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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비운의 왕이었던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 용흥궁

동양과 서양의 융합으로 눈길을 끌었던 '성공회강화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강화성당 이약기가 궁금하신 분은 http://raonyss.tistory.com/920 

'용흥궁'이라는 낯선 건물이 보입니다.. 궁? 궁이라하면 왕이 살았던 곳인데, 강화도에 왜 궁이 있지? 그런데 건물은 그렇게 크지는 않고 .. 여러가지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한옥건물이 있었습니다.. 우리 또 이런거 놓치면 안됩니다.. 용흥궁의 정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용흥궁이라는 이름에서 포스가 느껴집니다.. 용이 승천했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 용은 아무한테나 붙이지는 않겠지요 .. 용흥궁은 조선 제25대왕 철종이 살던 집입니다.. 이 건물은 '잠저'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왕세자가 왕권을 물려받게 됩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궁 밖에서 살던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밖에서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용흥궁은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이라는 것이죠..





잠저는 용흥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조의 함흥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습니다..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게 됩니다.. 당연하겠지요 .. 요즘도 대통령 되고 나면, 생가 복원하고 그러니까요 ..

용흥궁도 처음에는 초가였습니다. 1853년(철종 4)에 강화유수가 다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지었습니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합니다. 이재순은 철종의 조카입니다. 이후 1974년에 보수공사를 한 번 더 했고요 ..  






 
현재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 1동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강화읍내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전통 다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철종은 강화도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름은 이원범.. 이원범이 강화도에 살았지만 태어난 곳은 서울입니다. 당파싸움에 쫓긴 아버지를 따라 강화도로 유배되어서 숨어 살게 됩니다.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게 됩니다. 나무꾼, 농사일 등을 하면서 19세까지 혼자 살게 됩니다. 당시 영조의 후손으로 헌종(조선 24대 왕)과 이원범(철종) 두 사람뿐이었는데, 헌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이원범이 조선 25대왕 철종이 됩니다.





 
당시 왕권이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외척의 힘이 강할 때였고요 .. 외척이면서 세도가였던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는 그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 없는 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철종을 왕에 오르게 하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강화도령이라고 하는 것도, 서자 출신이면서 강화도에서 온 힘없는 왕을 비하하는 의미도 담겨 있고요 ..

철종은 외척의 기세에 눌러 왕권을 제대로 써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재위 14년, 나이 33세 때 병으로 승하합니다.. 후사가 없었기에 철종의 7촌 조카뻘인 흥선대원군의 차남 이명복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그가 바로 조선 제26대와 고종입니다..




사랑채
 


 

늦가을 .. 단풍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우물가에도 단풍잎이 소복히 쌓여 있네요 ..





강화나들길을 따라 성공회성당과 용흥궁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강화나들길은 15코스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중 1코스가 강화도 중심을 지나갑니다.. 1코스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여 갑곶돈대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강화나들길에 관한 정보는 http://www.nadeulgil.com 를 참고해주시고요 ..




강화나들길 14코스는 강화도령 첫사랑길'이라 불립니다.. 강화도령은 철종이고요 .. 첫사랑이라는 말부터가 달달합니다.. 용흥궁에서 출발해서 청하동 약수터, 남장대, 찬우물약수터, 철종외가까지 길입니다.. 11.7㎞ 길이에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길입니다..

첫사랑길이라고 했으니, 분명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 철종이 강화도에서 살 때 처녀 봉이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원범(철종의 아명)이 강화도에서 소박한 농사꾼으로 살 때, 같은 마을에 사는 봉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 한양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칩니다.. 원범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서였죠 ..

원범은 왕이 되었지만, 천민 출신인 봉이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철종이 된 이후에도 봉이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까지 않게 됩니다 .. 하지만 천민출신은 궁녀도 될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왕가의 사람들은 봉이를 죽여버리기에 이릅니다..





용흥궁 공원에는 붉은색의 낡은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곳은 옛 삼도직물 공장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강화읍에는 인조견을 만드는 직물공장이 많았습니다. 그 공장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이 기둥은 당시 공장에서 사용되었던 굴뚝입니다.

이 굴뚝 옆으로 김상용순절비가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을 옵니다.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마저 함락하게 되자, 남문 위에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하게 된 선원 김상용을 기리기 위한 순절비입니다..    출처: http://raonyss.tistory.com/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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