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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의기적.jpg
 
 
창녕 교동고분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셀 수 없는 많은 이들이 등장하고 나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많은 문화유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 흔적 중에는 무덤이 빠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무덤을 통해서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무덤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꼽힌 조선왕조의 왕릉도 있고.. 경주 곳곳에 있는 신라 왕들의 고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래서 더 알았으면 하는 고분이 있습니다.. 경남 창녕으로 갑니다..
경상남도 창녕을 아십니까? 경상남도 내륙에 위치한 작은 고장이지만.. 오래 전.. 가야의 중추를 담당했던 곳입니다.. 사실 요것은 나중에 안 것이구요.. ㅎㅎ.. 저도 창녕에 대해서 아는 바가 그다지 없었습니다.. 창녕을 찾은 것은.. 우포늪을 가기 위함이었지요..

우포늪으로 향하는 버스가 많지 않습니다... 버스시간까지 여유가 많이 남았고.. 창녕읍 일대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박물관과 그 옆에 교동고분군을 둘러 보기로 했지요.. 창녕박물관은 자그마했어요.. 그런데.. 박물관 옆으로 펼쳐진.. 교동고분군.. 이게 대박입니다.. 와우..

고분들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고분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산세가 그리 높지 않으니.. 또 다른 고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창녕은 경상남도의 경주라 불릴 정도로.. 역사문화 유적이 상당한 곳이었습니다.. 고분의 숫자가 경주 다음으로 많은 곳이지요.. 창녕에는 곳곳에 고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으로 보게 될 교동교분군을 비롯해서 송현동고분군, 영산고분군, 계성고분군, 우천리고분군,장마고분군,퇴천리고분군,합리고분군,월미고분군 등등.. 창녕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창녕박물관 앞으로 난 도로를 경계로 고분군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우선은 박물관 옆에 있는 곳으로 올라가 봅니다.. 고분으로 가는대 특별히 가로 막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고분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돌을 견고하게 쌓았습니다...  고분을 보니.. 아래에 돌을 다지고.. 봉분을 세운 것이 있고..  위에 사진 처럼... 봉분만 있는 것이 있더군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앞트기식 돌방무덤 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적으로다... 어떤 모습인지는 조금 더 공부해서 보충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덤이 가야 양식이라는 것이죠.. 창녕 일대가 가야의 영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렇게 기울어져 있는 것도 있구요..





고분군의 위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길 건너편으로.. 또 다른 형태의 고분군들이 펼쳐집니다.. 올록볼록... 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와우..

 


창녕이 어떤 지역이기에 .. 이런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료를 보니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국 중에서 '불사국(不斯國)' 이었습니다.. 비자화(比自化), 비사벌(比斯伐) 이라고도 불리었구요..  

 


배롱나무와 교동고분군




고분이 있던 곳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 반대편에 있는 고분으로 향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케 합니다.. 문득 용눈이 오름이 생각나네요... ㅎㅎ




그런데..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고분에 대한 보전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이지요.. 특히.. 일제강점기 때 피해를 입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합니다.. 한 때..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이지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고분을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얘네들이.. 발굴을 제대로 하긴 했죠.. 그런데.. 발굴이라기 보다는 거의 도굴이었지요... 그래도 왕의 무덤인대.. 부장품들이 상당했겟지요.. 유물을 출토했을터인데.. 이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다근군요..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돈으로 유혹을 해서.. 도굴을 시켰다는군요.. 이런 도굴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라진 역사 유적이 얼마나 될런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탐욕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은 용서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창녕 고분에 대한 피해는 계속 있어왔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손으로..  도로를 만들고, 택지를 만들고 하면서 고분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하여 많은 수가 줄어들어..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몇 분 빨리 가기 위해서.. 몇 백 년의 시간을 한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이런 무지한 모습을 그만 봐야 하는데.. 지금도 간간히 무지한 소식이 들리네요..






고분 너머로 저수지가 있고.. 논밭이 이어져 있습니다.. 주변의 산세와 고분군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어느 고분을 보니.. 고분 내부를 볼 수 있게 철망이 있었습니다.. 물론 안에는 들어갈 수 없구요..




철망 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이 견고합니다. 어떤 연유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개방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길 너머에 있는 고분군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렇게 보면.. 가야는 한반도 남쪽의 작은 나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야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었고.. 신라와 우리나라 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가야에 대한 연구와 정리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만큼 앞으로 할 일이 많은 것이겠지요..





고분들을 보고 돌아나오려는 순간.. 차 한대가 멈춥니다.. 아이들이 우루루 나오고.. 후다닥 뛰더니 고분 위로 올라가네요.. 이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은.. 좋다고 사진 찍고 있고... 아니.. 이거 이래도 되는거야.. 무덤인대.. 역사유적인대..

역시나.. 어디선가 방송이 나오네요.. 고분위에 올라간 사람들 내려오라고.. 아니 이걸 방송을 해야 .. 아니 누가 말을 해야 내려와야 되는 것인지 반문해봅니다...  기본은 지켜가면서 살자구요.. 어른들부터 제대로 해야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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