡들을 틀어드리고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수업을 해주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이 와서 음악을 듣나요?
요즘은 교육청을 통해서 단체로도 많이 와요. 경신 중고등학교는 여기 와서 음악을 들은지가 19년정도 될 거예요.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와서 음악을 듣고 가기도 하고, 어떤 악기가 어떻게 어느 부분에서 연주되는지 영상으로 배우기도 하죠. 또 6070이나 7080세대 분들은 옛날에 듣던 음악이 그리워서 오시죠. 교수님이랑 학생들은 토요일에 와서 곡에 대한 해설을 듣고 안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고 토론하곤 해요.
 
 
신청곡을 흑판에 쓰는 것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는 곡 신청이 많아서 저 칠판을 꽉 채워서 적어놨었어요. 지금은 잘 보이게 하나씩 적어놓는 편이예요. 아버님 하시던 방법 그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님 뜻을 이어가고 있는거죠. 사람들은 돈을 벌라면 팝을 좀 틀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고전음악 감상실을 고집해서 계속하고 싶지 돈 벌기 위한 것이 되는 건 싫다고 하셨죠.
 
 
50년 넘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크게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예요. 근데 여기서 음악을 듣고 자란 청소년들이 나중에 외국 가서 큰 인물이 되어서 올때나 아니면 나중에 결혼하고 찾아온다고 할 때 너무 보람이 되고 좋아요.
 
 
음악은 LP판으로 틀어주시나요?
LP판으로 틀어달라고 요청을 하시면 틀어드리지만 보통은 DVD로 틀어드려요. 고리타분하게 옛날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서 준비해놓았어요.
 
 
고전음악감상실이 대구에 2곳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지속해오시기에 힘드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여기가 팝이 아니라 클래식 감상실인데 여기를 팝을 듣는 곳이랑 같은 곳으로 분류를 했어요. 옛날에는 이런 곳에 어린 학생들을 못 들어오게 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이 콩쿠르에 나가려고 음악을 여러번 듣고 피아노 연주를 해야하는데 들을때가 없는거예요. 중학생이 여기 못와서 막 우는걸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팠죠.
 
 
앞으로도 계속 하이마트를 운영하실 생각인가요?
지금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하고 있고 손자들도 음악을 하고 있어요. 얼마전에 할머니가 이렇게 일하는게 어떻냐고 물어보니까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 아이들이 계속 이곳을 이어나가게 될 것 같아요.(웃음)
 
 
 
▲삼덕상회에서 만난 ‘오늘도 좋은날’ ⓒ정민하
 
1박 2일 동안 우리가 만났던 대구는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일상에 조심스럽게 담고 있었습니다. 골목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걸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과거의 모습은 일부러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생활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과거의 내음을 흠뻑 맡을 수 있는 대구골목과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변신한 근대의 모습의 삼덕상회 그리고 여전히 굳건히 그 자리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고전음악감상실까지. 과거와 현재의 절묘함 만남이 아름다운 대구로의 여행,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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